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수할 때가 이르러]
계14:13-20
지난 주 영원한 복음을 만나기 위해서 진노를 깊이 만나야 한다고 했습니다. 현실은 영생과 영벌과 관계가 되어 있기에 현실이 지옥이면 지옥을 살다가 지옥을 가는 것이고, 현실이 천국이면 천국을 살다가 천국을 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때가 차서 천국과 지옥이 갈라지는 알곡과 가라지를 추려내는 추수를 한다고 합니다. 오늘은 추수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1. 구원의 추수입니다. 즉 알곡의 추수입니다.
마지막 추수를 하시는 분은 예수님이신데, 금 면류관을 쓰고 예리한 말씀의 낫으로 알곡과 가라지를 갈라내십니다. 어떤 지도자도 먼저 가시 면류관의 섬김과 희생이 수반되지 않고는 금 면류관의 리더십이 주어지지 않습니다. 마태복음 24:36에 그 날과 그 때는 오직 아버지만 아시지 예수님도 천사도 모른다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르는 때를 가지고 우리를 훈련하십니다. 그 때는 아버지와 아버지의 명을 받은 어린양이 아시기 때문에 우리는 어린양만 따라다니는 것이 무엇인지 천국적응훈련을 받다가 예수님의 족보에 올라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제 구원의 추수가 시작되고 있는데 휘둘러는 보낸다, 던진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강력한 말씀을 던졌을 때 받아들이면 알곡이고 구원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알곡이 될까요? 마태복음 13:26-30까지 보면 알곡과 가라지 비유가 나옵니다. 처음에 좋은 씨로 뿌림을 받았지만 잠깐 쉴 때 원수가 더 뿌리고 간 가라지 때문에 인생이 힘들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걸 뽑아낼까요?' 했더니 '가만두어라' 하십니다. 그 가라지 때문에 깨어있어서 알곡이 되는 것입니다. 내 옆의 가라지 때문에 힘든 것은 내 속에 가라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휘둘러도 가라지만 베어지고 곡식은 상하지 않는 것은 어떤 사건이 와도 내 욕심이 가지 쳐 지고 내 본질은 점점 성화되어 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2. 심판의 추수입니다. 즉 가라지의 추수입니다.
악인의 심판은 주님이 직접 하시지 않고 천사가 집행합니다. 심판권은 물론 예수님께 있지만 성부 하나님의 명령으로 두 천사를 사용하시는 데 이 두 천사도 예리한 낫을 가지고 있다고 합니다. 제단으로부터 나온 것은 성도들의 기도로 인하여 이 심판이 행해진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의 중보기도는 참 중요합니다. 포도송이는 불신자를 의미합니다. 포도송이는 탐스럽지만, 진노의 큰 포도주 틀에 던져지며 하나님 심판에서 건질 자가 없습니다. 지금 이 땅에서 감정과 육체의 고통을 당하는 자가 도리어 복인 것은 나중에 당할 고통을 지금 당해봄으로 지옥을 피할 수 있는 시간이 허락되었기 때문입니다. 남을 괴롭게 하고 아프게 하고 넘어지게 하고 불법을 행하고도 이 땅에서 울며 고통당해보지 않고 이 세상을 떠나는 사람은 그러므로 가장 비참한 사람입니다. 팔레스타인 지역 전체 크기에 해당하는 1600스타디온은 4x4x10x10 입니다. 4는 네바람, 네 천사, 네 모퉁이이고 10은 한자로 찰 만 가득 차다는 숫자입니다. 심판의 범위가 1600스타디온에 퍼졌다는 것은 범우주적으로 전세계에 걸쳐 철저하고 완전하게 일어나게 됨을 상징한 것입니다. 고난당하는 성도를 귀하게 여기면 알곡이고, 멸시하고 귀찮아하면 포도송이입니다. 아프리카의 성자 슈바이처는 칸트로 철학박사 학위를 받고 예수와 바울로 신학박사 학위를 받고 신학부 정교수가 되었고 바하와 오르간에도 전문가였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스펙으로 목회가 안되니 이번에는 의학박사가 되어 의사 면허증을 가지고 선교를 갔습니다. 50년을 선교했습니다. 목사였지만 그러나 끝까지 예수님은 하나님이 아니라고 했습니다. 현지인을 야만인이나 미개인으로 종족폄하하고도 인간의 노력으로 노벨평화상을 받았습니다. 계시록에서 보면 예수님과 가장 비슷한, 그러나 절대로 예수님은 될 수 없는 어린양 모습의 부드러운 거짓선지자의 모습이 아닐까요? 휴머니즘의 클라이막스 같은 이런 666을 어떻게 분별할 수 있겠습니까?
3. 분별이 필요합니다.
추수는 극도로 분별이 필요합니다. 잘못 낫을 대면 알곡까지 벨 수 있기에, 참선지자는 거둘 때를 잘 알고 곡식이 다 익었음을 말고 말씀의 낫을 던져야 합니다. 목회도 결혼도 사업도 사람을 분별해내야 실수하지 않습니다. 박사가 되어야 분별을 잘하는 것이 아니고 오늘 내가 삶의 현장에서 십자가를 잘 지면 분별력이 저절로 생깁니다. 불과 물에 달구어지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예리한 낫이 됩니다. 유명한 대장장이는 이 예리한 칼 날 위에 물방을 굴리기를 하는데 칼날 위의 물방울 굴리기를 하려면 셀 수 없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추수할 때가 이르렀을 때 알곡과 가라지를 분별 당하고 분별하기 위해서 이런 셀 수 없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칼날 위의 물방울 같은 사람은 죄인 된 내 주제를 아는 자입니다. 하나님이 갖은 사건을 통해 내 주제를 알게 하시고 내 주제를 알면 입이 딱 다물어 집니다. 죄인된 내 주제를 분별하면 다른 사람의 분별이 아주 쉬워집니다. 바로 이런 예리한 낫으로 목장에서 양육하고 사람마다 다르게 양육을 해야 합니다.
4. 주 안에서 죽는 복을 허락하십니다.
바벨론의 집요한 핍박에도 굴하지 않고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믿음을 지키기 위해서 인내한 성도들에게 주시는 최고의 복은 주 안에서 죽는 복입니다. 주 안에서 죽으면 주와 함께 있게 되고 안식하게 됩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 십자가 지는 적용을 하면서 어린양을 따라가야 하는데, 우리는 늘 세상과 짝합니다. 세상과 등을 좀 돌리지 않고는 그 길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목숨을 내놓지 않고 지켜낼 수 없습니다. 사도바울은 내가 날마다 죽는다고 했습니다. 내 힘으로는 아무 것도 지켜낼 수가 없습니다. 남편에게 던져지고 아내에게 던져질 때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된다면 육신의 죽음이 왔을 때, 아 이 수고를 그치고 쉬라고 하시네, 할렐루야. 가 되는 것입니다. 날마다 죽어져야 진짜 죽음이 왔을 때 '할렐루야, 아멘' 이렇게 가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