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의 땅
창세기 12장 4-9절
창조의 역사 가운데 아브람을 골라내신 하나님께서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고 명령하시고 일곱 가지 축복의 약속을 주셨습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명령을 지키는 것은 이 땅에서 80년이 걸려도 일시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명령과 함께 주신 하나님의 약속은 영원한 것입니다. 영원하신 약속 안에서 부르심을 받고 떠난 아브람의 신앙 여정을 읽어가며 각자 인생의 여정을 돌아보시기 바랍니다.
약속의 땅에 가려면 말씀을 좇아야 합니다. 부르심을 받은 아브람이 여호와의 말씀을 좇아가는데(4) 히브리서를 보면 그가 ‘갈 바를 알지 못했다(히11:8)’고 합니다. 말씀을 좇아가는 것도 사실이지만 처음에는 적용도 어렵고 모르고 가는 것도 사실입니다.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자세히 들었다면 거기에 답이 있는데 아브람이 모르고 갔기 때문에 친척을 못 떠났습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 약속하시고 자손이 나올 것을 말씀하셨지만 당장 자식이 없으니까 조카 롯과 함께 갔습니다(4). 아브람이 75세 나이에, 아버지가 죽고 나서야 하란을 떠나면서도 소유를 떠나지 못했습니다. 하란에서 모은 것들이 나중에 가뭄이 들었을 때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도 모든 소유를 가져갑니다(5). 그러나 그럼에도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갑니다. 떠나야할 롯과 소유를 모두 데리고 갔어도 당시 500km 떨어진 가나안을 향해 떠나는 것은 믿음의 순종입니다. 각자의 기득권을 내려놓고 고정관념을 넘어서서 ‘마침내’ 가야할 가나안은 어디입니까? 여성 목사가 담임하는 우리들교회, 건물도 없이 체육관에서 모이는 교회에 오셨다는 것이 가나안에 들어온 것이고, 이어서 목장과 양육에 참여하는 것이 ‘마침내’ 가나안에 들어가는 적용입니다.
약속의 땅에 가려면 성도의 삶이 나그네 인생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아브람이 그 땅을 ‘통과’했다는 것은 ‘바람이 스쳐간다’는 뜻입니다(6). 가나안에 들어갔어도 정착하지 못하고 바람처럼 유랑합니다. 가나안 사람들과 섞여 살아야 하는데 우상을 숭배하는 세겜, 함의 자손인 그들이 무시가 됩니다. 믿음으로 선교를 가고 결혼을 해도 막상 가보면 생각과는 다른 힘든 환경이 기다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떠나서는 안 됩니다. 세상에서 환영받고 안락하게 살면서 어떻게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겠습니까. 섞이기 싫은 그들과 함께 하면서 이 땅의 삶은 나그네 길이고 하나님만이 의지의 대상인 것을 보여주는 것이 성도의 인생입니다.
약속의 땅에 정착하기 위해 예배드리는 인생을 살아야 합니다. 이리저리 방랑하는 아브람에게 하나님께서 먼저 나타나주시고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약속을 주십니다(7). 사명도 싫고 사람도 싫은 지금의 환경이 약속의 땅이라고, 그 땅을 주신다고 합니다. 내가 처한 환경이 약속의 땅임을 깨달을 때 나에게 찾아오신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단을 쌓게 됩니다. 내 가정과 직장이 약속의 땅이라고, 그곳에 깃발을 꽂고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이 우리의 예배입니다. 야곱이 이스라엘이 된 벧엘과 수치의 장소인 아이 사이에서, 예배를 드림으로 영적인 땅이 되는가 그렇지 않고 수치의 땅이 되느냐가 나에게 달려 있습니다.(8) 그 땅에 소출이 없고 조롱과 냉대를 받아도 날마다 감사의 단을 쌓고 예배를 드릴 때 방랑의 땅이 약속의 땅이 됩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 가라사대 내가 이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라 하신지라 그가 자기에게 나타나신 여호와를 위하여 그곳에 단을 쌓고” 창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