갈등 해결
창세기 13장 5-18절
자판기가 동전을 먹어서 관리인을 불렀는데 한 시간이 지나도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잔뜩 화를 내고 있을 때 동료 사원이 관리인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자판기 관리하는 분이죠? 지금 자판기에서 동전이 막 쏟아져 나오는데요.” 5분도 안 돼서 관리인이 뛰어왔다고 합니다. 어느 칼럼에서 읽은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문제와 갈등 속에서 생활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수동적인 자세로 불평하기 보다는 ‘내가 무엇을 어떻게 해야 할까’라는 주도적 자세로 임하는 것이 갈등 해결의 방법입니다.
갈등은 왜 오는 걸까요? 그동안 잘 지내던 아브람과 롯이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게 됐습니다(5-6). 언제나 갈등의 중심에는 돈이 있습니다. 아브람의 재물은 생명의 위협에서 거짓말을 하고 얻은 것입니다. 아브람은 그것이 수치의 재물임을 인정하고 예배가 회복됐는데, 똑같은 상황에서 애굽의 세속 가치관을 배운 롯은 그 의미를 모릅니다. 부모가 목숨 걸고 돈을 벌어도 예수 가치관이 없으면 자식에게 음란과 방탕의 가치관을 심어주는 것입니다. 물질에 대한 가치관이 다른 사람은 함께 갈 수 없고, 돈이 없으면 화목할 관계도 돈이 많아서 갈등 구조에 있게 됩니다. 그런데 아브람과 롯의 갈등을 이방인 가나안과 브리스 사람이 보고 있습니다(7). 안 믿는 가족과 이웃들이 내가 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하는지 불꽃같은 눈으로 지켜보고 있습니다. 믿음이 조롱받지 않기 위해서 돈 문제를 빨리 해결해야 하고 빚은 반드시 갚아야 합니다.
갈등 상황에서 믿음의 선택을 해야 합니다. 아브람은 롯에게 ‘우리가 한 골육이라’고 이야기하고, 롯이 먼저 선택하라고 해결 방법을 제시합니다(8-9). 이 본문에서 무조건 양보를 강조하는 것은 도덕적인 관점입니다. 아브람이 롯에게 양보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 재물이 수치의 재물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목초지와 물을 확보하는 것이 생명이 걸린 문제인데 아브람이 거짓말을 하고도 하나님의 은혜로 재물을 얻었기 때문에, 자신이 죄인임을 알았기 때문에 포기할 수 있었습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 죄를 보며 손해 보기로 작정하는 사람이 갈등 해결에 주도적 역할을 하게 됩니다.
롯은 이기적인 선택을 합니다. 아브람이 먼저 포기하고 양보를 했어도 롯은 거기에 감동하지 않고 자기 좋은 것을 택합니다. 멸하시기 전에 여호와의 동산 같은 소돔과 고모라를 간절히 사모하면서 바라봅니다(10-11). 내가 포기하면 상대방이 달라질 거라는 인과응보적인 기대는 버려야 합니다. 아무리 포기하고 양보해도 안 변하는 상대방 때문에 나의 옳은 행실이 나타나고 믿음의 본을 보일 수 있습니다. 롯이 택한 소돔은 여호와 앞에 큰 죄인들이 사는 곳입니다(12-13). 롯이 눈을 들어 바라봤지만 그곳이 유황불로 심판 당할 곳이라는 걸 보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이라도 돈과 미모가 좋아서 이기적인 선택을 하고, 멸망으로 가는 길임을 못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갈등을 해결하는 사람을 축복하십니다. 롯이 아브람을 떠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가나안 땅을 기업으로 주시고 셀 수 없이 많은 자손을 주겠다고 약속해주십니다(14-17). 롯이 아브람을 떠났지만 하나님은 아브람을 떠나지 않으십니다. 롯에게는 찾아가지 않으시지만 아브람에게는 찾아오셔서 ‘이르시되’ 말씀해 주십니다. 눈을 들어 동서남북을 바라보라고, 롯처럼 자기가 갖고 싶은 것을 바라보지 말고 보이지 않는 하나님 나라를 보라고 하십니다. 재산도 잃고 롯이 떠났어도 ‘친교, 동맹’이라는 뜻의 헤브론에서 하나님과 친하게 지내며(18) 점점 깊은 예배로 나아가게 하십니다. 내 옆에 사람이 없고 소유가 없어도 하나님과 친한 사람은 어디에서든 지체를 얻고 친구를 사귈 수 있습니다. 돈이 없고 길이 없기에 더 깊은 예배로 하나님과 교제하며, 동서남북 행하는 곳마다 셀 수 없이 많은 영적 자손을 얻게 됩니다.
“아브람의 일행 롯도 양과 소와 장막이 있으므로 그 땅이 그들의 동거함을 용납지 못하였으니 곧 그들의 소유가 많아서 동거할 수 없었음이라” 창13: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