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관을 돌파하는 부르짖는 기도]
출15:22-27
강준민 목사님
살아가는 것은 벅차고 숨이 찰 정도로 수많은 난관을 거치는 반복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목사인 저도 예외 없이 난관에 부딪히며 살아왔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홍해라는 난관을 통과 했는데 또 다른 난관인 마라의 쓴물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백성들은 원망하지만, 모세의 기도로 쓴물이 단물이 되는 기적을 경험합니다. 이렇듯 난관은 어렵지만 잘 다루면 난관이 아니면 결코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와 능력을 경험하게 됩니다. 여러분들은 난관 앞에 어떻게 반응하십니까? 인생의 난관을 어떻게 극복해야 하며, 하나님은 왜 우리 인생에 난관을 주시는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난관을 통해 우리를 성숙하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인생은 광야이고 힘들고 어려운 일임을 먼저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지만 우리의 잘못된 기대로 인해 힘든 광야 인생을 받아들이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좋은 길이 아닌 스룹 광야로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편안하게 사는 것에 관심이 있으신게 아니라 얼마나 성숙하느냐에 관심이 있으셔서 우리를 광야로 부르십니다. 그리고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고 해석하는지에 관심이 있으십니다. 어려움을 그냥 통과(go through)하는 것이 아니라 성장하길(grow through) 원하십니다. 광야는 변장된 축복입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광야를 통해 애굽에서 경험하지 못한 하나님을 만나고 거대한 민족으로 변화됩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아픈 상처를 치료하려고 그들을 마라의 쓴 물 앞에 보내어 자신의 모습을 보게 하시며 성숙하게 하십니다.
둘째, 난관을 만나면 부르짖는 기도로 돌파해야 합니다.
난관을 만나면 원망이 아닌 부르짖는 기도로 반응해야 합니다. 인간은 원망할 수밖에 없는 존재이지만 모세는 백성들을 품고 하나님께 부르짖으며 기도합니다. 놀라운 것은 기도하기 전에는 보이지 않았던 나무가 기도하고 나니 보였다는 것입니다. 기도하면 감추인 것이 보이고 깨달아지기 시작합니다. 이것이 계시의 신비이고 지혜와 계시의 영입니다.
모세는 불평하는 백성들을 버리지 않고 끌고 가는 하나님의 사랑을 알았을 것입니다. 인간은 우리가 변화시켜야 할 대상이 아니라 사랑해야 할 대상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변화시키려고 백성들을 부르신 것이 아니라 사랑하게 하시기 위해 부르셨습니다.
난관에 부딪혀 어려움을 당해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될 때 하나님이 내 옆에 계십니다. 우리의 인생을 역전시켜 주시고 새롭게 다시 시작할 수 있도록 해주실 하나님께 부르짖으시길 바랍니다.
셋째, 하나님의 인도에 순종할 때 마라의 쓴 물이 단물이 됩니다.
중요한 것은 기도만 해서는 안 됩니다. 기도한 후에 모세는 순종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무를 보여주시고 던지라고 하신 말씀에 순종합니다. 나무를 물에 던지지 않았다면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순종하니 쓴물이 단물로 변했고 쓸모없는 물이 쓸모 있는 물이 된 것입니다. 순종할 때 역전의 드라마가 만들어집니다. 난관이 기적이 되는 변화가 거기서 나타납니다. 기도한 뒤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순종해야 합니다.
넷째,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민족을 두 가지 측면으로 축복하십니다.
1. 그들에게 말씀을 주십니다.
25절에 하나님께서 법도와 율례를 정해 주셨다는 것은 말씀을 주셨다는 것입니다. 고난이 무조건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고난 때문에 망한 사람도 있고 더 사나워지고 하나님을 떠난 사람도 많습니다. 고난을 통해 깨달은 말씀을 간직하고 보석으로 만들어야 유익이 있습니다. 고난 중 받은 말씀이 변화시키는 것이지 고난 자체가 나를 변화시키지 않습니다. 고난이 유익이 되려면 고난 중에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합니다. 우리 인생을 하나님께 가져가야 합니다. 불행할 때 원망하지 않고 사건과 문제를 하나님께 가져가서 뭐라고 말씀하시는지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2. 하나님의 이름을 통해 축복하십니다.
하나님은 치료하는 분입니다. 하나님의 이름 속에 비밀을 담았습니다. 그분은 ‘엘로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엘 샤다이’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뜻은 그냥 능하신 하나님이 아니라 풍성하시고 풍부하시다는 뜻입니다. 원래 엘 샤다이라는 어원은 어머니의 젖가슴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서에는 하나님의 젖가슴에서 열방이 빨아먹는다고 표현합니다. 우리의 기도의 양과 고난의 양이 차서 때가 되면 난관 저편에 준비해 두신 풍성한 물 샘을 주십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광야를 통과할 때 오아시스를 450개나 발견했다고 합니다. 우리 인생의 광야에서 오아시스는 생명수를 주는 교회입니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나오는 생수의 강들 예수님의 몸에서 나오는 말씀의 생수가 거듭나게 합니다. 십자가로 가야만 거기에서 생수가 쏟아져 우리의 모든 고민이 해결됩니다. 우리 인생의 드라마를 하나님이 편집하고 역전으로 바꾸실 수 있도록 맡겨 드리는 성도님들 되시길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