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61편은 다윗이 압살롬을 피해서 마하나임이라는 곳으로 도망하며 지은 시입니다. 다윗을 죽이려고 쫓아오는 사람은 사랑했던 아들 압살롬입니다. 그리고 우정을 나누었던 전략가인 아히도벨과 목숨을 바쳐서 지켰던 백성들도 다윗에게 등을 돌리고 압살롬을 따랐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급박하고 처절한 환경 가운데 있는 다윗이 잠시 그 가던 길을 멈추고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그리고 다윗의 한계상황에서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한편의 위대한 시를 쓰셨습니다. 분노와 두려움을 내려놓고 하나님께 부르짖은 다윗의 모습을 묵상하며 각자에게 닥친 환란을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시간으로 바꾸어 가시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한계상황에서 다윗은
첫째,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사람이 아니라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다윗은 자신이 두려움에 쫓기게 된 모든 이유가 다른 사람의 아내였던 밧세바를 자신의 권력으로 탐하고, 이복누이를 강간했던 아들 암논과 이 암논을 죽인 압살롬을 하나님 앞에서 징계하지 않고 내버려 두었던 죄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저 사람들 때문이 아니라 내 죄와 삶의 결론으로 내가 땅 끝에 내려갔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저 사람을 벌하고 이 사건을 해결해달라고 부르짖는 것이 아니라 그저 불쌍히 여겨달라고 부르짖습니다. 세상을 향해 부르짖으면 더 큰 죄악과 슬픔에 빠지게 됩니다. 하지만 회개의 심령으로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사건이 해결되는 낮은 수준의 바위가 아닌 사건을 뛰어넘는 높은 바위로 인도하시고 세상은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믿음의 사람이 되실 줄 믿습니다. 지금 한계상황에 다다른 대상과 사건은 무엇입니까? 나는 누구를 향해 부르짖고 있습니까? 물질 우상으로 살다가 친한 형에게 배신당한 후 우리들교회에 오게 된 저는 개척목회자인 어머니를 어렵게 하는 어떤 분의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그래서 예전에 했던 것처럼 엎어버리려고 바로 수원역으로 갔는데 그동안 목사님께 들었던 말씀과 눈물 콧물 흘리며 했던 회개와 지질한 나눔을 들어주셨던 목장 식구들이 생각나서 멈추었습니다. 그렇게 왔다 갔다 네 번을 반복하면서 하나님께 부르짖었습니다. 지금도 사건이 나아지거나 해결된 것은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제 부르짖음의 응답으로 말씀이 들려서 제가 회개하게 되는 가장 귀한 다윗의 열쇠로 찾아와주셨습니다.
둘째 , 피해야 합니다.
3절에서 다윗은 하나님이 나의 피난처라고 고백합니다. 감당할 수 없는 사건과 대상을 만났을 때 그래도 나는 돈이 있으니까, 공부 잘 하는 자식이 있으니까, 친구가 있고 엄마 아빠가 있으니까라고 생각하면 하나님은 나의 피난처가 되실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내가 믿었던 것들이 무너지는 사건을 경험하게 하십니다. 비록 믿었던 대상에게 배신을 당하는 것은 너무 마음 아프지만, 그 사건으로 영원히 변하지 않는 피난처를 만나고 찾게 되었다면 감사할 사건입니다. 내가 하나님 안으로 피하기만 하면 하나님께서 나의 망대가 되셔서 외적인 유혹으로부터 나를 보호해주시고 내 속에서 일어나는 죄악들을 말씀으로 깨닫게 하시고 막아주십니다. 내가 가장 안전하고 편안하게 느끼는 대상은 무엇이고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날개 아래에서 말씀을 듣고 내 죄가 보이는 것이 최고의 축복이라는 것을 인정하십니까? 몇 주 전 저는 우리들 교회 청년들과 함께 베트남 마약센터를 방문했습니다. 그곳은 매일 하루 세 번씩 집회가 열리는데 거기에서 하나님을 만나 중독이 끊어졌다고 간증해주신 분이 계셨습니다. 지금 힘겨운 각자의 싸움을 감당하시느라 지치신 모든 분이 하나님의 날개 아래 피함으로 각자의 사건에서 하나님을 만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세 번째, 한계상황에서 내가 이행해야 할 서원이 있습니다.
다윗은 사무엘하7장에서 자신이 받았던 말씀을 붙잡고 하나님께서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시며 그 왕위를 끊어버리지 않을 것을 확신했습니다. 말씀을 믿고 붙잡으면 힘든 일이 와도 말씀 아래 피할 수 있고 나를 보호해 달라고 간구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다윗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주의 이름을 찬양하며 나의 서원을 이행하는 것입니다. 서원의 본질은 나를 죽이고 하나님을 높이는 것입니다. 아무리 말씀을 들어도 내가 드릴 적용이 없고 회개가 없다면 한계상황이 왔을 때 머릿속에 맴도는 말씀만으로는 사건을 돌파할 수 없습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에 반응하여 나를 낮추고 하나님을 높이는 손과 발이 가는 적용이 있어야 하는데 그것을 몰랐던 사람이 바로 저였습니다. 저는 목회자로서 가방 끈이 짧다는 열등감과 비교의식으로 설교를 통해 사역자들의 편을 가르고, 저도 모르던 교묘한 악과 교만으로 작년에 치리를 받았습니다. 말씀의 공동체 안에 있지만 작은 것 하나라도 하나님을 높이는 삶을 살려고 고군분투하지 않으면, 내 안에 죄악 된 본성에 넘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나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피난처가 되시는 하나님께 드릴 수 있는 나의 서원은 무엇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