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오늘 약하여서]
삼하3:21-39
요즘 시국을 보면서 이 본문을 다시 한 번 하려고 합니다. 사무엘하 3장 1절에 보면 사울의 집은 점점 약하여가고 다윗은 점점 강하여간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점점 강하게 되어갔는데도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은 고쳐지지 않았습니다. 사울이 쫓아다닐 때는 그의 음란이 활동을 못했는데 사울이 죽고 결정적인 적이 없어지니 그렇게 전쟁을 하면서도 여자를 계속 취한 본문이 바로 이 본문 직전에 나옵니다. 다윗의 극복할 수 없는 약점이 치명적인 약점이 되고, 여전한 약점으로 공개되더니 오늘은 약함으로 이어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윗은 뭐든지 훌륭하고 신앙이 좋다고 생각하지만 너무 약한 모습을 계속 보여주는 것은 십자가의 은혜가 필요한 이유입니다. 다윗이 내가 오늘 약하여서 오는 여러 가지 문제를 몇 가지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내가 오늘 약하여서 기회주의를 넘어서지 못했습니다.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에도 불구하고 기다리니 원수가 스스로 분열해서 나라를 가져왔습니다. 할 말이 없는 인생이지만 다윗이 인내했기 때문입니다. 9절부터 12절까지 보면 아브넬이 얼마나 기회주의자인지 알게 됩니다. 무엇보다도 자기의 유익과 자리를 위해서 뜻을 정한 것이기 때문에 다윗에게는 도움이 되지만 아브넬의 뜻을 받아들이는 것은 다윗의 약함이었습니다. 여기서 아브넬이 문제가 아니라 항상 잘 믿는 내가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여기 붙었다 저기 붙었다 하는 아브넬의 기회주의를 다윗도 결국 기회주의가 되어서 넘어서지 못한 것이 문제입니다. 아브넬이 이스보셋 왕보다는 다윗 왕을 택해야 되겠다고 뜻을 정한 것처럼 저도 학교에 남는 것보다 다윗처럼 믿음이 있는 장로님 댁, 그것도 부자에게 시집을 가는 것이 나에게 훨씬 유익이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데 성공 지향적으로 나갔던 아브넬은 죽이셨는데 저는 죽이지 않고 여기까지 오게 하셨구나 생각하니 은혜가 아니면 설 수 없는 인생입니다. 여러분의 기회주의는 어디까지입니까? 여러분의 욕심이 기회주의에 넘어간 것을 인정하십니까?
두 번째, 다윗이 약하여 신복의 배반을 처리하지 못했습니다.
요압이 전쟁을 이기고 돌아와서, 아브넬이 다윗을 만나고 평안히 갔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요압은 아브넬이 화해하러 온 것이 아니라 왕을 속이러 왔다고 따집니다. 나쁜 사람도 오늘 달라질 수 있는데 다윗과 친척인 요압은 원한이 많고 작은 일에 집착을 하는 사람이어서 아브넬을 죽였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원한이 가득 찬 사람이 신복으로 너무나도 일을 잘하는 것입니다. 악역을 믿음 때문에 감당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야망을 위해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려고 악한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교회에서도 오직 야망을 위해서 직분 때문에 이런 역할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어떻게 처리해야 됩니까? 요압은 구속사를 모르면서도 다윗의 의중을 꿰뚫어보고 있으니 얼마나 무서운 사람입니까? 그런데 악하다는 것을 알면서도 같이 가야 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한사람 원한을 잘못 샀다가 나라가 망하는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아브넬이 이 한 사람 때문에 개죽음을 당했습니다. 아브넬이 좀 빨리 갔으면 되지 않을까 하는데 그 일분에 뭐든지 결정되는 이런 일들이 우연 같지만 하나님의 시간입니다. 제가 삼풍 백화점이 무너지던 날, 오전 집회가 끝나고 삼풍 백화점에 뭔가 바꿀 일이 있어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바쁜 일도 없었는데 지나치고 집에 돌아오자마자 삼풍이 무너졌다는 소식이 들렸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열심히 목회를 했는데 암이 걸렸습니다. 남편 구원을 위해 내 생명을 내놓았는데 남편을 구원시켜주시고 나를 이 땅에 남겨주셨으니 내가 날마다 덤으로 사는 인생이라는 생각을 하게 됩니다. 그래서 내가 할 수 있는 것이 아무것도 없다는 것을 아시고 지금부터 모든 식구들을 주님께 인도하셔서 우리 아이들도 하나님의 시간을 알고 기도하는 인생이 되게 하기 위해서 여러분들이 기도하셔야 됩니다. 가장 선물은 예수 그리스도를 알려주고 하나님께 모든 것을 맡기고 가게 하는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이 뒤통수를 치는 배신을 겪어본 일이 있는지, 같이 갈수도, 안갈 수도 없는 사람이 내 옆에 있습니까?
세 번째, 그래서 오늘 내가 너무 약하여서 너무 어렵다고 고백을 합니다.
아브넬의 죽음으로 다윗에게 위기가 왔지만 상여를 따라가고 성지 헤브론에 장사를 해주고 요압을 말로 저주하고 겸손하게 낮아져서 소리 높여 울고, 옷을 찢으라고 하며 금식하고 내가 음식을 먹으면 벌 위에 벌을 내릴지로다 하며 본을 보였습니다. 자기의 왕권 때문이 아니고 하나님 나라 때문인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통제하지 못하는 요압과 아비새를 아브넬이 와서 견제해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있었지만 자신의 객관적인 상태를 보고 사람들에게 하소연하지 않고 ‘하나님, 오늘 내가 너무 약하여서 이 일이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의 고백처럼 믿는 사람은 오늘이 항상 어렵습니다. 하나님 뜻대로 살려니 거룩하게 살려니 오늘이 항상 어렵습니다. 원수를 사랑하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살 수 없는 부부생활을 산다는 게 너무 어렵습니다. 그러나 살아야 됩니다. 부부가 끝까지 살 수 있는가, 이것을 하나님이 물어보십니다. 1절에 다윗이 점점 강하여갔다고 했는데 마지막 절엔 다윗이 오늘 내가 약하여서 내가 너무 어렵다고 고백합니다. 이렇게 다윗의 치명적인 약점과 여전한 약점과 약함의 가운데에서도 점점 강해진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은혜로 밖에 우리는 설 수 없습니다. 예수 믿는 우리는 오늘 약하여서 어렵다고 고백해야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