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
창세기 18장 22-33절
아파서 죽어가는 자녀가 생선을 먹고 싶어 하는데 가진 돈이 천 원밖에 없다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생선 장수에게 가서 조금만 깎아달라고 사정하지 않겠습니까. “죄송한데 조금만 더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 화내지 마시고 들어주세요. 조금만 더 깎아주시면 안 될까요?”라고 간절하게 청하지 않겠습니까? 자식을 먹여 살리고 싶은 이 마음으로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을 이루기 위해 하나님을 멈추시게 하는 일꾼이 돼야 합니다. 천사들이 소돔을 심판하러 떠날 때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습니다.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갔습니다(22-23).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과 내 가족에 대한 심판의 소식이 들릴 때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그들의 구원을 위해서 하나님을 멈추시게 하는 일꾼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일꾼인 교회와 목장은 죄와 상처로 도망자가 된 사람들에게 피난처가 되어야 합니다. 목숨을 내놓는 헌신으로 다른 사람을 살리는 것이 하나님의 소원인 구원을 이루는 인생입니다.
내 식구 때문에 힘들어 본 사람이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을 이룹니다. 소돔과 고모라의 심판 소식을 들은 아브라함은 조카 롯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아들처럼 여기던 롯이 죽음의 땅 갈대아 우르에서 같이 떠나왔는데 생명의 땅 가나안에는 들어오지 못했습니다. 물댄 동산 같은 소돔이 좋아서 심판의 땅에 머물고 있는 우리의 식구들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롯이 망한다는 소식을 듣고 그것이 구원의 때임을 알았던 것처럼, 내 식구가 망하고 힘든 소식이 들릴 때 그것이 구원으로 이어지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품고 중보기도를 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공의를 행하실 것’이라고 하나님의 기준을 알고 기도합니다(23,25). 내 행복이 아닌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기준으로 악은 심판을 당하고 의로운 부분은 구원해 주시기를 기도합니다. 그리고 ‘티끌과 같은 나’라고 겸손하게 나의 실상을 알고 기도합니다. 내가 의인의 입장에서 죄인을 위해 기도하는 게 아닙니다. 나 자신이 티끌 같은 죄인임을 알아야 다른 사람의 악을 위해서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소돔에 의인 50명이 있으면 용서해주시라고 청합니다. 50에서 45명, 40명, 30명, 20명, 10명까지 기도를 번복하면서 끈질기게 남은 부분을 보고 기도합니다(24-32). 나 같은 죄인도 구원하셨으니 저 사람도 남은 부분을 보시고 구원해달라고 간절하게 기도합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말씀을 마치시고 즉시 가시니 아브라함도 자기 곳으로 돌아갔습니다. 기도해도 멈출 수 없는 이 세상의 심판이 있음을 인정했습니다(33). 소돔 성에 의인이 한 사람도 없음을, 멸망할 수밖에 없음을 아브라함이 알았습니다. 아무리 기도하고 중보를 해도 육적으로 망한 사건이 회복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그것이 구원으로 응답하시는 기도인 것을 믿어야 합니다. 소돔 성을 엎으실 때에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생각하사 롯을 그 엎으시는 중에서 내어 보내셨습니다(창19:29). 나에게 의로운 것이 없어도 하나님의 소원인 영혼 구원을 위해 중보기도를 드릴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십니다. 중보기도의 자격은 무시와 수치를 당하는 것입니다. 쓰레기보다 못한 티끌과 같은 나라고, 내가 죄인임을 알고 기도드릴 때 하나님께서 나의 기도를 잊지 않으시고 구원으로 응답하십니다.
“그 사람들이 거기서 떠나 소돔으로 향하여 가고 아브라함은 여호와 앞에 그대로 섰더니 가까이 나아가 가로되 주께서 의인을 악인과 함께 멸하시려나이까” 창18:22-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