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를 위한 심판]
계 18:9~24
교회 권사님이신 시어머니가 다른 사람 앞에서 아들이 이혼했던 사실을 숨기고 거짓말하는 모습을 본 며느리가 자신은 일생 교회에 안 갈 거라고 했답니다. 손녀가 2급 장애고, 아들이 파산까지 했으니 이 며느리는 모든 원망을 시어머니에게 두지 않겠습니까? 망하는 심판 같은 이 일이 너희를 위한 심판이 되어서 십자가 잘 지고 구원되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바벨론 가치관의 세상은 이럴 때 어떤 태도를 보일까요?
첫째, 모두가 원통해서 가슴을 치면서 웁니다.
큰 성 바벨론과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던 왕들이 불타는 연기를 보고, 자기도 같은 부류로 볼까 봐 무서워서 가까이 가지도 못하고 멀리 서서 가슴을 치며 웁니다. 세상의 관계는 이렇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관계도 한 시간 안에 끝날 관계입니다. 하나님 없이 살아보고자 하는 것이 죄인의 첫째 특징인데, 그러려면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힘이 필요합니다. 그러나 영원한 생명을 우습게 보면 물질은 날개를 타고 하루아침에 날아가 버릴 수 있습니다. 권세를 누리던 땅의 왕들이 지옥의 고통을 맛보아도 회개하지 못하고, 울며불며 슬퍼하는 이유는 이 땅의 소망이 사라졌기 때문입니다. 좋은 예수 공동체 외에는 기득권일수록 결국 함께 음행하고 사치하는 모임일 뿐입니다.
둘째, 멀리 서서 웁니다.
세상은 서로 손을 잡고 정권을 창출해도 그 정권이 끝나 누구 하나라도 감옥에 가면 서로 멀리 섭니다. 권세는 하나님께서 주신 것인데 자신이 창출했다고 생각하기에 이 권세를 한 번 잡게 되면 그 맛이 대단해서 평범한 인생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것이 문제입니다. 언제나 내 자리에서 떠날 준비를 하고 살아야 합니다. 내게 지위가 주어졌을 때는 힘든 사람을 섬기라고 주신 것임을 알아야 합니다. 십자가 지는 사람을 이해하라고 저도 늘 십자가의 삶을 겪게 하셨습니다. 힘들어도 이것이 은혜입니다. 목장도 이해타산을 두고 멀리 서서 이 세상 모임같이 하면 안식이 없습니다. 목자가 부족해도 음녀의 가치관보다 믿음의 가치관이 한 수만 압도하면 목장은 살아나게 되어있습니다. 어렵지만, 항상 칼날 위의 물방울을 생각하시기 바랍니다. 이타적인 모임에 속했던 사람은 망해도, 죽어도, 다 멀리 서서 울지 않고 가까이 와서 울어줄 것입니다.
셋째, 한 시간에 망해서 웁니다.
하루도 아니고 한 시간에 망했다는 말이 세 번이나 나옵니다. 큰 성 바벨론이 멸망하게 되었을 때 애가를 부르며 가장 아쉬워하는 자들은 그와 결탁하여 이익을 누리던 땅의 왕들과 무역상과 바다의 선원들입니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고 하지만, 모든 직업이 창조질서에 합당한 것은 아닙니다. 돈 버는 목적 외에는 아무 쓸모없는 반사회적인 직업도 있습니다. 바벨론 가치관은 부자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고, 높은 이율에 현혹되어서 각종 투기로 돈을 떼이는 서민도 해당합니다. 결국은 자기 유익 때문에 웁니다. 이 세상 것이 가치 기준이면 그동안 누리던 사소한 것 하나라도 없어지는 것이 아쉬워서 땅이 꺼질 듯이 우는 것이 바벨론의 애가입니다. 평소에 남편보고 할 줄 아는 것이 하나도 없다며 늘 싸우던 아내가 하루아침에 남편이 가니 너무나 슬퍼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분을 위로했더니 눈이 오면 이제 누가 휘발유를 넣으러 가느냐고 한 말을 잊지 못합니다. 저도 하루아침에 큰 성 바벨론이 무너져서 과부가 되었지만, 하나님은 어떤 환경이라도 영혼구원 때문에 충성하면 후회가 없다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모든 망하는 것 같은 환경에서 특별한 사명을 주셨다고 생각하면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는 길입니다. 지금 환경이 남보다 낫건 아니건 여러분이 이런 복음을 듣고 이런 공동체에 속해있다는 것만으로도 후회 없는 인생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넷째, 영혼의 장사꾼이기 때문에 심판하십니다.
땅의 상인들이 사고파는 스물아홉 항목의 상품이 언급되고 있는데 마지막에 종들과 사람의 영혼을 사고팔았다고 합니다. 육신의 정욕을 위해 안목의 정욕이 따라오고, 이생의 자랑이 따라옵니다. 이 중에서 제일 심각한 것이 사람을 상품화한 것인데 사치와 타락이 극도에 달해 자신의 생명을 대신할 사람까지 경매했던 것입니다. 결국 영혼을 사고팔았던 이 사람들이 모두 돈의 노예가 되어 돈이 인생의 절대가치이기 때문에 어리석은 부자처럼 돈을 쌓아두고자 곳간을 크게 짓지만, 오늘 밤 내 영혼을 가져갈지 모르는 인생을 사는 것입니다. 왜 이런 사치와 불의한 성도를 박해하는 것이 나타날까요? 하나님의 첫째 된 계명을 어기고, 자기를 영화롭게 하려고 사람을 사고파는 가치관이기 때문에 하나님이 무섭게 진노하시는 것입니다.
다섯째, 성도들은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땅의 사람들이 서럽게 울어도 큰 성 바벨론 로마는 반드시 망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이 세상의 문화와 권력과 구조가 언젠가는 싹 무너져버린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바벨론의 멸망은 이 성중에 성도들의 피가 보였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우리의 피, 헌신과 사랑은 절대로 헛되지 않습니다. 내가 죽어지는 적용을 할 때 그 피를 기억하십니다. 왜 우리에게 로마를 붙여서 고통을 주시는가 싶지만, 우리 속에 다 각자의 로마가 있습니다. 내 속에 있는 로마의 세력이 물러갈 때까지 믿음의 시련을 허락하십니다. 죽는 날까지 다른 문제가 와서 끊임없이 나를 훈련하면서 또 다른 나의 악이 던져지게 될 것을 믿습니다. 핍박을 당하니까 마음이 가난해져서 그때부터 천국을 누리기 시작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오랜 외국 생활 끝에 망해서 한국으로 들어오신 한 집사님이 외국바이어들에게 다른 회사시설을 빌려 간판만 바꿔 달아 브리핑을 하는데 계약이 되어 수년간 큰 이득을 취했다고 합니다. 이것을 나누니 초원님이 그만두라고 하셔서 순종하는 적용으로 힘든 막노동을 시작했는데 한 회사에서 연락이 와 부장으로 일하게 되었고, 얼마 전에는 두 딸이 신결혼까지 했다는 것입니다. 너희를 위한 심판의 처방을 잘 받아들여 정말 수지맞으셨습니다.
여러분도 이 힘든 심판에서 내 악을 직면하고, 내 로마가 던져질 것을 바라고 즐거워하는 나를 위한 심판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