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어디 있느냐]
이기성 목사
창3:9
이 한 절 말씀 가운데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행하시는 일이 잘 요약되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은 당신의 백성을 부르십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거룩히 부르심을 받은 백성들에게 말씀을 선포하십니다. 그리고 셋째, 우리 하나님은 그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물으시는 분이십니다.
제가 이번 5회 ‘목욕탕 목회세미나’에도 참석했지만, 지난 4회 때에도 참석했습니다. 그 첫날 오후 목사님을 뵈려고 목사님 앞으로 갔습니다. 목사님께서 저를 보시자마자, “이 목사님, 이제 좀 말씀이 들리십니까?” 라고 물으셨습니다. 저에게는 큰 충격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 질문을 통해 다시 한 번 제 모습을 보게 하시고, 저의 목회관과 신앙관과 제 삶의 모습을 정리시켜 가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느꼈습니다. 아직도 진행형이지만, 주의 몸 된 교회를 맡아 섬기고 또 헌신하고 있는 목회자로서의 정체성에 대해 바라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 시간 제 나름대로 깨달은 것들을 이 본문을 통해 함께 나누고자 합니다.
아담이 죄를 짓고 하나님께서 그를 찾으셨을 때 그에게 가장 처음 던진 질문이, “네가 지금 어디 있느냐.”이었습니다. ‘네가 어디 있느냐?’고 물어보는 내면에는 ‘지금 너는 네가 가야 할 곳을 잃었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만일 친구의 집을 찾아가고 있는데 길을 잃어 친구에게 전화한다면 친구는 제일 먼저 우리에게 “지금 어디에 있니?” 라고 물을 것입니다. 내가 지금 어디 있는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앞으로 어디로 가야 할지도 전혀 알 수 없다는 것입니다. 어떠한 목적지를 감에 있어서 속도보다 중요한 것은 방향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방향보다 중요한 것은 바로 나의 ‘현 위치’입니다. 내가 있어야 할 곳에 있는지, 내 가정을 잘 지키고 있는지, 학생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내게 맡겨진 그 신분에 올바른 삶을 살아가고 있는지, 바로 말씀의 다스림을 받고 있느냐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물어보시는 질문은 정확합니다. 질문을 정확하게 알아야 정확히 답을 할 수 있는데, 적잖은 그리스도인들의 문제는 세상의 음성을 듣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떠한 목적을 잃고 헤맬 때 세상은 우리에게 ‘네가 어디에 있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지금 당신은 뭐 하고 계십니까?” “네가 잘해야지, 네가 열심히 해야지!”라고 말합니다. 세상은 항상 ‘행함’에 초점을 둔다는 것입니다. 그러다 보니 그리스도인들도 행함으로 의인이 되려 하고 내가 무언가를 이루어서 인정받으려 하는 율법주의자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를 묻지 않으십니다. 어디에 있는지를 물어보십니다. 지금 말씀으로 다스림 받는 인생이 바로 하나님께서 말씀하고 계시는 거룩한 백성으로서 가야 할 길임을 믿으시길 바랍니다.
또 세상은 우리에게 “네가 왜 벌거벗었니?” 라고 묻습니다. 그 음성을 듣고 살다 보면 세상의 명예와 권세와 스펙을 가지고 벌거벗음을 가리려고 합니다. 세상은 우리의 벌거벗음을 수치라고 이야기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벌거벗음이 수치가 아니라, 그것을 가리려는 두려움, 그것이 죄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무화과나무를 엮어서 그들의 벌거벗음을 가리려 하니까 하나님께서는 동물의 가죽옷을 입혀주셨습니다. 이것이 예수그리스도의 구속사입니다. 피 흘림이 없이는 죄 사함이 없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이 창세기 말씀을 통해 우리에게 가르쳐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부유하셨던 저희 부모님은 당신의 병원을 물려받을 의사가 되라고 저를 조기유학 보내셨습니다. 그런데 유학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저는 그 사실을 부모님께 고백해야만 했습니다. 그때 어머니께서는 제가 내성적이고 인내심이 없으며 돈을 좋아하는 이유들을 들어 목회자가 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제 성격으로 한다면 정말 사람들 앞에서 말씀을 증거할 수도 없고 인내심도 없지만,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지난 30년 동안 저를 지켜주셨습니다. 그런데 목회를 하면서 성도들에게 그리고 아내에게 인정받고자 했던 것이 죄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미 나를 인정해주셨고 나를 거룩한 자로 부르셨는데, 그것이 바로 나의 정체성임에도 아직도 내가 나의 벌거벗음만을 보면서 세상 것으로 그것을 가리려 하는 제 모습이 있음을 보았습니다. 우리들교회의 목회세미나를 ‘목욕탕 큐티 목회 세미나’로 이름 지었듯이, 교회는 목욕탕이어야 하고 그 본질은 벌거벗음입니다. 교회는 우리의 벌거벗음을 부끄러워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그 벌거벗음을 깨닫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씻김 받기 위해 나아오는 곳이어야 합니다. 지금도 여러 가정문제로 그리고 특별히 이민성도님들이 참 힘들어하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께서 부르신 곳에서 말씀의 다스림을 받는 삶을 살 때 결국 모두가 승리하실 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