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길이라도 가라
창세기 17장 15-27절
17세기 영국의 성공회가 개신교를 인정하지 않고 박해할 때, 존 번연은 2차에 걸쳐 12년의 감옥생활을 하며 신앙을 지켰습니다. 그리고 감옥 속에서 성경 다음으로 많이 읽히는 <천로역정>을 집필했습니다. 신앙의 길은 보이지 않는 길이기에 믿음으로만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 보이지 않지만 가야 할 길이 있습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가기 위해 끊임없이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아브람을 아브라함으로 바꾸시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다르게 살기 위해 할례를 행하라 하시고, 이제 사래의 이름을 사라로 바꿔주십니다(15-16).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에게 돕는 배필이 필요하기에 열국의 어미 사라가 되게 하시는데, 한꺼번에 바꾸지 않으시고 한 걸음씩 행할 것을 가르쳐주십니다. 그래서 우리는 날마다 큐티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사라는 아브라함에게 하갈을 들여서 이스마엘을 낳게 하고, 나중에는 하갈을 학대하며 쫓아낸 사람입니다. 인간적으로는 열국의 어미가 될 자격이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하갈과 사라의 차이는 말씀이 들려서 반응을 하는가 안 하는가 입니다. 부족해도 하나님의 음성이 들리는 사람이 보이지 않는 믿음의 길을 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명령에 아브라함이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영적 후사를 반드시 주신다는 하나님의 약속에도 불구하고 아브라함에게는 자신과 사라의 늙은 모습만 보입니다. 보이지 않는 이삭까지 갈 것 없이, 지금 눈에 보이는 이스마엘이나 후사로 삼아달라고 가시적인 자식과 환경에 기대려고 합니다(17-18). 하나님이 요구하시는 것을 온전히 따르기 싫어서 “하나님, 저는 그렇게 수준 높은 적용은 못해요. 그냥 여기까지!”하고 타협안을 제시합니다.
보이지 않는 길을 갈 때 타협은 없습니다. 하나님은 영적 후사를 낳는 길에 타협은 없다고, 딱 잘라서 ‘아니라’고 하십니다. 사라가 정녕 아들을 낳는다고 하시며 ‘네 몸에서 날 자’에서 이삭이라는 이름도 주시고 구체적으로 양육해 가십니다(19). 아브라함이 이스마엘을 내려놓지 못하니까 이스마엘에게도 육적 축복을 약속하시지만, 하나님의 언약은 이삭과 세우십니다(20-21). 이스마엘이 광야에서 활 쏘는 자로 유명하고 크게 번성해도, 이삭에게 주시는 영적인 복과 이스마엘이 받은 육적인 복은 차원이 다른 것입니다. 이 땅에서 수천 년 동안 축복을 받아도 영적 후사가 되지 못하면 일시적인 것입니다. 연약하고 보잘 것 없어도 예수님을 믿는 영적 후사가 되는 것이 영원한 축복의 길입니다.
순종함으로 보이지 않는 길을 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말씀을 마치고 올라가시자, 이에 아브라함이 즉시 순종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자신과 이스마엘과 집안의 모든 남자의 양피를 베고 할례를 행합니다(22-27). 보이지 않는 이삭과 이삭 후에 열국의 조상이 될 것까지 보고 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아브라함이 알아들었습니다. 막연한 희망이 아니라, 지금까지 양육해주신 과거의 경험에 근거해서 하나님을 신뢰하게 됐습니다. 이방 민족이 언제 쳐들어올지 모르는데, 온 집안의 남자들이 양피를 베고 누워있다는 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으면 할 수 없는 일입니다. 아브라함이 보이지 않는 영적 후사 이삭을 붙잡기 위해서 이스마엘의 양피를 벰으로써 육적 자녀를 끊어냈습니다. 자녀를 영적 후사로 세우기 위해 내 삶에 할례를 행하고 연약함과 수치를 드러내야 합니다. 내 자녀가 예수님을 믿게 된다면 다른 것은 모두 내려놓기로 적용하고,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아직 보이지 않는 이삭이지만 보이지 않아도 가야 할 길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보이지 않는 이 길을 갈 때 열국의 아비, 열국의 어미로 나를 세우시고 반드시 영적 후사를 낳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가라사대 아니라 네 아내 사라가 정녕 네게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 이름을 이삭이라 하라 내가 그와 내 언약을 세우리니 그의 후손에게 영원한 언약이 되리라” 창17: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