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심
창세기 12장 1-3절
천지만물을 지으신 창조의 대략에서 아담의 후예, 노아의 사적, 셈과 함과 야벳의 후예, 셈의 후예, 그리고 데라의 후예까지 여섯 개의 계보를 거쳐 예수님의 조상 아브람을 골라내시는 감격의 순간입니다. 아브람이 ‘아브라함’이 된 것은 그가 훌륭해서가 아니라 “여호와께서 이르시되”(1) 택하시고 부르시고 인도하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나를 부르시고 하나님의 은혜로 오늘도 나를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부르셨을까요? 내가 불쌍해서입니까? 돈 주시려고 부르셨을까요?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벧후1:4) 인생의 목적인 거룩을 위해 나를 부르셨습니다.
부르심을 받은 인생은 떠나야 합니다. 화려한 문명을 가진 갈대아 우르를 떠나 당시 500km나 떨어진 가나안으로 가는 것은 너무나 힘든 일입니다. 그러나 내가 육적, 정신적, 영적으로 의지하는 본토를 떠나야 약속의 땅 가나안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돈, 지위, 집안의 문화를 떠나서 내 삶을 구원을 위한 산제사로 드리는 것이 본토를 떠나는 적용입니다. 그리고 고대사회에서 재산으로 여기던 친척을 떠나야 합니다. 내가 보살펴야 할 사람, 좋은 사람, 싫은 사람을 다 떠나서 혈과 육을 넘어서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아비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1). 부모님이 있어서 내가 예수를 믿었지만 부모의 영향력이 믿음에 방해가 되기도 합니다. 무서운 부모는 인정받으려고 애쓰면서 못 떠나고, 폭력과 알코올중독인 부모는 상처받고 원망하느라 못 떠납니다. 아무 문제없이 잘해주는 모범생 부모는 떠나기가 더 어렵습니다. 하지만 본질적으로 부모를 떠나지 않으면 하나님을 만나기가 어렵습니다. 상처를 준 부모는 용서로 떠나고, 모든 것을 베풀면서 안일함을 주는 부모는 구원을 위한 단호함으로 떠나야 합니다.
내가 가고 싶은 곳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지시할 땅으로 가야 합니다(1). 말씀을 듣고도 떠나기까지 시간이 걸립니다. 형 하란의 죽음과 불임으로 고난으로도 떠나지 못하던 아브람이 아버지 데라가 죽고서야 인생의 곤고함을 알고 떠났습니다. 어디로부터 와서 어디로 가는지를 모르는 인생에서 곤고함을 느끼는 것이 택한 자의 모습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인생의 목적을 몰라서 방황하지만 하나님께 부름 받은 우리는 인생의 목적이 거룩임을 알고 걸어가는 대단한 인생입니다.
지시하신 땅으로 가면 하나님께서 베푸실 엄청난 복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있으시니까 떠나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떠나면 큰 민족의 조상이 되리라고 약속해주십니다. 복의 근원이 되도록 먼저 나에게 복을 주시고, 아브람을 하나님의 친구라 부르시며 이름을 창대케 하십니다. 그리고 타인에게 복을 나눠주는 복의 근원이 되게 하십니다(2). 복의 근원이 되는 것은 희생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이 땅에서 고단한 인생을 살아도 하나님께 무릎 꿇고 경배하는 바라크의 복을 누리는 것이 복의 근원이 되는 인생입니다. 내가 바라크의 복을 누릴 때 다른 사람에게도 바라크의 축복을 나눠줄 수 있습니다. 나를 축복하는 자에게 복을 내리시고, 나를 저주하는 자들을 저주하시며 나로 인하여 땅의 모든 족속이 복을 얻게 하십니다(3). 아브람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오신다는 메시아 언약이고 엄청난 영적 축복입니다. 아브람을 부르신 하나님께서 7가지 복을 약속하시고, 바벨탑 사건으로 흩어진 사람들이 복 받을 길을 열어놓으셨습니다. 이 복을 누리기 위해 내가 의지하던 것과 나의 고집과 상처와 안일함에서 떠나야 합니다. 어떤 상황에서도 날마다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 약속을 붙잡고 가는 것이 영혼구원으로 부르심 받은 우리들의 특권입니다.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이르시되 너는 너의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내가 네게 지시할 땅으로 가라” -창1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