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이 있도다]
시128:1-6
오늘은 복이 많이 나오는 시편 128편을 통해 여러분들에게 복을 드리고자 합니다. 시편 128편 본문에서 ‘복’이라는 말을 네 번이나 강조합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것이 감격 되어 이렇게 찬송을 한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에게 개인과 가정의 복과 교회의 복과 나라의 복의 단계를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개인의 복 - 여호와를 경외하며 함께 걷는 복
누구나 자기 인생길이 다 복된 길이길 원합니다. 그런데 시편 1편을 보면, 복과 말씀은 뗄 수 없는 관계입니다. 1절부터 3절까지 나오는 ‘복’과 4절부터 6절까지 나오는 ‘복’은 히브리어로 다른 단어가 쓰였습니다. 아슈레이 복이 사람과 관련된 복이라면, 바라크의 복은 주체가 언제나 하나님이십니다. 전자가 개인과 가정의 행복을 추구한다면, 후자는 교회의 번영과 복으로 넓어지는 것입니다. 1절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너무나 행복해서 주위 사람이 부러워할 만한 사람입니다. 그의 길을 걷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순종하며 실천하는 것입니다. 듣는 자나 말하는 자나 사랑으로 듣고 신뢰를 해야만 경외하게 됩니다. 사랑이 담긴 두려움은 강력한 순종의 동기가 됩니다. 여러분들이 여호와를 경외하는 함께 걷는 묵상하는 길에 들어섰다면 이제 그 길에 붙어 있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주님과 함께 걸으며 말씀을 듣고 순종하는 것이 바로 아슈레이의 복입니다. 그러면 어느 날 힘든 내 불행이 해석됩니다.
이 시의 배경이 되는 므낫세는 그의 아버지 히스기야가 버린 산당들을 다시 세우고 바알을 위해 제단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했습니다. 물질 때문에 우상을 섬긴 것입니다. 그러다 그가 바벨론에 잡혀가 눈이 뽑히는 환난을 당한 뒤, 하나님께 간구하고 다시 왕위에 앉게 되었습니다. 므낫세는 회개가 되었습니다. 그러니 고난이 오더라도 회개할 수 있는 것이 가장 큰 복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길이며 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는 규칙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도를 행할 때 ‘복이 있도다’입니다.
둘째, 가정의 복
가정의 복은 남편, 아내, 자녀 이렇게 세 가지로 나눠 보겠습니다.
1) 남편: 수고의 복
특별히 가장에게 주신 축복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자는 손으로 수고하며 사는 자이고 손의 수고를 귀하게 여기는 자입니다. 주님이 주신 선물 가운데 손보다 귀한 것이 없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잘 걸으면 손이 수고를 기쁘게 합니다. 그러나 여호와와 함께 걷지 않는 자는 손으로 수고하여도 먹지 못하게 된다는 진리입니다. 우리의 수고가 먼저 있어야 하지만, 그런 수고로 인한 결과는 비를 내려주시는 하나님의 손에 전적으로 달려 있습니다. 사람들이 바람에 날리는 헛된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늘 만족하지 못합니다. 헛된 소망이 아니라 산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돈보다도 나에게 일거리가 있다는 것에 감사해야 합니다
2) 아내: 희생의 복
가장이 잘 서 있게 되면. 수고한 대로 먹고 마시는 축복이 있고, 잃어버린 가정도 회복됩니다. 진정한 성도가 세워지면, 가정이 세워지는데 이것이 성전에 올라갈 때 회복이 된다는 것입니다. 성령 받은 가정의 아내는 결실한 포도나무 같다고 합니다. 포도나무는 약하고 망가지기 쉬운 식물이어서 잘 지지해주고 돌봐줘야 합니다. 관상용이나 재목으로는 쓰일 데가 없고, 오직 열매로만 쓰입니다. 그 열매도 밟혀야 성찬에 쓰이는 포도주까지 될 수 있습니다. 결국은 내가 잘 밟히고 있으면 가장 영화로운 곳에 쓰입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는 복은 이렇게 밟히는 복입니다. 그런 아내가 네 집 안방에 있음을 강조하는데 드러내지 않고 섬기며 희생하라는 뜻입니다. 그러나 내가 은밀한 곳에 있어도 주님 때문에 기뻐하면 반드시 나를 쓰십니다. 아내들은 인격과 신앙의 성숙을 위해 정말 애써야 합니다. 아내 자신이 신앙으로 성숙하지 않고 어떻게 아이들을 주님의 교양과 훈계로 양육할 수 있겠습니까? 예수 그리스도의 신부로서 성도라면 누구든지 이런 포도나무와 같은 삶을 반드시 거쳐야 합니다.
3) 자녀: 영광의 복
이런 남편과 아내로 산다면 어린 감람나무 같은 자식을 주십니다. 감람나무의 특징은 더디 자라지만 수명이 천 년 이상이라고 합니다. 그 열매에서는 기름을 얻고, 나무는 재목을 사용하는 등 다양한 쓰임새가 있습니다. 한 마디로 더디 걸리지만 참고 인내하면 엄청난 열매가 있고 쓰임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자녀와 나를 보고도 지금은 안 보이는 것에 실망하지 말고 남은 것이 있음을 봐야 합니다. 내가 포도나무 같은 희생을 하지 않으면 절대로 감람나무 같은 자녀와 성도가 나올 수가 없습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면 포도나무로 밟힐 때도 복을 얻고 감람나무로 영광을 얻을 때도 복을 얻습니다. 밥상공동체란 말이 있습니다. 밥상 문화가 그 집안을 보여주며, 가정의 건강지수를 측정할 수 있습니다. 안방과 식탁은 대화가 있는 곳입니다. 우리의 대화는 즐거워야 합니다. 하나님을 영화롭게 해드려야 합니다.
셋째, 교회와 나라의 복
이 같은 복은 아슈레이의 구체적인 복에서 4~5절 바라크의 복으로 가능성이 열린다는 뜻의 복으로 바뀌었습니다. 개인과 가정의 복으로 나가는 자는 여호와께서 시온에서 복을 주시고 예루살렘의 번영을 본다고 하셨습니다. 즉 교회와 나라의 복으로 지경이 넓어집니다. 즉 십자가와 부활의 복입니다. 십자가는 3절에서 말한 포도나무 같은 모습으로 십자가의 삶을 살면 감람나무 같은 부활의 복도 주십니다. 우리는 가정의 문제나 상처 등으로 포도나무처럼 밟히면서 감람나무처럼 부활의 복을 누리며, 내가 가야할 시온인 우리의 교회와 예루살렘인 우리의 사회에 대해 함께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가정에 포도나무 같은 힘든 일이 있었다면, 그 약재료를 가지고 공동체의 다른 힘든 가정을 살려야 합니다. 이타적인 삶을 살 때 평생의 예루살렘의 번영을 보는 축복을 주신다고 합니다. 나 한 사람의 여호와를 경외하는 삶이 우리 가정과 공동체와 나라를 살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