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
정정환 목사
레22:17-33
한 시사 주간지에서 ‘최순실, 교회 다니고 헌금 많이 했다.’라고 쓰인 머리기사를 봤습니다. 국정을 농단하며 드린 헌금과 예배를 과연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셨을까라는 의문이 들었습니다. 주일인 오늘 우리는 교회에 나와 예배를 드리며 시간과 물질을 드리고 있지만,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과 기쁘게 받지 않으시는 예물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은 무엇일까요?
첫째,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는 예물은 구별된 마음으로 귀한 것을 드리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실 예물은 소, 양, 염소의 흠이 없는 수컷이라고 하십니다. 흠이 없는 수컷은 목축사회 당시 귀한 재산이자 가족과 같았기에, 직접 죽인 제물의 각을 뜰 때는 자신의 죽음과 같은 애통함 마저 느꼈을 것입니다. 백성들은 왜 흠 있는 것을 예물로 드렸을까요? 말라기 1장 13절 말씀처럼 백성이나 제사장들은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에 관심과 정성이 없고 번거롭고 귀찮아 형식적인 예배를 드리려 하기 때문입니다. 아벨은 자기 짐승 중 가장 좋고 기름진 양으로 구별된 제사를 드린 반면 예배를 번거롭게 여긴 가인의 제사는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습니다. 레위기 1장부터 반복된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심이 되도록’의 의미는 로마서 12장 말씀에서 알 수 있듯이 하나님께서는 바쳐진 제물보다 제사하는 예배자를 받으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몸과 마음 모두를 제물로 원하시되 오직 상한 심령의 회개하는 예배하는 사람 그 자체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또 성물의 규례로 스스로 구별하여 내 성호를 욕되게 말라 하십니다. 내가 예배와 봉헌과 사역을 귀찮고 번거롭게 여긴다면 나는 훔친 것, 저는 것, 병든 것과 흠 있는 제물의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나 자신을 번제물로 드리지 못하기에 진실이 아닌 형식적인 것만 꺼내놓으니 목장예배도 번거로워집니다. 여전히 내게 가장 귀한 것이 나 자신이기 때문입니다. 나 자신을 번제물로 십자가에서 잘 죽어지는 온전함을 드릴 때 구별된 삶을 살게 하십니다.
둘째,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지 않으시는 예물은 탐심으로 드리는 것입니다.
짐승의 수컷을 거세했다는 것은 모든 생물의 생육, 번성, 충만이라는 하나님의 명을 정면으로 위반한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직접 기른 흠이 없는 제물을 명하셨기에 거세한 짐승은 이방인에게 사들인 제물이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방인에게 산 제물이란 자체가 겉의 흠이 있다는 것이지만 속에 있는 이방인의 부패함이 더 큰 문제였습니다. 백성들이 예배를 하나님과의 교제가 아닌 탐욕을 쫓는 기복의 도구로 전락시키고 월삭과 안식일의 행악함을 이사야 1장 13절 말씀처럼 더는 참지 못하십니다. 하나님께 드릴 예물은 내 목적을 위한 뇌물이 아닌 이타적인 마음으로 상대에게 유익을 주는 선물입니다. 예배는 하나님의 필요를 채우기 위한 의무가 아닌 기쁨으로 감사하며 정성껏 드릴 때 선순환이 되어 돌아옵니다. 이해타산 없이 목장을 섬기고 날마다 큐티할 때 결과적으로 내가 변화됩니다.
셋째,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기 위해서는 때와 경계를 잘 지켜야 합니다.
여호와께 드려지는 동물도 어미와 새끼가 7일 동안은 함께 있게 배려하시고 또 같은 날 잡는 것은 금하셨습니다. 노아의 홍수 때처럼 한 쌍씩 남겨 멸망에서 보호하는 의미와 제물의 준비 과정을 신중히 분별하라는 뜻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이 드릴 예물에 대해 반드시 지킬 경계를 그어주십니다. 거룩은 때와 경계를 지켜 내 주제를 알고 주어진 역할에 충실히 하는 것입니다. 담임 목사님께서 믿음의 반대는 자기 열심이라고 하셨는데 그 열심이 다른 사람까지 끌어들여 자기도 남도 죽게 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를 절제하고 공동체의 관계 질서와 원칙을 지키는 것이 자신과 공동체를 보호하는 길입니다. 목장에서도 경계를 넘어서는 내 호의가 상대에겐 평생 씻을 수 없는 적의가 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은 아낌없이 바치기를 장려하되 어리석게 바치기는 권하지는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예물의 기준은 내 기분이나 편의가 아닌 하나님의 기준이어야 합니다. 아무리 좋은 뜻도 주변에서 자꾸 태클을 건다면 때와 경계를 신중히 생각해 보라는 신호입니다. 예배 중독자 사울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무엘 선지자를 통해 ‘순종이 제사보다 낫고 듣는 것이 숫양의 기름보다 낫다’고 하십니다. 부르심보다 자원함이 앞설 때 절제를 못해 월권하여 분별을 못 하니 자화자찬합니다. 담임 목사님께서는 환자로서 경계를 지킬 테니, 성도인 우리도 각자의 경계를 지키길 당부하셨습니다. 내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이 주신 경계를 지키며 역할과 때를 잘 살아낼 때 빚지고 환란당하고 원통한 분들의 도피성 공동체가 될 수 있습니다.
넷째, 여호와께서 기쁘게 받으시기 위해서는 계명에 순종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이 땅의 거룩한 자녀로 살아가라고 구원해 주셨습니다. 그러려면 계명에 대한 온전한 순종만이 거룩의 길입니다. 하나님이 기쁘시게 받으시는 자는 완벽한 도덕적인 행위로 인해 자기 죄를 못 보는 흠 없는 사람이 아니라, 흠이 많아도 내 죄를 눈물로 회개하며 주님 품에 안기는 사람입니다. 독생자 예수님의 피로 구원받고 죄에서 출애굽한 내가 드리지 못할 예물이 무엇입니까? 그래서 우리는 매주 제단 앞에 ‘나’를 예물로 드려 내 부정과 죄에서 정결케 돼야 합니다. 신자는 거룩한 예배로 새롭게 될 때 거룩한 삶을 살게 됩니다. 나를 흠 없는 예물로 드리며 나 자신을 부인할 때 내 주위 사람들까지 그분의 거룩으로 화목게 하십니다. 오직 내게 주신 십자가의 순종만이 하나님의 성호, 여호와의 이름을 영광되게 하는 삶입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한 집사님이 가난한 친정을 원망하며 도피하듯 결혼했고 아들의 장애를 통해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야 하나님의 세팅임을 인정하셨습니다. 아들의 육신의 장애는 그대로지만 자신의 영적 장애를 치료해주심을 깨닫고 남편에게 당신은 나보다 옳도다 하며 죄인임을 고백하니 매주 온 가족이 지방에서 올라와 기쁨의 예배드리는 기적을 베푸셨습니다. 이제는 목자 가정으로 세우셔서 사람 낚는 어부 되게 하심에 감사하셨습니다. 이 집사님은 말씀을 통해 자신이 그동안 드려왔던 많은 예물이 얼마나 흠으로 가득한 것인지를 깨닫고, 오늘 본문에서 말씀하셨던 예물에 대한 계명을 지키는 것이 바로 너희의 구원과 거룩을 위한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주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