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원한 복음]
계 14:6~13
오늘은 부활절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다시 살아나신 날입니다. 영원한 복음은 부활의 주님을 만나는 것인데 Good news, 기쁜 소식입니다. 오늘 본문을 통해 영원한 복음이 무엇인지 자세히 살펴보기 원합니다.
첫째, 영원한 복음은 심한의 복음입니다.
천사가 가져온 영원한 복음의 내용이 심판이라고 합니다. 복음이 기쁜 소식인데 어떻게 심판의 소식이 기쁜 소식이 될 수 있을까요? 영원한 복음은 동전의 양면 같아서 한쪽에서는 기쁜 소식 또 한쪽에서는 심판의 소식입니다. 교회는 돈과 권세가 많은 것이 기쁜 소식이 아니라 악이 물러가는 것이 가장 기쁜 소식입니다. 그런데 사랑의 주님, 축복의 주님만 외치게 되면 이 세상에서 잘 되는 것만을 기쁜 소식으로 듣습니다. 그러면 잘 돼도 당연하게 생각하고, 안되면 감사의 내용이 없어지고 감격도 식게 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하면서 여전히 세상 염려와 걱정 욕만으로 가득 찬 우리에게 은혜로 시온 산의 어린양을 만나는 것보다 강력한 심판을 만나는 것이 현재 구원을 가장 감격적으로 누리는 방법이 될 수 있습니다. 죄인인 우리를 선택하시고 대신 당신의 아들을 심판의 대상으로 제물 삼아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의 의미를 깨달을 때 하나님의 사랑을 이해할 수 있고, 그분을 위해 생명을 내놓는 진정한 위로자가 될 수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 없는 큰 성은 무너진다는 것입니다.
바벨론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모든 무서운 세력을 상징하는데, 내가 그렇게 무서워하고 섬기던 바벨론이 무너졌다고 외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경배하지 않은 대적 세력은 과거, 현재, 미래에 반드시 망할 것을 강조합니다. 적그리스도 거짓 선지자를 통해 먹인 이 진노의 포도주는 하나님이 허락하신 심판의 도구입니다. 그러니 그 바벨론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면 나의 악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저는 착하고 믿음 좋고 공부 잘 하고 예의 바르고 죄라고는 없는 줄 알았는데 결혼 생활에서 심판을 경험하고서, 사명은 없고 야망에 가득 차 돈 좋아하고 교만하고 생색과 차별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남 탓 하고 미워하며 이 고통에서 구원받기 원하는 것은 마귀에게서 구원받기 원하는 것입니다. 나를 향한 하나님의 진노에서 구원해달라고 기도하셔야 합니다.
셋째, 영원한 복음은 이 세상 가치관이 무너지는 것입니다. 그것은 쉼이 있고 없고의 차이입니다.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고 짐승의 표를 받으면, 세상 가치관이 심어져서 고난의 연기가 세세토록 올라간다고 했습니다. 짐승의 표를 받고 밤낮 쉼을 얻지 못하다가 모두 다 이 땅에서 심판을 받고 있다는 것입니다. 열심히 살고 있던 남편은 남이 보기에는 부러운 의사였고 우리는 아름다운 부부였습니다. 하지만 남편은 세상 가치관을 숭배하고 있었기에 그것 자체가 심판이 되어 쉼을 얻지 못하였습니다. 밤마다 술을 마시며 무언가를 잊으려 했고 감사한 환경에서 늘 울화통이 터진다는 얘기를 했습니다. 남편은 하루 만에 말기 암으로 육이 무너져서 예수 믿고 영이 구원되어 생명의 부활로 나왔습니다. 그런데 정말 무서운 것이 내 속의 음녀 바벨론이었습니다. 이것을 회개하기 위해 끊임없이 진노를 경험하게 하시는데, 바로 이것이 계속되는 심판의 축복입니다.
넷째, 영원한 복음은 인내의 복음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으로 예수에 대한 믿음을 지키는 것이 인내라고 했습니다. 믿지도 않는 악한 사람이 세상에서 창성한 것을 봐야 하니까 인내가 필요합니다. 인내는 믿음과 계명에 대한 순종과 동일시됩니다. 믿음을 단순히 고통을 면하는 것으로 알면 안 됩니다. 오래 참으심은 거룩하신 여호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인데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 나누어주셔야 사람이 가질 수 있습니다. 내 노력을 내려놓고 여호와께서 하는 것을 보는 것이 인내입니다. 저는 인내를 참 잘하는데 이것이 성품인지 믿음인지 늘 생각합니다. 욕심으로 참는 것이 있기 때문에 두려움과 불안이 있다고 생각이 듭니다. 설교 준비를 내 노력으로 하려니까 완벽주의가 있어서 한 번도 만족하지 못하고 주일 아침까지 수정하고 허둥대고 오느라 사람이 없으면 과속을 하기도 합니다. 그런데 강단 위에 서면 허둥대던 것이 하나도 티가 나지 않습니다. 이런 것이 계속 반복되니 인생이 너무 고달프고 앞뒤가 맞지 않는 것 같고 예수님을 부인하는 것이란 생각이 듭니다. 여러분의 인내는 내 노력인지 하나님을 기다리는 인내인지 묵상해 보시면 좋겠습니다.
저는 에스겔을 묵상하며 심판을 해석하였습니다. 18장에 남편이 천국 갔다고 이야기하시고 24장에 표징의 인생을 살라고 하시며 25장 전 세계로 나가라고 하셨습니다. 33장에 복음을 전하지 않으면 핏값을 찾겠다고 하시니 또다시 파수꾼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고, 34장 집사 시절 목회자 세미나를 인도하러 다녔습니다. 37장 말씀처럼 망한 부부 부모형제들이 말씀을 듣고 살아났습니다. 42장 동편에서 하나님의 영광이 오는 날 휘문고등학교 동문을 사용하게 되어 우리들 교회가 창립되었고 47장 동문에서 물이 흘러나와 강가의 잎사귀는 약재료가 되리라는 말씀처럼 우리 모두의 고난이 약재료가 되어서 나누어주었습니다. 마지막 48장 여호와 삼마, 여화와가 거기 계시다고 명령하신 것처럼 우리들 교회도 여호와 삼마의 성전이 될 줄 믿고 여기까지 왔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의 증거를 가지고 말씀으로 인내를 이루게 하시는 영원한 복음의 증거라고 생각합니다. 오직 이기는 것은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에 대한 믿음을 가지고 인내로 지켜내기 위해 쉬지 않고 말씀 묵상을 하는 것입니다. 이 땅에서 인내의 복음으로 잘 싸워 이겨내시는 성도님들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