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잠을 잘 수 있는 이유]
시3:1-8 시편 1편은 묵상에 대해서 2편은 메시아에 대해서 3편은 고난에 대해서 다루는 내용입니다. 시편 3편의 저자 다윗은 고난의 광야길을 일생 걸어갔다고 봅니다. 같은 동족 친족에게 배신을 당한 시편 54편이 있는데 오늘 3편은 사랑하는 아들에게 배신을 넘어서 죽임을 당하기 직전의 시입니다. 그런데 이런 가운데서 단잠을 잤다고 합니다. 다윗이 단잠을 잘 수 있는 이유가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대적의 정체를 인정했기 때문입니다. 1절에 보니 대적이 ‘어찌 그리 많은 지요’, 2절에도 ‘많은 사람이 있어’, 6절에도 ‘천만인이 나를 둘러치려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솔직하게 나의 대적이 많다고 세 번이나 고백을 합니다. 그냥 한계상황을 인정했습니다. 사단은 우리들을 한계상황의 고통으로 시험하고 사람들의 조롱으로 재차 시험을 합니다. 이럴 때 내 힘으로 일어나기가 어렵습니다. 두 번째는 너무나 비열한 저주의 말입니다. 본래 이 말은 사울왕가의 사람이었던 시므이의 저주로 다윗과 압살롬 사이를 인간적으로 이간하는 정도가 아니라 내 영혼과 하나님 사이를 영적으로 이간질하는 말입니다. 이렇게 힘들 때 2절 후반부 ‘셀라’가 나옵니다. ‘셀라’는 기가 막힌 고통에서 잠깐 멈추어서 깊이 묵상하고 숨을 고르는 것입니다. 그리고 내 상황이 한계상황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하나님께 다시 나아가는 것입니다. 오늘 한계상황의 고통을 가지고 온 분들이 잠깐 자기 생각을 멈추고 말씀을 들은 것이 단잠을 잘 수 있는 해결책이 되셨으면 좋겠습니다. 셀라. 지금 나를 괴롭히는 대적의 정체는 무엇입니까? 아들의 배반을 경험하고 있습니까? 누구에게 일러바치고 싶습니까? 공동체에서 나눔으로 고통을 경감시킬 수 있습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묵상을 했기 때문입니다. 사무엘하 16장 7절에 시므이가 다윗을 저주하면서 독설을 퍼부을 때 이 독설을 누가 막아주겠습니까? 하나님밖에 부를 이름이 없습니다. 그래서 3절은 ‘여호와여’ 로 시작합니다. 하나님의 응답을 얻으려면 하나님이 누군가 똑바로 알고 기도해야 하는 것이 믿음의 근거이고 내용입니다. 다윗은 하나님만이 이 독설의 아픔을 막아줄 방패요 영광이 되시고 오늘 나의 머리를 들어주신다는 것을 믿었습니다. 주님만이 나의 방패, 나의 영광, 나의 머리를 드시는 자입니다 라고 입술로 고백해보시기 바랍니다. 세 번째는 응답받는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내 목소리로 성산에서 응답받는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주님의 거룩한 산에서 구속사적인 구별된 가치관을 가지고 저자이신 주님의 뜻을 묵상해보아야 합니다. 내가 애매하게 당하는 것 같아도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나와 내 가정에게 하시려는 말씀이 있는 것입니다. 이제는 누구를 탓하고 사건자체에 집착하는 것에서 돌아서야 합니다. 이것이 죽어도 해결이 안 되면 기도가 되지 아니하고 응답도 되지 않습니다. 인간적으로 압살롬을 미워하라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미워하는 것, 집착하는 것을 버리라는 말입니다. 압살롬은 한쪽에서는 너무나 나쁘지만 한쪽에서는 부모로부터 오는 상처를 받았습니다. 다윗은 이것을 깨닫고 서원기도를 하면서 입술을 깨물면서 신음기도를 하고 피눈물 나는 기도를 했을 것입니다. 이 기도가 응답받는 기도가 되는 것입니다. 구별된 가치관으로 성산에서 응답받아야 할 나의 상처는 무엇입니까? 내가 못나고 부족한 것이 누구 때문이고 어떤 일 때문이라고 습관처럼 말하지는 않습니까? 예수믿고 큐티를 해도 치유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떤 경우에도 믿음 좋은 사람이 책임을 져야 되는 것입니다. 네 번째는 내가 할 일을 내가 했기 때문입니다. 응답받는 기도는 배반과 두려움과 상실감 속에서 하나님께서 내 문제를 해결해주시는 것이 아니라 내 속의 생각들을 치료하시기 시작하시는 것입니다. 오늘 시편 3편에서 가장 중요한 말은 ‘내가’ 누워 자고, ‘나를’ 붙드시고, ‘나를’ 에워싸고, ‘나는’ 두려워하지 않고, 오늘 시편 전체에서 ‘내가’가 얼마나 많이 나오는지 모릅니다. 다윗은 기도만 한 게 아니라 압살롬의 반역을 극복하기 위해서 인간적인 모든 노력을 하고 기도했습니다. 하나님께 내 목소리로 기도해도, 내가 할 일은 내가 해야 하고 잠도 내가 자야 합니다. 단잠을 자기 위해 영육 간에 내가 할 일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다섯 번째는 공의의 기도를 했기 때문입니다. 응답의 크라이막스는 8절, 구원은 여호와께 있사오니 주의 복을 주의 백성에게 내리소서 (셀라)입니다. 이 백성이 누구입니까? 다윗을 죽이려고 했던 백성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멸망을 위해서 기도하지 않고 주의 복을 주의 백성들에게 내려달라고, 이것이 최고의 응답인줄 믿습니다. 보복기도와는 다릅니다. 오늘 압살롬처럼 오랫동안 회복되기 어려운 아들의 상처를 가진 공동체 고백입니다. 시동생의 폭력으로 실명위기까지 간 아들에 대해 권찰님이 처음으로 오픈하자 ‘이번 추석에 아들이 오면 권찰님은 말수를 줄이시고 목자님은 아들에게 예전에 눈 다친 사건에 대해서 사과하시고 또 때린 남동생이 집에 온다면 사과를 하도록 해야 한다’고 평원님이 처방해주셨습니다. 수십 년 동안 해결되지 못했던 문제가 한 번의 오픈으로 모두 편안해지십니다. 이런 문제가 목장에서 이렇게 해결이 되고 단잠을 주무시도록. 또 몇 십년 동안 해결되지 않는 압살롬의 상처가 집집마다 있을 것인데 이번 명절을 통해서 해결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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