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찰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16장 7-16절
서로 사랑한다고 부르짖어도 24시간 서로를 감찰할 수는 없습니다. ‘감찰’은 ‘돌보다’라는 뜻과 함께 ‘심판하다’의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돌보시고 모든 것을 심판하십니다. 좋고 나쁜 것을 다 보시고 심판하시는 하나님이 감찰하시는 하나님, 좋으신 하나님입니다.
도망자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사래의 학대를 피해 도망가는 하갈을 감찰하시고 세상 애굽과의 경계인 술 길에서 하갈을 만나주십니다. 인생 절체절명의 문제인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물으십니다(7). 하나님을 모르면 인생의 출발도 도착지도 모르는 허무한 인생입니다. 그래서 있어야 할 자리에서 벗어나 죄를 향해 달려가는 것이 인간의 본성입니다. 애굽의 종 하갈을 믿음의 아브람 집으로 불러주시고 그 씨를 주셨는데 그것이 축복인 줄 모르고 도망갑니다. 조금만 유혹이 있으면 세상으로 도망가고, 현실을 피해서 술, 음란, 게임 중독으로 도망합니다. 그 중독이 대물림되어 도망가는 부모가 도망가는 자녀를 만드는 것입니다.
고통 중에 감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갈은 종이라는 자기 주제를 알고 여주인 사래를 피해 도망한다고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그 고백을 듣고 내려주신 하나님의 처방은 주인에게로 돌아가서 그 수하에 복종하는 것입니다(8-9). ‘복종’은 학대에 자신을 내어놓는 것입니다. 사래가 계속 학대해도 돌아가서 그 학대를 당하라고 하십니다. 육의 주인에게 복종하지 않는 사람은 영의 주인이신 하나님께도 복종하지 못합니다. 내 머리로 주신 남편, 부모, 상사가 좋건 나쁘건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질서에 순종하는 것이 나를 위한 처방입니다. 내가 복종할 때 하나님은 자손이 번성하게 하시고, 이스마엘(여호와께서 고통을 들으심)이라는 아들을 주시고, 그 아들이 들나귀 같이 된다는 세 가지 약속을 주십니다(10-12). 사래와는 직접 만나지 않으셨는데 비천한 여종 하갈을 만나시고 약속도 주십니다. 예수께서 우리를 위해 비천한 모습으로 오신 것처럼 하나님은 비천한 자를 만나주시고 ‘브엘라해로이-감찰하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게 하십니다(13-14).
죄악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의 위로를 받은 하갈이 아브람의 아들 이스마엘을 낳았습니다(15-16). 그러나 믿음의 아브람에게서 나왔어도 자연적 출생으로는 영적 후사가 될 수 없습니다. 하갈과 이스마엘이 주인공 같아도 하갈은 그저 하나님은 모든 이의 고통을 들어주신다는 모델일 뿐입니다. 이스마엘처럼 육의 자손이 영의 자손보다 먼저 번성할 수 있지만 하나님은 그 모든 죄악을 감찰하십니다. 이스마엘이 번성해도 하나님의 약속으로 낳은 자녀가 아니기에 아브람과도 하나님과도 상관없는 자가 됐습니다. 도리어 원수가 되어 오늘 날까지 중동 분쟁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방법이 아닌 사람의 방법을 택한 아브람의 실수가 자손 대대로 올무가 됐습니다. 나를 괴롭히는 이스마엘, 힘든 식구들의 원인은 믿는 나에게 있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잘못된 선택과 죄를 모두 감찰하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에서 벗어난 행위는 악한 열매를 맺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 영향이 자손 대대로 미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내 결정이 집안의 올무가 된다는 것을 알고 날마다 믿음의 선택을 하는 우리들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갈이 자기에게 이르신 여호와의 이름을 감찰하시는 하나님이라 하였으니 이는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감찰하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 함이라” 창16: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