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탕집탕]
눅 15:11~32 지난주 ‘복이 있도다’의 설교에서 영혼 구원의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 교회와 나라로 지경이 넓어져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구원을 위해 포도나무처럼 잘 밟히고자 해도, 한 영혼을 돌아오게 하는 것은 인간의 노력만으로는 참 어려운 것임을 보여줍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을 회개도 중요하지만 누가 초청을 받아들이는 진정한 의인인가라는 시각으로 탕자의 비유를 보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유명한 돌아온 탕자, 집에 있는 탕자의 본문을 통해서 한 영혼을 찾기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합니다. 첫째 돌아온 탕자입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가 계신 집 안에서의 삶보다 다른 곳에 가면 큰 만족이 있으리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무례하게 살아있는 아버지에게 유산을 요구하고 떠납니다. 이렇게 둘째 아들은 하나님의 부르심이 아니라 자기의 소견에 옳은 데로 떠났기에 허랑방탕으로 줄달음칠 수밖에 없었습니다. 여기에서 ‘허랑방탕하여’는 구원받지 못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어떤 부분에서 신앙도 가족도 다 끊고 내 뜻대로 하고 싶은 강한 욕망이 있습니까? 그 욕심 때문에 허랑방탕으로 갈 수밖에 없었던 사연이 있습니까? 그 사연이 누구의 탓도 아닌 무분별한 내 삶의 결론임을 깨닫고 있습니까? 처음에는 많은 돈 때문에 좀 풀리는 듯했지만, 잠시 후에 둘째 아들은 재물과 사람 모두에게 배반을 당합니다. 그래서 아들도 아버지 입장에서도 ‘다 없앤 후’까지 기다려야 합니다. 하지만 비로소 궁핍한 것 가지고는 낮아지지 않았고, 돼지치기에, 쥐엄 열매에 그것도 없는 것까지 내려가야 합니다. 이렇게 내려가서야 자기 주제를 알게 됩니다. 여러분은 그저 굶지 않는 것을 부러워할 정도의 치사함과 배고픔을 겪어 보셨습니까? 요즘 누가 부럽습니까? 내가 내 주제를 아는 것부터가 하나님의 시작입니다. 고난이 있으니 그 유명한 100% 죄인이 저절로 깨달아졌습니다. 자기가 대단한 사람인 줄 알고 아버지께 당당하게 자신의 몫을 요구했던 둘째 아들은 자신이 아버지의 아들이 될 수 없는 사람이며 품꾼의 하나라도 일컬음을 감당치 못하겠다라면서 고개를 숙였습니다. 참회개의 모습은 바로 이런 겸손함이고, 가장 좋은 감정은 회개의 감정입니다. 내가 그런 생각을 하는 것만으로도 주님은 벌써 아시고 아직도 거리가 먼데 측은히 여겨 달려와 안아주십니다. 탕자가 회개했기 때문에 받아준 것이 아닙니다. 아들이 변해서 돌아왔지만, 아버지는 변함없이 동일한 마음으로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마음속으로 회개한 것을 아버지에게 입으로 시인했습니다. 회개는 이렇게 언어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집에 들어와서 알게 된 것은 아무것도 자기를 아버지의 사랑에서 분리할 수 없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돌아온 탕자처럼 귀하게 여기신다는 것이 믿어지십니까? 여러분은 돌아갈 곳을 생각하면 아버지의 얼굴이 떠오르십니까? 현재 아버지의 품속에 안겨있습니까? 그런데 오늘 이런 이야기를 듣고 전혀 기뻐하지 않는 한 사람이 있으니 맏아들이었습니다. 두 번째 집에 있는 탕자이야기입니다. 돌아온 동생에 대해 함께 즐거워할 것을 당연히 기대했는데 맏아들은 오히려 분노로 반응합니다. 맏아들, 둘째 아들 즉, 탕자와 모범생이 예수가 없으면 다 똑같이 문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차별 없이 권해야 합니다. 큰일이든 작은 일이든 매사에 오해하고 분노하는 자녀와 배우자가 있습니까? 거기에 혈기로 대응하지 아니하고 끊임없이 권하며 인내하는 사랑이 있습니까? 이 맏아들은 피해의식으로 자신을 상처 주며 외로워하고 있습니다. 겉으로 보이는 모습과 마음속에 감추어진 모습이 완전히 다릅니다. 맏아들은 자신과 동생을 비교하는 자존감이 낮은 착한 아이 증후군에 속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죄를 지어서 죄인이 아니라 애초에 죄인이기에 죄를 짓는 것인데 큰아들은 이 비밀을 모릅니다. 그런데 방탕한 둘째 아들을 만나준 아버지는 지금 상한 감정과 불만으로 뒤틀린 맏아들에게도 찾아갑니다. 하나님은 잃어버린 아들과 딸 때문에 지금도 고통받고 계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염없이 기다리십니다. 이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은혜란 받을 자격이 없는 자에게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가 회개했기 때문에 받아들인 것이 아니고 무조건 받아들였습니다. 아버지께서는 맏아들도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계시지만, 은혜를 이해하지 못했던 맏아들은 문밖에서 서성이는 탕자 노릇을 하는 것입니다. 40억 빚을 갚기 위해 지하에서 라벨을 십몇 년 붙이신 집사님은 하나님의 은혜로 빚도 거의 해결되고 재산도 증식하셨습니다. 그러나 믿지 않는 부모님과 죽은 동생에 대해서까지 아직 비교하고 피해의식이 남아 있습니다. 참으로 돌아온 탕자이기도 하고 집에 있는 탕자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여러분은 돌아온 탕자입니까? 집에 있는 탕자입니까? 다 주님 앞으로 돌아오시는 여러분들 되시기를 바랍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