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상이 무엇이냐]
고전9:18-27
여러분은 가장 받고 싶은 상이 무엇입니까? 저는 들어가기도 어려운 대학을 4년을 우등으로 졸업했지만 무학자이신 시어머니께 쩔쩔매며 종노릇을 했습니다. 진짜 상을 받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내가 받을 최고의 상에 대해서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로, 내 상은 내 권리를 다 쓰지 않는 것입니다.
신령한 것을 뿌려도 육신의 것을 받지 않았기에 2천년 동안 바울의 열매가 지속된 것처럼 (고전1911,12) 저도 16년간의 재수생 모임을 할 때 내 자녀가 5년간 재수, 삼수로 시험을 치르고 있으니 재수생들이 우리 집을 편하게 여기는 것을 보며 내 권리를 참아야 복음에 장애가 없음을 경험하게 하셨습니다. 바울은 힘들게 수고하며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자신은 무익한 종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장애아를 낳고 돌보느라 24시간을 한 몸처럼 지내는 엄마는 아침 6시까지 자보는 권리를 써보는 게 소원입니다. 내 맘대로 먹고, 자고, 일어나는 것은 대단한 권리입니다. 복음이 들어가면 사랑할 권리, 잘 권리, 먹을 권리를 주님 때문에 저절로 포기하게 됩니다. 복음 때문에 내 권리를 포기하는 게 상이기에 내가 잘하면 상대방이 달라지겠지를 내려놓는 게 또한 상입니다. 중증뇌성마비장애인 미즈노 겐조는 나사렛 예수여 나사렛 예수여 내가 주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나이다와 같은 수많은 죄의 고백을 시로 남겼습니다. 내 죄를 고백하면 편한 사람이 됩니다. 내 권리를 찾으려니까 너무나 불행하고 불쌍하고 다 죽이고 싶어집니다. 내 행동 때문에 복음이 손해 보지 않아야 하기에 내 권리를 힘으로 밀어붙이지 않는 것이 내 상입니다
두 번째, 내 상은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진리가 나를 자유케 했지만 스스로 종노릇하는 것이 복음에 참여하는 것입니다. 복음을 위해 상대의 입장이 되는 것이 최고의 위로이지만 쉽지만은 않습니다. 연세대 교수이셨던 김형석 교수님은 학창시절, 교장선생님이 자신의 권리보다 학생들의 안위를 위해서 신사참배를 하신 후 흘리신 눈물을 회고했는데그 분은 복음에 참예했다고 보여집니다. 바울사도가 고린도 교인들에게 나는 당신의 종이라는 이해의 폭을 가질 수 있었던 이유는 최고의 성자 스데반을 돌로 쳐 죽이는 것을 마땅히 여겼던 죄인이었기 때문에 나 같은 죄인을 살리신 것을 생각하니 누구도 이해가 되는 것입니다. 내가 욕먹는 일로 증인이 되어 사람을 얻는 것이 복음에 참예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한 이백만명중에서 가나안에 들어간 사람은 여호수아와 갈렙뿐입니다. 바울의 고난에도 알아듣는 사람은 한 사람입니다. 오늘 이 시간에 상한 마음을 가지고 이 자리에 온 그 한사람이 상을 얻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 내 상은 절제입니다.
이기려면 훈련과 연습보다 중요한 것이 절제입니다. 성령의 열매 중 마지막은 절제입니다(갈5:22,23). 그만큼 절제가 힘드니 영적 진실성의 결과는 인내인 것입니다. 제 교만 때문에 겪은 시집살이가 당연했지만 그렇게 밟혀도 절제가 하늘에 닿으니 제가 예수를 믿게 된 건 기적입니다. 목회를 하게 하신 것도 바로 이 절제의 훈련 덕분입니다. 썩을 면류관을 위해서도 절제를 하니 예수 믿는 영원함을 위해서는 더한 절제가 필요합니다. 제가 거듭난 뒤 피아노 칠 때와는 비교도 안 되게 성경을 보기 시작하니까 다른 사람을 살리게 되었습니다. 우리들 교회는 성경말씀으로 나누니까 모든 것이 거룩해져서 이혼을 비롯해 별의별 이야기도 거북하지 않습니다. 육체의 연단은 약간의 유익이 있어도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성경묵상이 얼마나 유익한지 모릅니다. 제게 암은 여러 모양 중 하나의 상이며 너무나 유익한 것이었습니다. 제 나이에 큰 수술도 안하고 복음을 전했으면 지금 천국가도 되는 것 아닙니까? 너무 슬퍼 마십시오. 성령과 말씀 충만으로 항암을 하며 다양한 그리스도의 신비를 보이시고 계신다고 생각합니다. 목자로서 성경을 읽고 목장 예배로 사람을 살릴 때 하나님이 자존감을 높여주시는 것은 남을 살리기 위해 얼마나 내 감정, 내 주장을 절제하는지 아시기 때문입니다. 성경을 안보면 인생도 내 열심의 선교도 향방 없이 가기에 더디 가도 목적을 가져야 합니다.
네 번째, 내 상은 내 몸을 쳐 복종하는 것입니다.
신앙생활은 막연한 원리가 아닌 나를 쳐서 복종 시킬 때 구원을 이룹니다. 네 몸을 거룩한 산제사로 드리라고 했지만 적용이 안 되니 내가 전도한 상대방은 기쁜데 나는 하나도 안 기쁠 수가 있습니다. 그럴 때 구원받은 자는 마땅히 버림받을까 두려워해야 합니다. 저도 큐티모임이 지겨워지면, 하나님이 나를 신뢰하지 않으시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이 들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제가 돈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니까 싫어지면 딱 그만둘까봐 무서웠습니다. 그러니 상을 얻기보다 버림받을까 두려워해야합니다. 짧은 인생 한 사람이라도 하나님을 만나게 하시려고 바울에게 춥고, 헐벗고, 주리고, 구경거리가 되게 하십니다. 저에게는 계속 여러분을 살리기 위해서 기도해야 될 일과 생각해야 될 일로 던져 넣으셔서 하나님을 바라볼 수밖에 없습니다.
어떤 초원지기의 나눔입니다. 이분이 예비목자훈련을 시키시는데 한 집사님이 이 대단한 의사 초원님의 이혼, 재혼 나눔에 체휼이 되어 전화를 날마다 주시니 감사했지만 술을 드시고 끝없이 반복 하시니 나중엔 좀 지치셨고 그날도 너무 바빠 전화를 안 받고, 못 받았는데 다음날 그분이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모두 정죄감을 갖지 말라고 했지만 괴로웠다고 합니다. 이분은 종합병원장님으로 너무 바쁘시지만 일주일에 4일 이상을 복음에 참예하니 내가 받을 상이 무엇이냐 안 그러겠습니까?
내가 받을 상은 값없이 복음을 전하고 내가 무익한 종이라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생색내지 않으면 인생이 참 편안한데 부모님께 그런 성품과 믿음을 물려받은 것이 제게 너무 큰 상입니다. 어떤 일이 와서 구경거리가 되어도 이것을 제게 준 가장 큰 상으로 알고 달려가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