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리의 할렐루야]
요한계시록 19:1~8
할렐루야는 당신의 여호와를 찬양하라는 뜻으로 19장에서 6절까지 4번 할렐루야가 나옵니다. 너무 기쁘고 좋을 때 할렐루야,아멘 밖에는 외칠 것이 없습니다. 승리해서 너무 좋을 때 외치는 승리의 할렐루야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할렐루야는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던 바벨론 큰 음녀에 대한 심판을 완성하셨기에 구원과 영광과 능력이 하나님께만 있다고 할렐루야가 터져 나왔습니다. 할렐루야를 하려면 반드시 먼저 바벨론의 심판을 맛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여호와로부터 유황과 불을 비같이 내렸다고 한 것은 결코 자연재해가 아니라 하나님이 내리신 재앙입니다. 역청이 많은 이곳은 불심판으로 지층이 낮아져 죽음의 바다 dead sea가 되었고 지금도 점점 더 낮아져 소금밭이 될 수도 있다고 합니다. 마태복음에도 처처에 기근과 지진이 있을 텐데 이것은 재난의 시작이라고 했는데, 소돔의 심판은 완전한 심판, 재난의 마지막인 것입니다. 돈 학식 건강 외모를 주를 위해 쓰지 않으면 갈 데 없는 인생 그게 심판이고 죽을 수밖에 없는 심판이 되는 것입니다. 성경은 멸망에서 끝나지 말라고 멸망 후의 회복을 언급합니다. 우리는 심판과 부활의 예고를 들으러 교회를 다니는 것입니다. 모든 기도 제목이 구원으로 인도되니 만사형통한 간증을 수없이 들을 수 있습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나를 기가 막힐 웅덩이와 수렁에서 끌어올리시고 내 발을 반석 위에 두사 내 걸음을 견고하게 하셨도다 고백하게 될 때 새 노래를 부를 수 있습니다.
두 번째 할렐루야는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기 때문입니다.
한쪽에서는 로마가 망해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가 울고불고 가슴을 치며 통곡하는데, 한쪽에서는 그 로마를 던져버렸기 때문에 하나님의 심판이 의롭고 누군가의 기도와 피 때문에 되는 것이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의롭고 참되시기에 오차가 없으시고 정확한 심판이 이루어졌기에 성도들이 할렐루야라고 찬송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장 무서운 권세는 사망 권세인데 일생 죄에 매여 종노릇 하고 사망을 월급으로 받습니다. 사망권세가 음녀 마귀의 권세입니다. 사람이 한 번 죽는 것은 정해진 것이고 그 후에는 심판이 있다고 히브리서 9장 27절에서 말씀하고 있는데, 마귀는 심판이 없다고 하니, 복음이 필요 없고 예수께서 돌아가신 것도 의미가 없습니다. 포스트모더니즘의 근본 주장은 네가 하나님이다, 인생의 주인이다.인데 마귀는 이 죽음의 길 어둠의 길 지옥의 길로 인도 하려 합니다. 또한 사욕과 욕심 부정을 교묘하게 합리화시켜서 악으로 마귀의 백성 삼고자 하는 것이 음녀 마귀의 가장 야비한 수법입니다. 그런데 주님께서 부활하심으로 사망 권세를 깨뜨리셨기에 믿는 자들은 이제 사망 권세를 이기게 되었고 종들의 피를 갚아주셨기에 할렐루야를 외칩니다. 나의 육을 무너뜨리기 위해 온 여러 가지 심판들이 의롭고 참된 심판이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저는 남편의 육이 무너져 구원되었기에 할렐루야를 외쳤습니다. 이런 것이 진짜 참되고 의로운 심판이라고 외치는 할렐루야입니다.
세 번째 할렐루야는 하늘과 땅의 모든 자가 경배하기 때문입니다.
이십사 장로는 신약의 열두 사도와 구약의 열두 장로를 말하며, 열두 장로의 존귀함을 입은 자와 땅의 네 생물은 땅의 모든 자를 의미합니다. 그러니까 하늘과 땅의 모든 자는 하나님의 심판을 보고 맞습니다. 아멘 하며 찬양을 해야 합니다. 시편 150편은 할렐루야로 시작해서 할렐루야로 끝납니다. 바벨론 포로 귀환 이후에 돌아와서 부르는 노래인데, 최고 강대국 음녀 바벨론이라는 세상 나라에서 구원받고 보니 포로로 간 것이 의롭고 참된 심판이기에 하늘과 땅 모든 자가 하나님을 찬양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할렐루야는 세상 사람들은 안 해도 되고 우리만 해야 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해야 하는 찬양입니다. 우리가 그것을 하도록 전해주어야 합니다. 다윗은 고정관념을 뒤엎고 예배 때, 천한 악기들을 사용하여 악기를 다 귀하게 만들었습니다. 우리들 교회도 수치스럽고 부끄러운 약재료를 가지고 할렐루야를 외치며 섰을 때 예배를 거룩하게 만들었습니다. 호흡이 있는 자는 세상 사람도 할렐루야를 외쳐야 하는데 그들이 몰라서 못 외치는 것이지 그것이 사람의 본분이기에 외쳐야 합니다.
네 번째 할렐루야는 전능하신 이가 통치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주인이 되셔서 통치하시고 다스리시기 때문에 할렐루야 복된 인생입니다. 남편의 육이 갑자기 망해서 구원되었는데, 저는 과부라 너무 초라하니 어떻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요 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벧3:1~7절, 아내의 행실로 구원받았다고 해주셔서 정죄감에서 해방되었고 남편 순종이 아내의 단장이고 선을 행하는 것이라고 하시며 그것이 남편의 죽음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는 비결이라고 하시니, 할렐루야가 저절로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에게 옳은 행실을 하였다 하시며 음녀와 비교도 안 되는 세마포를 입게 해주셨습니다. 옳은 행실은 내가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은혜로 하나님께서 허락하셔서 나오는 행실입니다. 또한 옳은 행실은 자랑도 절망도 하지 않는 것입니다. 가정 중수를 사명으로 놓고 가며 절망할 일도 있고 앞으로 갈 길이 더 어려울 거라 생각이 들지만 넘어질 수밖에 없는 저를 하나님이 인도해가시니 하나님밖에 의지할 자가 없습니다. 7절에 우리가 즐거워하고 크게 기뻐하여 그에게 영광을 돌리세 했는데 승리의 할렐루야에서 우리라는 공동체가 너무 중요합니다. 1세기의 복음이 한 세대 만에 전 세계로 퍼져나가 예수그리스도께서 부활하신 비결은 관계였습니다. 헬라어로 관계는 오이코스인데 가족이나 식구를 뜻합니다. 집이라는 뜻과 더불어 하나님의 식구, 영육 간의 집을 의미합니다. 다음 주 집으로 전도 축제가 있는데, 피를 나누었어도 믿음의 가족이 아니면 진정한 오이코스라고 할 수 없습니다. 목장과 양육을 통한 관계전도로 나의 영적 지경도 넓어집니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힘든 분들로 교회가 채워져 고통 중에 있는 분들을 체휼하며 모셔오는 전도대회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