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상급
창세기 15장 1-5절
미국의 부유층 부모들이 문제 자녀를 교도소를 방불케 하는 군대식 학교에 보낸다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24시간 감시를 받으며 TV, 인터넷은 물론 부모와의 연락도 금지된 곳인데 부모의 97%가 학교의 혹독한 관리에 만족한다고 합니다. 돈과 권력을 가졌어도 자식 문제는 영원한 부모의 숙제입니다.
자식이 하나님이 주시는 큰 상급입니다. 자식 같은 조카 롯을 떠나보내고 돈도 내려놓은 아브람이 그돌라오멜 연합군을 물리치고도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하나님은 그런 아브람을 찾아오셔서 두려워말라고 말씀해주시고 ‘내가 너의 방패요 상급’이라고 위로해주십니다(1). 그런데 그 말씀을 들은 아브람이 ‘그돌라오멜을 물리쳐주실 것인가’ 묻지 않고 ‘나는 무자하다’고 자식 이야기를 합니다(2). 아브람이 생각하는 가장 큰 상급이 자식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자식은 하나님께서 주시는 가장 큰 상급이자 있어도 없어도 고통입니다. 우리나라 부부 7쌍 중 1쌍이 불임이라고 하는데 그 고통이 암 환자 못지않다고 합니다. 더욱이 자식이 번성의 상징이요 재산이었던 아브람 시대에 무자한 것은 지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와 외로움입니다. 그래서 아브람이 ’하나님의 도움’이라는 뜻의 엘리에셀을 자기 마음대로 상속자로 정하고, 그것이 하나님의 도움이라고 합리화하려 합니다. 주께서 ‘씨’를 안 주셨기 때문이라고 따지듯이 이야기합니다(3). 본문에 나오는 ‘씨’는 히브리 원어로 보면 창세기 3장 15절 여인의 ‘후손’과 같은 단어입니다. 천하에 구원을 얻을 이름이 여인의 후손으로 오신 예수님뿐인데, 생명의 씨인 예수님을 약속해주셨는데도 씨를 안 주셨다고 대드는 것입니다. 자식이 없어도 무자한 것이고, 자식이 있어도 ‘내 자식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은 문제 자녀 때문에 무자한 자가 됩니다. 잘나고 착한 자녀도 하나님을 믿지 않으면 영적으로 무자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공부도 잘하고 믿음도 좋고, 품질이 좋은 자녀를 내 맘대로 상속자를 삼으려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약속의 ‘씨’ 영적 후손을 못 알아보고 잘난 자녀를 상속자로 착각합니다.
영적 후사가 가장 큰 상급입니다. 엘리에셀이 잘 길러졌어도 하나님은 그가 후사가 아니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을 믿고 산전수전을 겪었어도 ‘나는 무자하다’고 영적 열매가 없다고 부르짖는 아브람에게 ‘네 몸에서 날 자’가 후사라고 확인해 주십니다(4). ‘네 몸에서 날 자’는 ‘네 몫의 십자가’를 의미합니다. 내가 몸으로 수고하며 삶에서 지는 십자가를 통해 영적 후사가 온다는 것입니다. 엘리에셀이 도움이 될 것 같아도 내 십자가를 져 줄 수 없습니다. 후사를 얻기 위해서는 내가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결혼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며,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최초의 십자가를 잘 지고 갈 때 우리 집안에 구원의 영적 후사를 허락해주십니다. 십자가를 모르고는 영적 후사를 얻을 수 없기에, 나를 십자가에 붙어있게 하는 아프고 속 썩이는 자녀가 축복입니다. 내 몫의 십자가로 주신 힘든 자녀가 변장된 하나님의 축복입니다.
양육을 잘 받고 있으면 영적 후사를 주십니다. 아브람의 무자한 고난을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실물교육으로 아브람을 양육해주십니다. 그를 이끌어 가시며 밤하늘의 뭇별을 보라고, 그만큼 네 자손이 많을 것이라고 현실의 비전을 보여주십니다(5). 내가 어떤 십자가를 지고 가는지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무자해서, 자녀 때문에 힘들어서 어둔 밤을 보내고 있을 때 나를 양육해주시고 별처럼 많은 영적 후사를 약속해주십니다. 예배와 목장에서 우리들의 삶을 나누는 것이 어둠에서 비추이는 실물교육입니다. 내 현실이 어두운 밤일수록 영적 후사로 살아가는 다른 사람들의 간증과 나눔이 빛으로 다가옵니다. 서로가 빛을 비추는 공동체 안에서 나도 별이 되어서 다른 어둔 사람을 비추게 됩니다. 내가 영적 자녀가 될 때 다른 사람을 영적 후사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임하여 가라사대 그 사람은 너의 후사가 아니라 네 몸에서 날 자가 네 후사가 되리라 하시고” 창1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