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웃음]
시편2:1~12
하나님이 웃으셨다는 표현은 시편 2편 4절에만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왜 웃으셨을까요? 오늘은 하나님의 웃음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세상이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기에 웃으십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늘 뭔가를 이루고자 소란한데 성경은 이것을 꾸민다, 경영한다고 표현합니다. 우리가 열심히 일해야 하지만, 하나님 없는 무의미한 경영이 최종 목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서로 원수였던 빌라도와 바리새인들이 한편이 되어 예수님을 대적할 뿐 아니라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분노가 많은 곳에 서로 꾀하는 것이 이루어지고 악을 조장합니다. 거창한 데서만 헛된 일을 꾸미는 것이 아닙니다. 믿는 엄마라도 특목고에 다니는 자녀의 내신 성적을 올리려고 서로 꾀하고, 맨 것을 끊고, 믿음의 결박을 벗어버리느라 허사를 경영하고 분주합니다. 사람들은 주님을 떠나 그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면 자유로울 것이라 생각하지만, 주님을 떠나면 자유는 없고 오직 악하고 음란한 죄인의 본성만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쓰시고자 하는 사람에게는 어쩔 수 없이 하나님이 부리시는 악령이 임한 사울 같은 가족이 있습니다. 다윗이 사울을 끝까지 사랑한 것처럼, 사울 같은 내 식구를 사랑해야 합니다. 사울 같은 사람을 내게 주신 질서로 여기고 매여있는 것이 예수님께 매여있는 것입니다. 세상의 권력과 지휘를 가진 자일수록 자기 힘으로 하나님께서 주신 질서의 결박을 멍에라 여기며 벗어버리고자 합니다. 그럴 때 멍에를 지고 인내하라고 하면, 예수님을 죽인 것처럼 주님의 기름 부음 받은 아내나 남편이나 자녀나 부모를 대적합니다. 주님은 마태복음 11장 28-30절 말씀으로 나의 멍에를 메고 내게 배우라고 하십니다. 주님께서 주신 환경에서 피하려는 것은 예수님을 끊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나의 수고하고 무거운 짐이 예수님의 새 멍에로 바뀌어 기쁘게 지게 됩니다. 환경이 바뀌는 것이 해결책이 아니라 변하지 않는 내 환경 때문에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 되어 예수님께 가는 것이 해결책입니다.
둘째, 하나님의 웃음은 비웃음입니다.
허사를 경영하는 자들에 대한 하나님의 반응은 비웃음입니다. 인간적인 오만함의 극치로 세상의 군왕과 관원들이 서로 꾀하여 여호와와 그의 기름부음 받은 자를 대적할 때 그것에 대한 유일한 답은 오직 하나님의 웃음뿐입니다. 하나님 없는 그들의 온갖 분주함과 요란함에 대해 하나님은 비웃을 수밖에 없습니다. 사람이 신뢰할 만한 윤리와 도덕이 복음이 아닙니다. 하나님 없이 잘 사는 것이나 이 세상 권력에 대해 하나님은 비웃으십니다. 그 당시 최고 세력인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다니엘과 세 친구를 풀무 불 가운데 던지려고 할 때에 하나님께서 건져주실 거라고 그리 아니하실지라도 왕의 신상을 섬기지 않을 것이라 했던 다니엘은 바로 하나님의 웃음으로 세상을 바라본 것입니다.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작고 사소한 일에 순종하면 어떤 조롱에도 하나님의 웃음으로 웃을 수 있습니다. 말씀 묵상은 하나님의 웃음에 동참하게 합니다. 허사를 경영하고, 맨 것을 끊고, 결박을 벗어버리고자 하면 하나님께서 나를 보고 비웃으심을 알아야 합니다. 내가 성전이기에 내 속에 예수님을 세우시려고 하나님께서는 웃으시고, 분을 발하시고, 놀라게 하시는 사건을 주십니다. 세상이 스스로 왕 노릇 하려고 하나님을 대적하고 악한 일을 꾀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상관없이 거룩한 곳 시온에 자신의 뜻에 따라 왕을 세우십니다. 내가 거룩한 곳에 있어야 나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습니다.
셋째, 예수그리스도를 거부하는 자에게는 영원한 파멸만 있습니다.
다윗에게서 태어날 자가 아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의 1차 성취는 솔로몬으로, 신약에서는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되었습니다. “너는 내 아들이라 오늘 내가 너를 낳았도다.”는 음성을 듣기 위해 헛된 일을 꾸몄다면 그것까지도 축복입니다. 구해야 할 대상은 오직 하나님입니다. 그러면 소유가 땅끝까지 이르리라 약속하십니다. 질그릇같이 부서질 세상이지만 하나님께서 주신 능력인 철장으로 깨뜨려야 할 세상이기도 합니다. 그래서 내가 옳게 구하고, 철창으로 준비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을 보호하시겠다고 하면 그렇게 다윗을 죽이려던 사울조차 성령을 받고 그냥 돌아갑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철창으로 대적이 질그릇처럼 깨지는 겁니다. 부인이 교회 가는 것이 싫어서 목사를 죽이겠다고 쫓아온 남편이 한둘이 아닌데, 그렇게 왔다가 은혜받은 분이 많습니다. 남편이 무서워도 교회를 왔기에 결국은 남편이 따라와서 남편까지 변화된 것입니다.
넷째, 그러므로 교훈을 받아야 합니다.
세상의 군왕들은 예수님께 지혜를 얻고 교훈을 받기 전에는 허사를 경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성경만이 답입니다. 디모데 후서 3장 16-17 말씀처럼 먼저 책망을 받는 것이 유익입니다. 책망을 받으려면 읽고, 듣고, 묵상하고, 적용해야 하는데 이렇게 말씀에 순복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섬기는 바른 태도는 두려움과 즐거움을 함께 갖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나의 왕으로 인정하고, 영접하고 사랑하며 그에게 전적으로 충성하고 복종하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것은 피상적인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잘 섬기는 것이고, 경외하는 삶의 양상은 말씀을 근거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이는 주야로 말씀을 묵상하고 하나님 말씀을 읊조리는 것입니다. 히브리어 ‘하가’는 동물의 울음소리를 뜻하는데, 압제 가운데 절박한 마음으로 말씀을 읊조리며 묵상하다 보니 여호와께 피하는 복인 ‘아쉬르의 복’을 누리게 됩니다.
누가 조롱한다 해도 주님께 교훈을 받아 하나님의 웃음에 동참하는 여러분 되시길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