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양께 속한 자]
계14:1~5
이름대로 살라고 좋은 이름을 지어주는 것일 텐데 저도 제 이름처럼 옳고, 바르고, 훌륭하고, 길하고, 진실로, 참으로, 이런 삶을 살려면 얼마나 이타적인 삶을 살아야 하겠습니까? 아무리 좋은 이름을 지어도 그대로 살 수 없겠지만, 오직 어린 양께 속한 자라면 그런 삶을 살 수 있는 줄 믿습니다. 오늘은 어린 양께 속한 자에 대해서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어린 양께 속한 자는 시온산을 바라보는 자, 즉 거룩을 바라보는 자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일곱 개의 소계시록이 각기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것 같지만, 동시에 일어난 일이기 때문에 입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6장에 한쪽에서는 진노의 대접에서 능히 설 자가 없다고 했는데 동시에 다른 쪽에서는 구원받은 십사만 사천 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여기 14장도 동쪽에서는 짐승의 이름 666이 사방에 있어 나를 꼬이지만, 서쪽 시온산에 선 어린 양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쓴 십사만 사천 명이 있으니 이것을 보라고 합니다. 여기서 시온산은 이 땅에 실현될 주님의 주권이 살아 역사하는 메시아왕국을 의미합니다. 지금 지하 감옥에서 힘들어도 내가 메시아왕국에서 어린양과 함께 십사만 사천 명이 서 있다는 것입니다. 십사만 사천 명이라는 수는 실제 숫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수 3과 땅의 수 4를 곱한 완전수 12의 제곱에 충만 수 10의 세제곱으로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한 명도 낙오되지 않고 시온산에 선다는 뜻입니다. 짐승의 수에 눈이 어두워 짐승의 표 받는 것에 다 끌려가 모두에게 인정받고 일류가 되려고 하지만, 하나님께서 여러 가지 사건으로 내 바닥이 보이게 하시고 나 같은 것을 위해 죽어주신 예수님이 내 인생에 들어오기 시작한 것이 이마에 어린양의 이름이 써지기 시작한 것입니다. 이 땅의 성공도 고통도 다 지나가 버리는 것이지만, 하나님을 믿고 하나님의 가치관으로 바뀌면 지나가 버리는 것 없이 영원합니다. 구속주의 인격에 동참하면서 세상자랑 다 버려도, 어떠한 핍박 가운데도 성도는 승리한다는 것입니다. 내일 어떻게 될까 두려워하는 것보다 오늘을 어떻게 사는가를 오늘 결정하는 것이 거룩을 바라보는 것이고, 오늘 예수님이라면 어떻게 하셨을까 갈등 충만한 것이 성령 충만입니다.
둘째, 어린 양에 속한 자는 구속함의 새 노래를 부르는 자들입니다.
세상은 배울 수 없는 노래를 부르는 자입니다. 이쪽에서는 핍박받고, 짐승에게 절하지 않으면 매매를 못 하도록 제재를 받는데 거기서 승리하고 시온산에 딱 서니 하늘에서 나는 소리가 있습니다. 성도가 승리해서 천사들이 환영하고 노래를 부르는 것입니다. 천사가 불러주는 그 새 노래는 십사만 사천 명만 알아듣는 하늘나라의 언어이고, 하늘나라의 가치관입니다. 물소리 같고, 큰 우렛소리 같고, 거문고 소리 같이 구원받은 성도는 당당하고 힘차고 용기 있으면서도 정적이고 섬세하고 부드러운 선율 같은 찬송을 해야 합니다. 내가 하나님의 엄청난 진리를 전하니까 권위가 있지만, 아름답고 부드럽게 전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시온산에 있어도 소리는 하늘에서 들린다고 합니다. 시온에 섰다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와 함께 사단의 핍박을 이겨낸 자가 서는 것이지, 그 시온산 자체가 천국은 아닙니다. 우리가 천국에 가기위해 필요한 것이 시온산의 공동체입니다. 고난이 극심해도 믿는 사람끼리 모여서 겸손하게 기도하고 울고 회개하는 공동체야말로 천상의 공동체와 같습니다. 북한의 지하 교회에서 예배 중에 어떤 할머니가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로마보다 더한 그곳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이 바로 어린 양과 함께 시온 산에 선 구속의 새 노래를 부르는 공동체이고, 이것이 바로 그들이 지금까지 오륙십 년의 핍박을 받아낼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셋째, 어린 양께 속한 자는 구별된 삶이 있는 자입니다.
어린 양께 속하고 구원의 새 노래를 부르는 사람은 영육 간에 정절이 있는 사람입니다. 로마의 감옥에서 주님을 따라간다는 것은 내 신랑 예수님을 믿지 않으면 할 수 없습니다. 정절을 지키지 않으면서 어떻게 남편을 따라갈 수 있겠습니까? 어린 양이 어디로 가든지 따라가는 비결은 영육 간에 정절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랑도 성공도 능력도 아니고, 어린 양을 따라가는 것은 오직 순종입니다. 하나님의 시간과 내 시간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시간과 공간을 완전히 초월해야 합니다. 멋있게 십자가를 지는 것은 없습니다. 비참함을 겪어보지 않고 성도의 길을 논할 수 없습니다. 어린 양을 잘 따라가면 내가 하나님의 처음 열매가 되어서 온 세계에 제사장 나라가 된다고 합니다(출19:6). 가만히 있어도 예수 잘 믿으면 리더십을 주신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거짓말과 흠이 특징입니다. 그런데 구원받은 자는 거짓말 안 하고 흠이 없는 자가 아니라 거짓말과 흠 때문에 너무나 아파하는 자들입니다. 거짓말은 하나님과 대적하는 것, 즉 참소와 유혹과 내 유익을 위해 하는 모든 것들입니다. 믿음의 사람은 특별한 영웅이 아닙니다. 사사기에서 기드온이 나중에 완성된 후가 아니라, 형편없이 하나님을 의심하고 의심했던 처음부터 큰 용사라고 불러주신 것처럼 죄인인 우리도 어린 양께 속한 자로 불러주신 하나님 때문에 성도의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입니다. 한국 교회의 선각자 소양 주기철 목사님은 끔찍하고 잔혹한 고문을 당하고 순교하셨지만, 목사님의 마지막 말씀이 숭늉 한 그릇, 오이 무침 드시고 싶었다는 것에 은혜를 받았습니다. 영웅이 아니고 어린 양께 속해서 한 걸음씩 갔다는 것이 위로가 되었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 절대치의 힘든 싸움을 싸우고 있습니다. 육체는 연약하고 내가 할 수 있는 것 하나 없지만, 어린 양께 속하였기에 하나님께 의탁하면 주님이 업어 가시고 일으키시고 세워 가실 줄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