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노래]
계5:8-14
1차원적인 감사는 내가 남보다 잘될 때만 감사하고, 2차원적인 감사는 남이 나보다 못해서 감사하고, 3차원적인 감사는 '불행해도 안 되도 범사에 감사'로 이게 진짜 감사입니다. 감사하는 마음은 스스로가 어떤 좋은 일에 수혜자가 되었음을 인식하는 거라고 로버트 에이먼스는 말합니다. 철이 들수록 감사의 조건이 많아지지만 성인 아이일수록 감사가 없습니다. 새노래는 3차원적인 감사를 하는 사람들이 부르는 노래로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서 옆의 사람들이 따라 부르게 됩니다. 그렇다면 새노래는 어떻게 부를까요?
첫번째, 새 노래를 부르려면 기도를 쌓아야 합니다.
계시록의 주제는 어린양의 심판과 구원입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대로 기도와 이 새노래를 부르면 누구도 심판이 구원으로 바뀝니다. 기도는 금대접에 쌓아놓으시는데 우리의 기도는 주님께서 한 어휘도, 한 방울도 잃어버리시는 법 없이 하늘나라에 쌓입니다. 출애굽기 30장 37~38절에 나온 향이 기도인데 자기 방법대로가 아닌 하나님 뜻대로 해야 합니다. 하나님 뜻대로 기도하는 것은 거룩한 기도를 의미하고 거룩한 기도가 새노래입니다. 거룩한 기도는 고난 가운데서 울려 퍼지는 기도입니다. 로마에게 학대받고 있는 이스라엘인들의 기도가 간절하기 때문에, 특별히 간절한 기도를 하나님께서 금대접에 쌓으십니다. 애굽은 탈출했지만 로마는 살면서 변화시켰습니다. 그러니까 내가 아무리 힘들어도 장차 올 영원한 영광을 바라보고 순간의 삶에서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라는 겁니다. 그러면서 기도의 비밀을 가르쳐 주십니다. 우리는 천국을 그냥 사모할 수 없습니다. 이 땅에서 나그네가 되어서 사백년 동안 종노릇을 해야만 주님의 자녀가 되는데 우리는 모두 이 땅에서 객이 아니고 주인으로 살려고 합니다. 그렇기에 나그네 인생길을 잘 가르쳐줄 사람이 바로 우리 식구들입니다. 내 식구가 속을 썩일 때 '하나님을 바라봐, 이 땅은 다 헛거야' 라는 기도가 나옵니다. 속 썩이는 식구 때문에 이 자리에 왔으니까 천국에 가면 그 속 썩이는 식구가 최고의 공로자입니다. 아무리 진노의 심판이 와도 땅에 떨어지지 않는 기도로 우리 모든 식구들이 구원될 줄 믿습니다.
두 번째, 새노래는 구원의 노래입니다.
한마디로 구원의 노래는 어린양 예수를 찬양하는 것입니다. 하늘과 땅에서 찬송과 영광을 받으실 분은 어린양 예수 그리스도밖에 없다고 하면 구원이고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 외에 뭐가 있다고 생각하면 심판입니다. 주님만이 나의 삶의 이유이고 나의 구원의 근거라는 고백을 앉으나 서나 하는 것이 새 노래입니다. 그런데 셀 수없이 많은 천사가 어린 양 예수그리스도의 뒤에서 찬양을 하고 있는데 우리 어린양은 그 능력을 쓰지 않고 이 땅에 와서 힘없이 십자가에 못박혀 죽으셨습니다. 이렇게 구원은 내 능력을 쓰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데 내가 구원을 받고 보니까 예수그리스도 옆에 셀 수 없는 무리가 둘러서 있기에 나도 구원받았으면 우주의 셀 수없는 무리의 구원을 향하여 나가야 됩니다. 나만의 구원을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서 나가라고, 이스라엘도 로마의 구원을 위해서 나가라고 사명을 주십니다. 그 죽어짐의 새노래를 부를 때 로마가 그걸 봅니다. 그런데 우리가 다 나 밖에 모르기에 하나님은 할 수 없이 핍박도 허락하십니다. 역대상에 헤만이라는 찬양대장은 소시부터 고난만 당했지만 아들 열넷을 낳으면서 모두 찬양이라고 이름을 지은 것을 볼 때 소싯적부터의 고난은 새노래를 부르는 비결입니다. 저는 피아노를 전공했지만 지금 설교로 늘 여러분에게 새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새로운 가치관의 노래를 부를 때에 내 옆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나를 따라서 구원의 새노래를 부릅니다.
