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혜와 평강]
계1:4~8
평생 내가 찾는것이 하나님 안에서의 찾음이 아닐때 허무주의를 초래합니다. 은혜는 아무 능력없는 나를 위해 무릎과 허리를 굽히고 찾아오신 예수 그리스도로 인한 평강입니다.
계시록의 은혜와 평강에는
첫째, 교회공동체가 절대적으로 필요합니다.
4절에서 요한이 일곱 교회에 편지를 하는데 일곱은 창세기의 칠일간의 창조로 완전수, 절대 보편수를 뜻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복 있는 자로서 계시를 맡기셨고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가 복이 있고 복의 대상으로 교회공동체를 지목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백성의 구원에만 관심이 있으시며 계시록 역시 각각의 연대기적인 무서운 전쟁이 아니라 우리를 끝까지 구원하시려는 사랑의 책입니다. 지상에도 100% 완전한 교회는 없지만 세상과 달리 내가 백프로 죄인인것에서 시작하는 은혜의 공동체는 갈수록 하나가 되어갑니다. 환란 당하고, 빚지고 원통한 수천명이 모여도 평강,기쁨으로 항하는건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이 안됩니다.지식이 아닌 은혜로 내가 죄인임을 깨달을때 평강이 임합니다. 레슬리 비긴은 성경과 공동체가 서로 뗄수없는 관계로 예배를 통해서 공통체적으로 몸소 살아낼때 복음의 권위가 증명된다고 합니다. 목장은 내가 얼마나 못되고 남을 용납 못하는가를 먼저 드러내는 목자들의 은혜로 인한 겸손의 공동체입니다. 세상 모임은 싫으면 안 가버려도 피로 값 주고 사신 교회공동체는 그걸 다 들어낼때 성화가 되며 은혜와 평강의 비결을 배우게 됩니다.
두 번째, 삼위 하나님이 도와주시기 때문에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창세기1:1에서 삼위의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고 성경이 끝나는 계시록에도 삼위의 하나님이 여전히 마지막까지 도와주시겠다고 하십니다. 계시록 1장에는 하나님이 예수님에게 ‘계시를 주다’ 라는 동사로 직접 계시하시고 예수님이 천사를 통해서는 요한에게 ‘알게하다,지시하다’의 동사로 또 요한이 종들에게 ‘보여준다’는 동사를 쓴 것은 동사의 서로 다른 역할처럼 계시 전달의 차원을 구별을 위해 하나가 따로, 따로가 하나로 도와주신다고 했습니다. 감추어진 것이 드러나며 힘들 때마다 성경의 휘장을 조금씩 내 분량만큼 열면 하나님은 살았고 운동력이 있어서 나의 혼,관절,골수의 영을 찔러 쪼개기 때문에 말씀의 계시를 통해 내가 살아납니다.
세 번째, 충성된 증인인 성자 예수님의 사역입니다.
계시록은 무서운 얘기가 아니라 첫 주일도 ‘복이 있나니’, 오늘도 ‘은혜와 평강’으로 하나님은 복과 은혜,평강의 말씀으로 세상 누구도 못 뗄 인봉을 내 신랑,내 오빠,내 맏형이 되시는 다윗의 자손 예수님을 통해 인봉을 뗐습니다. 계시록1장은 예수그리스도만의 철저한 계시로 우리를 피로써 죄에서 해방하시고 제사장 삼아주셨습니다. 어떤 고난에도 계속되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를 항상 외우고 다니면 은혜와 평강이 넘치지만 은혜가 없이 내 노력으로 사는 사람은 전혀 못 알아들어서 인생이 허무합니다. 남의 고통과 훈련을 위해 내 고난을 보석처럼 아끼고 아주 반짝반짝 닦아서 쓰임을 받아야 됩니다.
네번째, 회개의 역사가 일어나야 은혜와 평강이 있습니다.
스가랴12:12~14에서 다윗의 자손들도 각각 따로 개인구원으로 애통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가정은 회개와 애통이 각각 따로 있는 집으로 우리는 목장에서 그 은혜와 평강을 맛보고 적용을 해봐야 됩니다. 예수님 신랑을 무시하고 세상 신랑을 택하면 통곡할 날이 옵니다. 믿음으로 모든 걸 결정해야 할때 고난때문에 예수님을 원망하거나 찌르지는 말고 주님을 만나는 날을 위해 지금부터 애곡하고 통곡하되 따로 따로 통곡하는 여러분들 되시길 바랍니다.
다섯번째, 하나님이 시작과 끝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알파 되신 하나님께서 시작하셨으니 오메가의 하나님이 끝내지 않으면 끝낼 자가 없습니다. 나 같이 힘든 사람도 말씀으로 닦아서 쓰며 기뻐할때 숱한 사람들이 보고 주께 돌아옵니다.저도 수없이 이혼생각을 했지만 주님을 만난뒤 이 고난이 너무나 감사해서 반짝반짝 닦아서 지금까지 쓰고 있습니다. 내 고난 때문에 원망하지 않고 하나님이 끝내주실 때까지 내 고난을 드러내며 열매를 맺는것이 은혜와 평강의 비결입니다.
한 자매의 간증에 자신도 공개입양한 10살짜리 딸로 인해 큰 행복을 누린다는 분이 멀리서 보내온 격려의 편지입니다. 자신은 둘째 아이를 낳을때 세번의 죽을 고비로 고통스러워 아이 얼굴조차 보기 싫었고 바라던 딸이 아니어서 더욱 상실감이 컸는데 겨우 스물 한살 나이에 생명을 지킨 엄마 생각에 늘 마음이 저리며 결코 생명을 포기하지 않은 큰 사랑에 목숨보다 더 귀히 키울테니 걱정말라며 아이와 함께 기도하겠다는 사연이었습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계시가 들어온 사람은 어떤 환경에도 줄 것만 있는 인생을 살게 될 줄을 믿습니다. 입양을 해도 당해도 말씀을 읽고 듣고 지키는 자는 이미 복이 있고 은혜와 평강의 주인공인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