[생명책에 기록된 자들]
계 21:18~27
영화 쿼바디스(Quo Vadis, 1957년 작)는 네로에게 핍박받는 초대 기독교의 순교를 다루고 있습니다. 데보라 카가 노예로 잡혀 온 리지아 공주로 나오는데 로마 사령관 마커스를 사모하면서도 믿음이 없는 그의 구애를 거절합니다. 리지아는 신자로서 겪는 유혹과 핍박 속에서 자신의 믿음을 지키고 동족들도 지켜내면서 결국 마커스도 믿음으로 이끄는 역할을 했습니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에 거하는 자는 생명책에 기록된 자입니다. 생명책에 기록된 주인공은 누구일까요?
첫째, 각자가 보석같이 빛나는 성곽의 간증이 있는 자입니다.
다양함 속의 일치를 보여주는 자들입니다. 새 예루살렘 성을 싸고 있는 성곽의 기초석이 각기 다른 보석으로 꾸며져 있다고 합니다. 성은 만 이천 스타디온, 즉 2,400km의 거리인데 성곽은 백 사십사 규빗입니다. 한 규빗이 팔 하나의 길이이니 이것을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요? 내적 성전은 믿음으로 구원을 얻는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세울 수 있는 성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겨자씨 안에 태산이 들어있다는 것입니다. 지극히 작은 것이지만,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기 위해 이 땅에서 보여주는 역할을 해야 하고, 세상을 거절하는 역할을 보여주는 것도 이렇게 작은 성곽의 역할입니다. 바벨론의 거짓 영광과 대조하기 위해 찬란한 보석의 이름으로 표현했지만, 실제 있지 않은 보석이라고 합니다. 거룩한 것은 가치관이기 때문에 실체가 없는 것이 맞습니다. 가장 힘든 사람들의 모임 열두 지파, 열두 사도들, 비천한 사람들이 모여서 새로운 가치관, 질적으로 다른 천국 공동체를 이룬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빛을 비추어주시면 서로가 어떠한 고난이라도 어떤 신분에 있더라도 각자 고난의 증인이 되어서 보석같이 빛난다는 것입니다.
열두 문은 열 두 진주이고, 모든 문마다 연결된 길이 있는데 정금으로 아름다운 길이라고 합니다. 아픔을 통한 인고의 세월로 정금 같이 맑아져서 모든 것이 투명하고 아름다운 문과 길입니다. 거룩한 성에 들어간 자는 어디든 정금 같은 길이 예비 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이 책임지십니다. 한 성도가 야동을 보는 숨은 부끄러움의 회개기도를 했는데 그후로 야동 생각이 나지 않게 됐다고 나눴습니다. 새 하늘에 들어가면 각자 보석 같은 성곽 간증을 하는 성도의 견인이 있어 저절로 되는 것이 있습니다.
둘째, 내가 성전인 것을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 자체가 성전이고 어린양이 성전이시기 때문에 나와 하나님이 하나가 되면 그것으로 간접교제는 끝입니다. 인공지능이 주목받고, 감정을 탑재한 인공지능이 미래 예측까지 하고, 리처드 도킨스나 유발 하라리와 같은 최고의 석학들이 예수는 신이 아니라고 가르치며, 내 힘으로 생명나무를 가질 수 있다고 믿어도 생명나무를 연구해서 그 속에 들어갈 수는 없습니다. 연구하는 자와 들어가는 자는 천지 차이인 것입니다. 아무리 별을 연구해도 별을 따다 줄 수는 없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는 것이 대단한 것입니다. 말씀이 지혜입니다. 하나님 외에는 어떤 빛도 없습니다. 하나님 자신이 그의 백성들을 비춰주는 발광체입니다. 나와 성전이신 아버지와 하나가 된 것입니다. 내가 성전이라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내가 성전인 것을 아는 자의 결론은 사랑입니다. 사랑이 가장 중요한 이유는 서로 도와주어야 구원이 이루어지기 때문에 사랑이 없이는 구원사역을 할 수 없습니다. 믿음과 소망은 성취되면 없어집니다. 천국에서도 남아있는 것은 사랑밖에 없습니다. 이 땅에서 구원으로 인도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고 참고 견디는 일이 필요한데 이것은 이 땅의 가치관 가지고는 못하는 일입니다. 내가 성전이어야 할 수 있는 것, 바로 다른 사람 눈높이에 맞게 사랑하는 것입니다.