세 번째, 합당한 리더십을 주십니다.
어린 양이 인봉 떼는 것도 합당하고 어린양에 대한 찬양도 합당하다고 했는데 그 합당한 이유는 십자가를 지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에 우리도 천천이요 만만인 능력을 쓰지 않고 주님처럼 죽어지고 썩어지고 밀알이 되어 섬기기로 작정하고 십자가에 못박혀 죽는 이 역할을 감당하면 다스릴 수 있는 리더십을 주십니다. 리더십은 섬김입니다. 창4장19절~22절에 보면 새노래에 반대가 되는 '칼의 노래'가 나옵니다. 라멕은 돈과 힘이 생기니까 자기 능력을 과시하면서 무자비한 살상을 노래하고 칼의 노래를 부릅니다. 주님은 사자의 모습이 아니라 죽임당한 어린 양의 모습으로 이 세계를 변화시켰습니다. 내 환경에서 내 능력을 자랑하지 말고 어린 양의 능력을 높여야 하고 그럴 때 합당한 리더십을 주십니다. 어디서나 섬기는 자는 리더십을 갖게 되어있습니다. 회사에서, 시댁에서 각자 자기의 자리에서 새노래를 부르셔서 리더십을 가지셔야 구원도 전도도 됩니다. 자족한다는 것처럼 좋은 리더십은 없는데 저는 학생의 자리, 며느리의 자리, 아내의 자리, 엄마의 자리에 잘 있었더니 지금 이제 목사의 자리에 있게 하십니다. 여러분이 기쁘지 않고 만족이 안되는 이유는 공부를 못해서도, 자리가 시시해서도, 결혼이 잘못되서도 아닙니다. 어린 양의 속죄 사역이 안 깨달아지기 때문에 어떤 것에서도 삶의 진정한 의미를 느끼지를 못합니다.
목사님 사모님의 간증입니다. 가정이 깨질뻔한 위기 속에서 건져주신 하나님의 구원이 감격스러워 날마다 하나님께 사랑을 고백했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태평성대가 이루어지자 구원의 감격이 사라지고 운동에 빠져들어 많은 시간과 물질과 관심을 쏟았습니다. 말씀읽기와 기도는 형식적이 되었지만 목사 사모로 잘 믿는 줄 착각했습니다. 이러한 저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죄를 범하면 징계하시겠다고 약속하신 대로 남편의 외도라는 심판의 사건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원망하고 죽어갈 때 어린 양 예수께서 새노래를 배울 수 있는 우리들 공동체로 인도하셨습니다. 그 새노래는 바로 제가 죄인임을 고백하는 노래였습니다. 내가 피해자인데 내가 왜 죄인인거야 하고 뒤틀려있는 마음을 교회에 와서 말씀만 들으면 회개하는 마음으로 바뀌게 해주셨습니다. 옳고 그름을 따지며, 편안한 아내가 아니었고, 주님을 사랑한다 했지만 실상은 나를 더 사랑하는 이기적인 자라는 것을 알게 해주셨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끔찍한 환경에서 날마다 기도하며 구원의 노래를 불러야 하는 것이 사명입니다. 그것이 구원 받은 자의 태도입니다. 이 인내의 길을 잘 가면 로마의 사단이 항복할 것이고 로마 속에 있는 생명은 구원받을 것입니다. 하늘보좌를 보여주시고, 사람의 본분을 가르쳐주시고 지침서를 주신 주님은 구원을 위하여 사람들이 전혀 알지 못하는 새노래를 부르게 하심으로 구원으로 인도하라고 하십니다. 이제 구원의 새노래로 기도를 쌓아서 모든 사람들을 주께로 인도하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