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사람은 달라!!
창세기 17장 9-14절
아들이 인생의 목적이었던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았지만,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향한 하나님의 꿈을 이루기 위해 다시 찾아와 주십니다.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사람은 결말도 중요하지만 과정도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세상과 다르게 살며 “하나님의 사람은 달라” 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나와 내 후손 대대로 언약을 지켜야 합니다. 아브람에서 열국의 아비 아브라함으로 거듭난 후에 ‘너와 네 후손 대대로 언약을 지키라’고 하십니다(9). 대대로 언약을 지키는 것은 자녀를 믿음으로 키우는 것입니다. 이스마엘에게 번성의 축복을 주셨어도 아무 것도 요구하지 않으셨는데, 아브라함에게는 후손 대대로 언약을 지키라고 하십니다. 이스마엘의 번성은 육의 번성입니다. 육적으로 잘난 자녀도 믿음으로 양육하지 않으면 언약을 지킬 수 없습니다. 아직 영적 후사인 이삭이 태어나지 않았지만 보이지 않는 축복의 약속을 믿고 말씀을 지키는 본을 보여야 합니다. 배우자와 자녀가 아직 믿지 않아도 내가 언약을 지키는 본을 보이고 갈 때 영적 후사가 될 수 있습니다.
할례를 행해야 합니다. 아브라함에게 속한 남자와 그 후손은 할례를 받으라고 하십니다. 할례는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거룩하게 구별되는 언약의 표징입니다(10-11). 태어나서 팔 일만에 할례를 행하는데 죄를 짓기 쉬운 생식기의 표피를 벰으로써 거룩하게 살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할례는 아이의 믿음이 아니라 부모의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내가 원해서 거룩해지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이 인도해 가십니다. 하나님의 인도에 믿음으로 반응하는가 아닌가가 이삭과 이스마엘의 차이입니다. 부모가 믿음으로 키우겠다는 신앙고백으로 유아세례를 받은 자녀는 반드시 믿음으로 반응할 것입니다. 결혼식이 결혼의 보증이 되듯이 할례(세례)가 구원의 증거는 아니지만 구원이 보증이 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물세례보다 중요한 것은 성령세례입니다. 할례가 내 몸에 칼을 대는 아픔이듯이 성령세례는 마음의 할례(렘4:4)로 예수님 때문에 고통 받은 흔적입니다. 예수님 때문에 세상을 끊고, 중독을 끊고 내 마음과 가치관에 할례를 행하는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은 할 수 없는 적용을 하며 하나님의 사람은 다르다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이웃과 함께 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자손이 아닌 이방인에게도 할례를 행하라고 하십니다(12-13). 아브라함 역시 우상을 섬기다가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남들보다 먼저 부르심 받은 것 이상도 이하도 아닙니다. 먼저 믿었다고 잘난 척 할 것 없이 누구에게나 복음을 전하고 공평하게 대우함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달라” 라는 말을 들어야 합니다.
영적 공동체에서 끊어지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할례 받기를 거절하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지 않겠다는 의지의 표현입니다. 예수의 흔적이 없는 사람은 언약에서 끊어지고 영적 공동체에서 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14). 모세도 아들들에게 할례를 행하지 않아서 하나님이 죽이시려고 한 일이 있습니다(출4:24). 지도자라도 언약을 지키지 않으면 하나님의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영적 후손의 조건은 몸과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입니다. 내 인간관계와 시간과 공간에도 할례를 행해서 세상 공동체가 아닌 영적인 공동체에 들어가야 합니다. 차별 없이 모인 목장에서 나와 다른 사람들을 만나며 힘든 이야기를 들어주는 훈련이 성공하는 습관입니다. 사소한 일에도 말씀을 지키며 영적 공동체인 목장과 예배에 참석하는 것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걸어가는 시작입니다. 내 삶에서 십자가 지는 적용으로 “하나님의 사람은 달라!!” 라는 말을 들으며 하나님의 꿈을 이루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또 아브라함에게 이르시되 그런즉 너는 내 언약을 지키고 네 후손도 대대로 지키라” 창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