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흰 보좌 심판]
계 20:7~15
호주의 세계적인 생태학자 데이비드 구달 박사가 104세에 고령을 이유로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한 기사를 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창조한 인간의 자유에 스스로 죽음을 선택하는 것도 포함이 될까요?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면 그것은 죽음 이후의 세계가 없을 때 가능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은 세상에 대한 주권을 갖고 심판하신다고 하십니다. 정확하고 오심이 없는 흰 보좌 심판이 언제 일어나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곡과 마곡의 전쟁 때 흰 보좌 심판에서 구원이 이루어집니다.
오늘 본문 20장 7절부터 계시록 마지막까지 사탄의 멸망으로 주님이 재림하시는 종말을 보여줍니다. 천년이 찼다는 것은 구원 역사가 시작되어 구원의 백성이 다 찼다는 것이고, 하나님이 정하신 기간이 도래했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때 하나님의 허락으로 사탄이 잠깐 풀어놓으셨다고 합니다. 사탄에게 결박 당한 후에 복음이 왕성해지고, 환란이 소망을 이루는 줄 앎이라는 말씀처럼 환란이 영적으로 유익하기 때문에 사탄이 놓일 때가 있습니다. 8절에 곡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지도자를 의미하고 마곡은 그 곡을 추종하는 백성을 의미합니다. 사탄은 천 년 동안 있다가 나와서 여전히 백성을 미혹하여 싸움을 붙이는 일을 계속합니다. 사탄은 우리를 꼬이려고 갖은 수를 다 쓰지만, 그 미혹에 넘어가는 것은 우리 자신입니다. 환경의 문제가 아니라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어떤 무서운 질병이 찾아와도 사탄의 궤계임을 알고 주님의 사랑을 생각하며 주님처럼 죽는 순교의 각오로 임할 때, 구원의 때가 이르는 것입니다. 육체적으로 말할 수 없는 고통 가운데 있을지라도 평상시에 체험할 수 없는 장차 이루어질 영광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입니다. 구달 박사는 구속사를 이해하지 못하고 고통의 의미를 단편적으로 이해하고 그것을 제하기 위해 안락사를 선택했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섭리와 큰 뜻 그리고 구원에 반대되는 선택이기에 안락사는 안 됩니다.
둘째, 흰 보좌 심판은 악인에게는 영벌의 심판입니다.
성도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성이기에 사탄이 그들을 둘러싸도 도리어 보호하심이 됩니다.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이 성전으로 보호하시는 비결입니다. 하늘에서 불이 떨어져 소멸해버리고 마지막에 마귀를 불과 유황 못에 던지시며 하나님이 완전한 승리를 거두실 것이기 때문에 성도는 걱정할 필요가 없습니다. 남편이 하루 만에 천국에 간 사건은 사탄이 궐기한 가장 무서운 곡과 마곡의 전쟁, 아마겟돈 전쟁이었습니다. 하지만 남편 속에 있던 주님을 부인하게 했던 사탄의 발악은 남편을 사망으로 몰고 가는 일촉즉발의 위험과 두려움 속에서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불 못에 던져졌습니다. 그래서 내 속의 두려움, 슬픔 등의 사탄까지 다 물리쳐 주시고 모든 교회에 유익을 끼친 사건이 되었습니다. 사탄이 난리 치는 것이 클수록 흰 보좌 심판으로 간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에서 권세를 주신 것은 하나님 일로 잘 쓰라고 주신 것인데 자기를 위해 썼기 때문에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고 합니다. 예수님을 배신한 가룟 유다도 이스라엘을 징계하는 도구로 쓰인 앗수르와 바벨론도 결국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의 길로 갔습니다. 선악을 대표적으로 판단하는 법조계 인사들은 모두 이기고 이기려는 바벨론 가치관을 가지고 최고 정상에 올라갔습니다. 법조문을 외우는 것은 머리가 좋아야 하지만 다른 사람들의 죄를 심판해서 생살여탈권을 가지기에는 법조문으로만 가능한 것이 아닌 것 같습니다. 그런데 오늘 흰 보좌 백 보좌 심판은 오심 오판이 없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재판장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셋째, 선악 간 심판은 무엇입니까?
큰 범죄로 인해 타락한 옛 질서 속에 하늘과 땅이 사라지는 하늘도 땅도 피할 수 없는 심판이 일어났습니다. 죽은 자들은 믿는 자, 안 믿는 자 상관없이 육신의 죽음을 맞은 자들은 모두 흰 보좌 앞에 서게 됩니다. 흰 보좌 위에 앉으신 분은 심판의 주체이신 어린양이신데 처음부터 끝까지 구원자와 심판자와 종결자는 오직 어린 양 예수 그리스도뿐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은혜를 믿고 죄 사함을 받은 자들에게는 죄의 행적을 기록한 책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구속 받은 하나님의 백성들은 생명책에 값없이 이름이 기록된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이 땅에 살면서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거부하고 죄 된 삶을 살았던 자들은 모두 자기 행위를 기록한 책에 근거한 심판을 받게 될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 13절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는 말씀처럼 신앙생활은 수고하는 것입니다. 사탄과 대적자들의 고난을 겪는 수고가 일생에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것이 생명인데, 생명 낳는 일에 늘 실패하고 진리를 지키는 일에도 실패가 잇따르기에 흘린 눈물과 수고를 할 일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모태신앙인 딸이 교회도 안 나가고 본인 식사는 소홀하면서도 강아지에게는 닭가슴살과 채소를 정성스레 챙겨주는 모습을 보는 것이 고난이신 집사님은, 내가 죽은 후에라도 딸을 구원시켜 주시리라 생각하지만 지금 이 시간이 길게 느껴진다고 합니다.지난 주일 판사 구형을 받은 집사님은 살아오면서 많은 고난과 거짓말로 진실하게 살아보지 못했는데 지금 대리운전을 하며 회개하고 성실하게 살아보겠다고 합니다. 아내 집사님은 이번 사건이 어린 양의 잔치에 초대받은 사건이라며 십자가 잘 붙들고 가겠다고 합니다.이 부족함에 대한 눈물과 회개가 우리를 겸손케 하며 이것이 생명책에 올라간 자의 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보이는 집이 영원한 집이 아닙니다. 언젠가는 떠나야 할 집입니다. 심판은 반드시 있고 날마다 순간마다 최후이며 최고인 그 날을 준비해야 합니다. 바로 앞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있는데 거절하며 영원한 멸망의 나라로 떨어지지 않도록 결단하시는 성도님들 되시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