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락하신 심판]
계6:1~6
오늘 본문 말씀 4절에 하나님의 허락을 받아 심판이 시작되었다고 합니다. 인을 하나씩 뗄 때마다 환난과 고통의 상징이 나오는데 이것은 미래적인 사건이 아니라 시대마다 발생하는 공통적인 사건으로 이해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재앙을 통해서 우리에게 돌아오라고 하십니다. 이 재앙의 내용은 무엇일까요?
첫째,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재앙의 심판이 옵니다.
첫째 인의 재앙은 정복자의 출현입니다. 네 생물 중 사자와 같은 모습의 첫째 생물이 오라하고 명령을 내리는데, 이 재앙은 흰말 탄 기사에게 내려진 것입니다. 흰색은 승리의 색이고, 말과 활은 전쟁을 상징합니다. 백마를 탔다는 것은 승리한 정복자를 의미합니다. 능력과 실력이 있고 깨끗하고 거룩하기까지 하니 꼭 예수님과 비슷합니다. 우리는 이런 외모에 다 넘어갑니다. 좋은 역할에 대한 우리의 고정관념으로는 총리 요셉이 찬송의 대상입니다. 반면, 며느리와 동침한 유다는 저주의 이름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 유다의 후손으로 오셨습니다. 여러분이 인정하건 안하건 우리 인생이 백 프로 죄인인 것을 보여주는 역할을 한 유다가 신구약의 우두머리 지파를 한 번도 놓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세상에서 이기고 또 이기는 것이 부럽습니다. 부러우니까 두렵습니다. 여기서부터 재앙이 시작되는 것입니다. 이기고 또 이기려고 하는 것은 칼의 노래를 부른 가인의 후예 라멕처럼 이 세상 인생의 특징이면서 고통입니다. 예수 믿고도 이기는 하나님만 생각합니다. 그러나 이기는 쪽이 있으면 반드시 지는 쪽이 있지 않겠습니까? 이기고 또 이기려는 인간의 욕심 때문에 전쟁이 그치지 않고 그 이면에는 기근과 사망의 고통이 따릅니다. 이기고 싶은 나의 욕심이 재앙의 근원입니다. 그러니까 너희가 당하는 로마라는 나라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심판이라는 것입니다. 자기를 사랑하는 고통이 연결고리로 쭉 이어져 언제나 이기고자 하는 우리를 훈련하시기 위해 하나님께서는 로마에게 승리의 면류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무엇이든 하나님께서 허용하시는 범위까지만 가능하다는 것을 가르쳐주시면서 너희들은 로마를 두려워 말고 부러워 말라고 하십니다. 이 땅에서 유다처럼 험한 인생을 겪지 않고서는 주님을 만날 자가 없습니다.
둘째, 화평이 제해지는 심판이 옵니다.
두 번째는 송아지 같은 둘째 생물이 오라고 부릅니다. 특징은 붉은 말 탄 자입니다. 그들의 임무는 땅에서 화평을 제하여 버리는 것입니다. 피는 전쟁의 의미와 그리스도 보혈의 승리라는 의미도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전쟁과 승리를 통해서 나를 훈련해 가신다는 것입니다. 4절에서 서로 죽이게 하고란 이기고 또 이기고자 하는 악으로 말미암아 벌어지는 전쟁의 본질을 표현한 것입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마10:34). 주님이 제자들에게 전도하라고 파송하시면서 핍박과 미움받을 일이 있고 그 중심에 나를 죽이고자 하는 가족이 있다고 하십니다. 한 집안에 복음이 들어가기 위해서는 화평이 깨어지는 일이 생길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하나가 되는 본질적인 화평을 위해서 깨어져야 할 일시적 화평이 있습니다. 가족 간에 인간적인 화평을 원하면서 서로 집착하고 성공만 기대하기에 기대한 만큼 분노하고 죽일 듯이 미워하게 됩니다. 날마다 내 죄와 싸우고 자기 부인과 회개가 없는 세상 모임은 사건만 드러나면 부글부글 본색이 나옵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이 땅에서 잠시 화평이 제해지는 것을 통해 주님과 진짜 화평을 이루기를 원하십니다.
셋째, 기근의 심판이 옵니다.
셋째 인을 떼시니 사람 같은 모습의 생물이 오라 하는데 특징은 검은 말 탄 자입니다. 그 손에 저울을 가지고 있습니다. 저울의 기능은 무게를 측정하기 위해서인데, 이는 기근의 심각성을 드러냅니다. 화평이 제해지니 염려가 많아지고 점점 이해타산이 되어서 나누고 싶은 마음이 없어지니까 기근이 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이런 우리를 불쌍히 여기셔서 한계가 있는 고난을 허락하셨습니다. 밀 한 되와 보리 석 되는 살 수 있을 만큼 굶지는 않을 고난에 감람유와 포도주는 공급하겠다고 하십니다. 견딜만한 고난으로 너희가 빨리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이 기근은 예수그리스도가 내 인생에 우뚝 서기 위해 일어나야 할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건설하며 심으시려면 먼저 뽑으며, 파괴하며, 파멸하며, 넘어뜨리는 이 네 가지가 선행돼야 한다고 하십니다(렘1:10). 십자가가 먼저고 부활이 나중입니다. 내게 온 기근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로 알고 인정해야 합니다.
넷째, 어린양만이 진정한 해결책입니다.
어린양이 심판을 시작하셨습니다. 끝낼 자도 어린양이십니다. 나를 위해 돌아가신 그 어린양이 새로운 인생이 되게 하신 그 주님이십니다. 눈 앞에 펼쳐지는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담대한 이유는 사나 죽으나 어린양의 은혜 안에 거하는 자들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어린양 되신 예수님은 우리에게 모든 것을 다 주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하다고 판단되는 것은 모두 허락하실 것입니다.
오늘은 제 간증을 하겠습니다. 저는 착하고 천사 같고 전문적인 고도의 훈련을 받아 피아노를 치면서 내가 마음먹으면 안 되는 것이 없었습니다. 이것이 재앙의 시작이라는 것을 그 때는 몰랐습니다. 결혼하고 나서 알 수 없는 동여맴을 당하면서 내가 왜 이렇게 미움을 받나 했어도, 그 때는 공동체도 없고 어린양과 같이 받는 미움이 아니었기에 화평이 깨졌습니다. 물질의 기근, 부부간의 기근으로 행복의 기근이 오면서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그 자리에 주님께서 저를 찾아오셨습니다. 가난한 집 딸이어도 못 하는 것이 없다고 생각한 제 교만이 깊고 넓이가 너무 넓어서 하나님께서 나를 동여맬 수밖에 없던 것입니다. 그로 인해 제가 얼마나 돈을 좋아한 야망의 사람이었는지를 깨달았습니다. 우리 어머니가 적으신 설교 노트를 쓰레기통에 처박고 그 초라한 어머니를 인정하지 못한 나인데, 시댁에서 날 인정하지 못하는 것은 너무 당연했습니다. 주님의 계획 속에 있는 인생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은 제가 쫓겨나지도 이혼당하지도 않게 해주시고 남편과 시어머니를 다 구원해주시고 오늘날 이런 삶을 살게 해주신 줄 믿습니다. 내게 온 기근을 재앙으로 받아들이고, 내 힘이 아닌 어린양만이 진정한 해결책임을 믿고 예수님 인도하심 따라가는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