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하시는 교회]
계 3:7~13
빌라델피아 교회는 하나님의 칭찬만 있는'사랑하시는 교회'라고 합니다. 이 교회는 날마다 지진으로 집이 무너져 내일을 바라볼 수 없었고 포도가 많이 나면서 술에 쩔어 살기까지 하는, 일곱교회 중 가장 열악하고 황폐한 환경이었지만 소아시아의 어떤 교회보다도 믿음의 보루로서 모범이 되었고 지금까지도 명맥을 잇고 있습니다. 빌라델피아 교회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 다윗의 열쇠로 열린 문의 축복을 주셨습니다(7절).
하나님은 가장 약하고 힘없는 이 교회에 거룩하고 진실된 하나님의 이름으로 가장 실력있는 분으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 주셨습니다. 죄로 점철된 인생의 결론으로 온 사건 앞에서 내가 주 앞에 벌레만도 못한 죄인이라는 걸 깨닫고, 힘도 없고 능도 없고 그냥 아무 것도 바라볼 것이 없어서 주님만 바라보는 이 황폐한 빌라델피아 교회에게 네가 나만 바라보았기 때문에 내가 너를 위해서 닫힌 문을 열어주시겠다는 약속으로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나타나신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닫힌 문을 십자가의 죽어주심으로 열어주셨습니다. 다윗의 열쇠는 한 마디로 십자가입니다. 다윗의 열쇠를 가지고 열린 문의 축복을 주셨으니 이제 못할 일이 없습니다.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기도할 때 모든 문이 열려질 줄 믿습니다.
둘째, 사랑의 증표를 보여주셨습니다(9절).
내가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나를 사랑하면 증표를 보여주십니다. 유대인의 간계는 바울도 생명을 내놓는 기도를 할 정도로 정말 무서웠는데 그렇게 괴롭히던 유대인들 몇이 와서 등록하고 영접하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동족인 유대인처럼 같이 믿는 사람이 제일 힘이 듭니다. 유대인의 간계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시험을 참고 주예수를 섬기는 것 밖에 없습니다. 바울의 겸손, 즉 주를 위한 섬김과 눈물이 그들을 복음으로 인도했습니다. 나를 향한 주님의 최고의 사랑의 증표는 내 원수가 예수를 믿는 것입니다. 내 원수가 예수를 믿게 하기 위해
셋째, 사랑의 행위가 있게 하십니다(8절).
8절의 적다라는 말은 헬라어미클란으로 영어의마이크로 즉 가장 작은것을 뜻합니다. 빌라델피아 교인들은 내세울 것 하나 없이 찌질하지만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배반하지 않았습니다. 내 연약한 모습 그대로 하나님을 받아들일 때 하나님은 엄청난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10절에서 사랑의 행위는 말씀을 따라 인내해야 되는데 하나님이 그걸 하게 하셨습니다. 유대인의 간계로 자존심이 무너지는 일이 와도 굽신거림이 아닌 하나님 앞에 내가 얼마나 무가치하고 보잘것없음을 알고 저절로 숙이는 것이 적은 능력입니다.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적은 능력을 가지고 하나님 앞에서 눈물 흘리는 것이 가장 사랑의 행위입니다. 복음 전할 마음이 충만할 때 사랑의 행위가 절로 나와서 인내의 말씀을 지키며 주님의 이름을 배반치 않는 사랑의 행위가 저절로 나올줄 믿습니다.
넷째, 면류관을 빼앗기지 않는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11절).
유대인이 영접한 것에 감격한 나머지 생명의 면류관이 아닌 자랑의 면류관이 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교회와 사람은 구원과 복음 때문에 한결같은 사람인데 하나님은 네가 전도했어도 그 면류관을 빼앗기면 안된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열쇠로 열어주시고 사랑의 증표를 주셔서 유대인들 몇이 돌아와 영접했습니다. 평생 돌아오지 않을 수도 있지만 하나님 자체가 상급이 되어 걷는 사람은 이래도 저래도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때와 기한은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으니 그러므로 절망, 교만, 열등감 느끼지 마시고 하나님 앞에서 사랑받으시는 태도로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이 빌라델피아 교회에 주신 상급과 축복은 무엇입니까?
1) 시험의 때를 면하게 해주십니다.시험이 없게 하겠다는 것이 아니라 고통스럽지만 연단을 통해 인내의 말씀을 지킬 때 시험의 무게가 느껴지지 않는 축복을 주신다는 뜻입니다. 2) 하나님의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 주십니다. 순종한 우리를 성전의 기둥이 되게 해주신다고 하셨는데 황폐한 이곳에서 이제는 기둥이 되어 절대로 요동하지 아니하리라 하면 남편, 아내, 자녀들도 결코 다시 나가지 아니하리라의 축복을 주십니다. 잠시 요동했지만 우리 모든 식구들은 주님의 일을 위한 기둥입니다. 3) 공동체의 축복을 주십니다. 12절의 새 예루살렘은 새로운 믿음의 공동체로 볼 수 있는데 이전에 알지 못했던 천국공동체의 축복 속에서 날마다 새로운 예수님의 이름을 써주시겠다고 하십니다. 오늘은 낙망에서 희망의 예수님을 써가고, 내일은 슬픔에서 위로의 주님을 서로 나누고, 고통 속에서 희락의 주님으로, 추함에서 아름다움의 주님으로 날마다 목장을 통해 주님의 새로운 이름을 써가는 축복을 주십니다.
쉴라 웰쉬는 토크쇼 진행자 및 미국 크리스천 여성연합회 등의 인기강사로 다른 사람들의 문제를 위로해주고 해결해주었는데, 정작 자신은 누구에게도 위로를 받지 못했다고 느꼈답니다. 그녀는 아버지가 정신병으로 돌아가셨기 때문에 자신도 아버지처럼 정신병원에서 생을 마감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외롭고 두려웠다고 했습니다. 홀로 입원 중 예배를 드리던 어느 날 그녀의 마음 깊은 곳에서너는 사랑받고 있다는 음성이 들리며 처음으로 평안을 느끼는 순간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얼마나 받고 있는지를 느꼈으며 하나님이 자신의 모든 권리를 다 몰수하셨다고 느끼는 순간 그분이 자신을 완전히 환영하고 받아들이심을 느꼈다고 합니다.
나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기에 부족한 사람이라는 생각이 계속 우리를 황폐하게 만듭니다. 그리스도는 인생의 문제에서 우리를 구해주려고 오신 게 아니고, 문제가 해결될 때까지 우리 안에 거하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분은 황폐함 속에서 함께하는 교제를 허락하셨습니다. 빌라델피아 교회에 주시는 축복은 황폐함 속에서 적은 능력으로 하나님과 교제만으로도 충분히 만족할 수 있다는 상급을 주신 것입니다. 어떠한 경우에도 하나님의 손을 놓지 않고 가는 것이 가장 사랑하시는 교회가 되게 하십니다. 문제 해결이 아니고, 내가 진정 하나님과 교제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런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길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