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찬송]
계 15장1-8절
계시록이 미래의 어느 날을 위해서 쓴 것이 아니고 오늘의 현실을 위해서 쓴 것이기 때문에 시간적인 순서가 아니고 마지막 시간을 향하여서 가는 오늘의 찬송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마지막 찬송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1. 마지막 재앙이 마지막 찬송입니다.
마지막 때는 예수님의 초림과 재림 사이의 전 기간을 말합니다. 그래서 마지막 종말의 전 시간에 인, 나팔, 대접 재앙이라는 세 가지 시각으로 보여준 것이 하나님의 심판 계획입니다. 오늘 세번째 이적은 마지막 재앙을 통해 하나님의 진노를 대접으로 부어서라도 마귀에게서 구원하고자 하는 하나님 사랑을 표현하고자 하심입니다. 하나님은 죄를 싫어하시기 때문에 이 땅에서 진노를 맛보게 함으로써 영원한 세상에서 슬피 울며 이를 가는 날이 없도록 하시기 위한 사랑입니다. 진정한 이적이란 하나님께서 나를 향한 어떤 계획을 갖고 계시는지를 미리 알려주시는 것이기에, 나를 알고 사단을 알고 이 고난을 주시는 하나님의 뜻을 알고 가는 것이 이적입니다. 계시록 8:13에 보면 재앙에도 살아남아서 회개하지 않은 이 사람들의 가장 큰 죄악은 끝까지 짐승과 바벨론을 숭배하고 하나님께 예배드리기를 거절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선은 하나님께 예배하기를 결정한 것입니다.
2. 마지막 찬송은 불바다를 지나야 합니다.
유리 바다는 세례 등을 의미하는 회개를 의미합니다. 모세와 어린 양의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이 유리바닷가에 서서 하나님의 보좌 앞에서 찬양합니다. 유리 바다에 도달한 성도들은 누구보다 자기의 흠 때문에 아파하는 사람들입니다. 자신의 부족에 대해서, 죄에 대해서 너무 아파합니다. 다윗을 보세요. 인생의 불바다를 지나면서 찬송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사울은 자신을 자신이 책임지려고 했기 때문에 그냥 자신이 괴로운 만큼 다윗을 평생 탓하면서 미워하다가 죽었어요. 그런데 겉모습은 예배 중독자처럼 보였어요. 초대 환경도 너무 감사한 환경인데, 감사가 안 되고 40년이나 왕 노릇을 했는데도 다윗을 미워하는 걸 고칠 수 없는 것입니다. 마음대로 안 되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그 표지를 따라 하는 것이 얼마나 이적 중 이적인지 모릅니다. 내 죄를 보며 하나님께 나아가서 회개할 수 있는 것은 정말 기가 막힌 이적입니다.
3. 마지막 찬송은 모세의 노래, 어린양의 노래입니다. 자신을 높이는 노래가 아닙니다.
애굽이 홍해를 건너는 이스라엘을 따라오다 죽었습니다. 그 애굽이 죽는 것을 내 눈으로 본 것입니다. 여러분도 마지막을 향해가는 오늘의 찬송을 부르시기를 바랍니다. 출애굽기부터 시작된 이스라엘의 구원이 지금 계시록에까지 흘러 퍼지고 있습니다. 주님의 길은 참되고 의로우십니다. 용의 세력은 열 뿔, 일곱 머리, 열 면류관의 권세를 가진 자들이며, 이름만 들어도 이름값이 느껴지는 자들입니다. 그런데 이름값이 전혀 없던 자들이 구원 쪽에 서 있습니다. 마태복음 1장에도 다말, 라합, 밧세바, 우리야의 아내, 마리아의 이름이 찬란하게 올라갔습니다. 구원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이루어지는데 짐승의 수를 이긴 것은 주께서 안아서 이긴 것이지 내 힘으로 이긴 것이 아닙니다. 믿음이라는 주님께 헌신하는 것이기도 하지만 나를 보호하시는것을 믿는 것 또한 믿음입니다.
4. 마지막 찬송은 증거 장막의 성전이 열리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시련과 환란은 증거장막성전의 예배가 열리는 것으로 결론지어져야 합니다. 우리가 드리는 주일예배 등이 이 땅에서 모든 사단을 이기는 최고의 비결이고 방법인 것을 믿습니다. 계시록은 환상으로 이단이 푸는 직통 계시가 아닙니다. 모든 계시록은 성경으로 다 풀어지게 되어 있습니다. 일곱 대접은 마지막 재앙입니다. 이 진노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주는 제사장 역할을 해야 됩니다. 믿는 자는 이미 천국을 누리고 있기 때문에 내가 천국 모델이 돼야 합니다.
공동체 고백은 부모학교의 한 엄마의 간증입니다. '전 남편과는 위장이혼을 했습니다. 그 이후 행복을 꿈꾸며 현 남편을 만나 재혼했습니다. 함께 살게 된 아이들은 문제행동으로 아픔을 표출했습니다. 남편의 아이 말만 믿고 작은 아이를 때렸는데, 남편 아이가 거짓말을 하고 있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나를 나쁜 계모를 만들어버리는 아이가 더 싫어졌습니다. 형님 가정에 맡겼던 남편 아이를 데리고 오는 십자가의 적용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그 아이를 보면, 미움이 계속 올라왔습니다. 내 아이는 밉다가도 예쁜데, 남편의 아이는 밉다가도 또 밉습니다. 그래서하나님 저는 이 아이가 밉습니다. 주여, 저와 저 아이를 불쌍히 여겨주세요 라고 기도했습니다. 전 남편을 괴물로 만든 것도 결국 나 때문이었다는 것을 우리들교회에 와서 깨닫게 되었습니다. 육적 자녀와 맡기신 자녀의 회복을 전적인 하나님의 도우심을 믿고 의지하며 가기를 소망합니다.' 이런 것이 일곱 대접의 심판 아닐까 싶습니다. 눈물이 앞을 가리지만, 이 재앙에서 찬송을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