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장막
창세기 9장 18-29절
결혼해서 안채, 바깥채가 있는 시댁에서 시집살이를 했습니다. 부지런히 걸레질과 청소를 하며 화려하고 깨끗한 집에 살았지만, 저는 '어떻게 하면 이 집에서 나갈까'하는 생각뿐이었습니다. 단칸방에 살아도 마음이 편해야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가 화려한 장막이 아닌 여호와의 장막에 거하기를 원하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본질상 여호와의 장막에 거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 생육, 번성, 충만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노아와 세 아들을 통해 성취됐습니다(18-19). 영적, 육적으로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됐는데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벌거벗었다고 합니다(20-21). 노아의 타락에서 보는 죄인의 특성은 환경에 장사가 없다는 것입니다. 120년 동안 방주 짓느라 고생하고, 1년 동안 홍수를 거치고, 방주에서 나온 후에는 폐허를 일구고 농업을 시작했습니다. 그러니 ‘나도 누릴 자격이 있다’고 장막에 틀어박혀서 술에 탐닉하며, 죄의 점진성에 의해 취하여 벌거벗게 됩니다. 6장에서 9장까지 구체적으로 기록되던 노아의 인생이 방주에서 나온 후에는 '350년을 지내었고(28)'로 아무 한 일이 없이 지나갑니다. 노아의 아들 함은 아비의 하체를 악의적으로 즐기면서 보고, 형제들까지 죄에 동참시켜서 과장되게 떠벌리며 아버지의 잘못을 고합니다(22). 함이 악해서 그랬을까요? 함에게는 방주만 짓느라고 자신들을 돌보지 않은 아버지에 대해 상처가 있었을 것입니다. 함에게서 보이는 죄인의 특성은 상처가 끈질기다는 것입니다. 누구나 부모로 인한 상처가 있을 텐데, 힘들 때는 서로 한 마음이 돼서 상처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다 환경이 편해지니까 노아는 타락으로 드러나고, 함은 악의적 행동으로 상처가 드러났습니다.
우리의 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죄를 가리워 주십니다. 셈과 야벳은 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 아버지의 하체를 덮고 보지 않았습니다(23). 즉시 사태를 수습하되 조심스럽게 처리했습니다. 죄를 무조건 감추라는 뜻이 아닙니다. 주안에서 나의 죄와 수치를 드러낼 때 어떤 허물도 덮어주시는 것이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우리를 사랑하시는 하나님께서 구원의 장막에 거하게 하십니다. 술이 깨어 사태를 파악한 노아는(24) 함의 후손인 가나안이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 원한다고 저주의 예언을 합니다. 셈에게는 약속의 하나님 여호와로 인해 예수님이 오실 것을 예언하고, 야벳에게는 창대케 되는 축복을 예언합니다(25-27). 노아가 함을 미워한 것이 아니라 자녀를 객관적으로 보고 각자 역할에 맞는 처방을 한 것입니다. 셈의 종이 되었기에 함도 야벳과 함께 셈의 장막에 거하게 됐습니다. 셈에게서 예수님이 오시기 때문에 종의 종이 되어서라도 셈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축복입니다. 위대한 삶을 살았던 노아도 '죽었더라'로 인생을 마칩니다(29). 노아도, 함도, 셈과 야벳도 구원의 장막에 거해야 천국에 갈 수 있습니다. 함은 나쁘고 셈은 좋은 게 아니라 이 땅에서의 역할이 다를 뿐입니다. 구원의 장막에 이르는 과정과 순서와 방법이 다르고 신분과 위치가 달라도, 하나님께서 주신 역할을 감당함으로 모두가 구원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종의 종이 되어도 여호와의 장막에 거하는 것이 목적이 될 때, 허물과 상처를 덮어주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우리를 천국으로 인도합니다.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창9:26-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