지난주 울진 아웃리치에 가는 청년이 떠나기 전, 암 판정을 받았답니다. 그런데 그냥 아웃리치를 가겠다고 했습니다. 자기가 너무 중요한 일을 맡았기 때문이랍니다. 식사 당번을 맡아서 도저히 빠질 수가 없다며 아웃리치를 갔습니다. 내가 성전인 것을 알기 때문에 이런 사랑의 적용을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셋째, 영광이 있는 자입니다.
만국과 땅의 왕들이 함께 기록된 것은 새 예루살렘 성의 보편성과 탁월함을 강조한 것입니다. 믿음은 보편적이지만 탁월함이 있습니다. 두 가지를 다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인간이 자기 죄, 본질을 알면 하나님을 반사해서 보석같이 빛나니까 만국이 그 빛 가운데 다니게 됩니다. 우리가 보석 간증을 하고 있으면 저절로 만국을 변화시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비친다는 것은 자기 죄를 안다는 것이고, 자기 죄를 알면 정직히 행하고, 정직하게 행하면 해 같이 빛납니다. 정직히 행함은 남의 허물을 드러내는 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믿음에 맞게 나누는 것입니다. 정직의 반대는 거짓입니다. 거짓은 사실과 자기 의견을 구별하지 못하고, 소문을 퍼뜨리며, 자기가 한 말에 책임지지 않고, 잘못하고도 발뺌하고, 한계를 뛰어넘는 약속을 하며, 지나친 과장과 지나친 강조를 하고, 말을 둘러댑니다. 가증함은 남에게 미움 받거나 미워하는 것인데 이것도 다 거짓에서 출발합니다. 대단한 하나님의 일을 하고 순교하는 것보다 오늘 내 일상에서 거짓되지 않고 정직하기가 더 힘들 수 있습니다. 주님을 영접한 자의 가장 큰 특징이 거짓말을 하지 않게 된다는 것입니다. 물론 정직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회개가 수반되지 않고는 정직할 수가 없습니다. 하루하루 공동체에 묶여 있지 않으면 정직할 수가 없습니다. 천국은 죄짓지 않은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가 아니라 용서받은 사람이 들어가는 나라입니다. 죄를 한 번도 안 지은 사람처럼 대해주시는 곳이 천국입니다.
공동체고백입니다. 청소년기부터 말씀이 갈급해서 천주교, 이단, 여러 말씀 카페와 교회를 찾아다녔지만, 동성애 쾌락 중독이 발목을 잡았고, 우리들교회에 와서 양육 받으며 비로소 자신의 죄패를 오픈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아버지는 교회 나오시고 세례 받으셨으나, 이제 어머니의 구원을 놓고 하나님께 엎드려 기도한답니다. 자신의 죄패를 드러내어 교회를 떠나는 청소년들을 하나님께 향하게 할 수 있다면 어떤 수치와 조롱도 달게 받고 가겠다고 합니다. 아무리 형편없어 보여도 바로 이것이 생명책에 올라가는 자가 아니겠습니까?
생명책에 기록되는 자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지만, 주님이 끝까지 사랑하는 자들은 인간관계에서도 끝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정직히 행하는 것이고, 보석 같은 성곽의 모습으로 다른 사람을 주께로 인도하는 사람입니다. 우리의 인생을 말씀의 빛으로 채워 넣어 모든 어둠이 물러갈 수 있도록, 그래서 우리 모두 생명책에 올라가게 해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