흩어짐의 축복
창세기 11장 1-9절
대입 수능시험이 전국적으로 치러졌습니다. 그동안 학생과 학부모 모두 한마음으로 뭉쳐서 시험을 준비했을 것입니다. 세상은 ‘뭉치면 살고 흩어지면 죽는다’고, 목표를 이루기 위해 뭉쳐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본문을 보니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뭉치면 죽고 흩어지면 산다고 하십니다.
뭉치면 짓는 죄악이 있습니다. 온 땅의 구음과 언어가 하나(1)인 이유는 사명을 이루기 위해서입니다. 같은 언어를 쓰는 사명을 모르고 마음에 맞는 사람하고만 어울리고, 끼리끼리 뭉쳐서 자신들만의 언어를 쓰고 싶어 합니다. 마음이 잘 맞으니 가고 싶은 장소도 한마음으로 정하고, 점점 하나님과 멀어져서 동방으로 옮겨 시날 평지에 거합니다(2). 하나님께는 전혀 묻지 않으면서 서로가 격려하고 의논해서 벽돌과 역청을 만들어 냅니다(3). 역사가 요세푸스에 따르면 이때 성 쌓기를 주도한 사람이 천하의 영걸 니므롯이라고 합니다. 벽돌과 역청이라는 혁명적인 공법을 가지고 멋있는 비전을 제시하니 모두가 니므롯에게 열광하며 한마음으로 그를 따랐습니다. 그런데 그 목적이 하나님의 이름이 아닌 ‘우리 이름’을 내는 것입니다(4). 학교와 직장, 심지어 교회에서도 모두가 자기 이름을 내고 싶어서 성과 대를 쌓으며 수고합니다. 하나님이 아닌 내 이름을 내고 싶은 악 때문에 조금이라도 인정을 못 받으면 견디지 못하고 떠나버립니다. 그러나 명성을 얻으려고 이름을 새긴 벽돌이 하나님을 반역한 상징으로 수치와 오명의 벽돌이 되었습니다. 내 이름을 내려는 수고와 노력은 결국 하나님에 대한 반역으로 이어집니다. 생육 번성 충만하여 땅에 편만하라고 하신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9:1-7) 온 땅으로 흩어지는 것이 우리의 사명입니다. 그 사명을 거스르고 끼리끼리 뭉쳐서 능력과 재물과 명예의 성을 쌓으며 흩어짐을 면하고자 하는 것은 하나님을 반역하는 죄악입니다(5).
흩어지면 살 수 있습니다. 아담으로부터 죄를 물려받은 인간들이 홍수 심판을 경험하고도 자기 힘으로 뭔가를 이루려고 성과 대를 쌓았습니다. 하나님도 못 말리는 열심으로 어마어마한 성을 쌓았는데, 하나님은 그 외양이 아니라 그것을 짓는 속마음을 보시려고 강림하십니다. 내가 열심히 짓는 학업과 사업, 사역의 목적이 하나님께 있는지 내 명성에 있는지를 하나님께서 다 보고 계십니다. 나의 똑똑함과 능력으로 모든 일을 척척 해내니 하나님도 금지할 수 없다고 하십니다(6). 그래서 언어를 혼잡케 하시고 온 지면에 흩으시는 것이 하나님의 묘략입니다. 능력을 빼앗지 않으시고 성을 부수지도 않으시고, 그저 언어를 혼잡케 하심으로 성 쌓기를 그치게 되었습니다(7-9). 외도와 가출, 부도와 질병의 사건을 만나면 가족 간에도 언어가 혼잡해지고 말이 안 통하게 됩니다. 정신적, 육체적으로 흩어짐을 당하면서 우리끼리 잘 먹고 잘 살아보겠다는 나만의 성 쌓기를 그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치게 하신 그 자리에서 이제는 내 성이 아닌 하나님의 성을 쌓아야 합니다. 내 가족, 내가 좋아하는 사람끼리 뭉쳐서 ‘나’만 잘 살아보려던 노력을 다른 사람의 구원을 위해 사용해야 합니다. 하나님의 구원 계획을 이루시려고 생육, 번성, 충만하라 하시고 온 지면에 흩으신 것이 ‘흩어짐의 축복’입니다. 우리의 가정과 직장과 교회에 흩어짐의 축복이 임하여 각자의 자리에서 구원의 성을 쌓아가기 원합니다. 육적으로 흩어져 있어도 한 성령 안에서 믿음의 언어가 통할 때 하나님이 주신 사명을 감당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케 하셨음이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 창11: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