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이 들리려면]
김성우 목사
예레미야 20:1~6
진정한 변화는 말씀이 들려야 일어납니다.말씀이 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할지 본문을 통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내 속의 결박을 풀어 펼쳐 놓아야 말씀이 들립니다.
바스훌은 성전의 총감독으로 대제사장 다음으로 높은 신분의 사람입니다.그가 성전에 왔을 때 말씀을 들었지만,예레미야 선지자를 때리고 가두고 고랑으로 채웁니다. '들은지라.'했지만 듣지 않은 것입니다.말씀이 들리려면 우선 그 결박을 풀어야 합니다.우리 안에 있는 죄, 연약함, 나의 수치들을 인정하고 고백할 때, 결박이 풀리고말씀이 들리기 시작합니다.저 역시 외모에 대한 열등감과 음란한 삶을 고백한 후, 묶여있던 결박이 풀어지고 말씀이 들리기 시작했습니다.
1890년도에 우리나라에 선교사로 오셨던 로버트 하디라는 선교사님이 계셨습니다.선교사님은 열심히 설교하고 선교를 해도 성도가 줄자 절망하셨습니다.기도하면서 선교사님 내면에 학벌에 대한 우월감과 백인 우월주의가 자리 잡고 있어, 한국인을 무시한 자신의 연약함을 보게 되었습니다.그리고 하나님과 성도들 앞에 이것을 펼쳐 고백하니 놀라운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다고 합니다.말씀 운동과 죄 고백은 역사 속에서도 항상 함께 일어났습니다.내 마음 깊은 방에 꼭꼭 숨기고 착고를 채웠던 그것을 풀 때 말씀이 들리고 진정한 변화가 시작됩니다.
둘째,사방이 두려움으로 임해야 말씀이 들립니다.
바스훌이 예레미야를 풀어줬는데 예레미야는 고마워하기는커녕'당신 이름이 바스훌에서 마골빗사빕으로 바뀔 것이다.'라고 합니다.마골빗사빕은 사방이 두려움이라는 뜻입니다.자신을 풀어준 바스훌을 저주한 것입니다.우리들 공동체 목장에서 죄 고백을 했는데, 사방이 두려움으로 임해 너무 힘들었다고 고백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바스훌은 말씀을 듣기 위해 예레미야를 풀어준 것이 아니라, 자신의 권력, 교양, 힘으로 풀어주었기에 두려움이 임하였습니다.마찬가지로 우리가 죄 고백을 할 때 인본적인 생각과 목장의 분위기에 이끌려 심지어는 죄를 자랑하고 싶어 내어놓는 분들이 있습니다.그러면 오히려 사방이 두려움으로 변해 죄 고백한 것을 후회하게 됩니다.
바스훌은'자유'라는 뜻인데,저도 자유로운 영혼처럼 제 마음대로 살았습니다.저의 잘못된 부분을 제재해 줄 사람이 없어 내 뜻대로 살다가 공동체의 치리라는 제재를 받으니 처음에는 아주 힘들었습니다. 그러나치리로 사방이 두려움으로 몰려 왔을 때,주님은 말씀으로 찾아와 저를 설득해 주셨습니다.사도행전에도'주의 크고 영화로운 날이 이르기 전에 해가 변하여 어두워지고 달이 변하여 피가 되리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사방이 두려움으로 임해 내가 믿고 의지했던 것들이 무너져 살 소망이 끊겼을 때,그때 바로 예수께서 내 마음에 찾아오시는 것입니다.그리고 그분의 방법대로 하나 둘씩 회복시키시며 멸망 받지 않을 영원한 나라를 나와 내 가정에 세워주십니다.
셋째,모든 것을 다 잃었을 때 말씀이 들립니다.
5절 이하에 계속 반복되는 것이'모든'입니다.왜 모든 것을 다 가져가겠다고 하셨을까요? 다 가져가신이유는 이상한 남편, 아내, 나를 힘들게 한 부모 때문이 아닙니다.바로 말씀이 들리지 않는'나'때문에 모든 것을 다 가져가겠다고 하십니다.저는 부모님으로 인한 고난이 와도, 하나님께서 저의 모든 소유를 다 가져가도, 말씀이 들리지 않았습니다.그런데 내 속의 거짓 예언과 기복과절대 망하지 않을 거라는 거짓말 때문에 내 가족과 친구와 사랑하는 사람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는 말씀을 보며 하나님께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공동체에서 이해되지 않았던 아버지의 마음이 구속사로 해석되고,회개하지 않고 말씀이 들리지 않는 나 때문에 아버지가 수고하셨음이 깨달아졌습니다.이제는 아버지가 말씀이 들리길 기도하며 매 주일 예배드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오늘 말씀1절에'들은지라'로 시작해서6절에도'들은'으로 마무리를 하고 있습니다.결박 당하고 두려움에 둘러싸여 모든 것을 다 빼앗겼다면 바로 말씀이 들릴 때입니다.말씀이 있는 예배, 목장예배, 큐티 묵상에 목숨을 걸고 온 힘을 기울여 말씀을 듣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