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배와 설교, 찬양을 통해 말씀 앞에 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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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증인]
계11:1~6
증인은 헬라어로 마르투스(순교자), 즉 목숨을 걸고 주님을 증거하는 것입니다. 스펄전 목사의 설교 속에 나오는 버틀러 부인은 굉장히 병약한 몸이었지만, '죽어가는 제 말 좀 들어보세요.'라며 6700명을 전도했다고 합니다. 일곱 나팔재앙 가운데 여섯째 나팔재앙까지 나왔는데 재앙 가지고는 안 되고 복음으로만 변한다고, 작은 책의 권세로 밧모섬에서 말씀을 씹어 먹은 것을 예언하라는 사명을 주셨습니다. 여기서 절대적인 역할을 하는 두 증인의 일은 무엇인지 보겠습니다.
첫째, 성전을 척량하는 일을 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보호받을 참 교회와 거짓 교회를 엄격히 골라내신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연약하고 누구나 무시할 수밖에 없는 지팡이 같은 갈대를 가지고 척량하라고 합니다. 속은 곧지만 겉은 부드러운 갈대로 누구든지 그 사람에게 맞는 증거를 하는 건데, 이럴 때 참된 예배자를 골라낼 수 있는 것입니다. 성전 밖 척량이 안 되는 부분은 이방인에 붙여서 마흔두 달 동안 짓밟는다고 하시는데, 마흔두 달은 교회 시대 초림과 재림 사이에서 가장 많은 복음이 전파되고 적대세력도 가장 고조되는 기간입니다. 구원받은 자로서 깨어서 성전 밖을 짓밟는 마귀와 힘겹게 전투해 나아가야 하는 것이 두 증인의 역할입니다.
둘째, 회개의 권세로 예언을 합니다.
복음 때문에 두 증인은 굵은 베옷을 입었습니다. 예언할 때 나의 물리적 힘이 아니라 회개하고 참회하는 모습으로 나가야 합니다. 하늘에 속한 성도의 권세를 가진 신분과 십자가 밑에 있는 교회로서의 두 가지 신분을 구별해야 합니다. 환난 속에서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삶으로, 입으로 복음을 전하며 사는 힘이 바로 권세입니다. 짓밟힐 수 있는 것은 십자가이고, 십자가는 영광이고 이 영광에 하나님의 무게가 입혀지니까 내가 십자가를 잘 지면 거기에 권세가 있다는 것입니다. 짓밟히는 것 같으나 권세가 있습니다. 어떤 집사님이 남편이 바람을 피우며 수치를 주는데, 이혼할 수도 있지만, 가정을 지키려니 날마다 하나님께 부르짖는 기도의 사람이 되었습니다. 고난당하는 그 한사람의 기도 때문에 우리들교회가 살아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끝까지 말씀의 등불을 끄지 않습니다.
감람나무는 기름 부음을 입고 성령의 충만한 은혜를 입은 성도들이며, 촛대는 하나님의 교회를 상징하는데 두 촛대는 일곱 교회 중에서도 특별히 증거의 사명을 맡은 교회를 뜻합니다. 주의 복음을 들고 나서는 증인들은 성령님의 기름을 공급받아 이 세상에 빛을 전하는 촛대의 역할을 하게 되는 줄 믿습니다. 토마스 선교사가 자기를 죽이려는 사람에게 마지막까지 웃으면서 붉은 헝겊으로 싼 성경책을 던진 것이 너무 인상 깊어서 결국은 많은 사람이 복음을 받아들이게 되었습니다. 회개의 권세를 가지고 나갈 때 이런 두 증인의 권세가 임하게 될 줄 믿습니다.
넷째, 기적의 권세를 주십니다.
증인의 입에서 불이 나온다고 하는데, 그 불은 말씀의 불을 의미합니다. 비를 오지 못하게 한 엘리야와 물이 피가 되게 한 모세의 기적 사건은 성령의 능력을 힘입은 백성들의 능력이 막강함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러나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을 죽이는 혁혁한 공을 세우고도 죽을 뻔한 경험을 거치면서 하나님은 세미한 음성 가운데 계시다는 그 말씀의 위력을 엘리사에게 전해주고 자신은 승천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통로일 뿐입니다. 성경을 읽어서 예수님을 체험하면 예수님의 목격자로 예수님을 보여주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한 목자님은 큰 기업의 CEO로 계시다가 회사에 문제가 생겨 재기를 못 하고 여든이 가까운 나이에 아파트 환경미화원을 하고 계십니다. 하루는 청소가 끝나 가는데 외제차가 멈춰 서더니 차 주인이 실내에 술 먹고 토한 것을 치우라고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까지 해야 하는가?갈등했지만, 시킬 사람이 청소부밖에 더 있겠나 생각하며 다 치우고 나니 그 사람이 미안했던지 수고비를 주려다가 눈이 마주쳤는데 집사님이 CEO로 있을 때 아래 직원이었다는 것입니다. 그 사람이 놀라 사장님이라 부르며 일어나서 집사님을 영접하니 전에 청소부라고 무시하던 경비원들이 이제는 알아줘서 좀 편해졌다고 합니다.
내가 증인이 되기 위해서 해를 받는 것이 확실한 증거로 예수님의 친히 사심을 나타내는 비결입니다. 외적으로는 짓밟히게 하시고 내적으로는 이것을 받아들이게 하심으로 안과 밖으로 성전을 척량하게 하신 줄 믿습니다. 짓밟히는 환경에서 회개의 권세로 마지막까지 말씀의 등불을 켜고 있으면 하나님께서 기적의 권세를 허락해주셔서 우리 모두 예수를 믿게 될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