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려한 장례식]
창 50:1~!4
중국 저장성의 부자 형제들이 대형카메라와 폭죽이 동원해 어머니의 화려한 장례식을 치렀다고 합니다. 돈을 주고 수천 명의 조문객을 불렀는데, 지나친 화려함으로 질타만 받았습니다. 화려한 장례식은 돈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오늘은 요셉이 아버지 야곱의 장례를 거창하게 치르는 장면이 나오는데, 야곱의 화려한 장례식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화려한 장례식을 위해 세상 권세가 쓰일 때가 있습니다.
요셉이 야곱에게 특별한 사랑을 받았기에 큰 슬픔으로 구푸려 울고 입 맞춥니다. 40일이 걸려서 야곱의 시신을 처리하고, 애굽의 국장 수준으로 70일을 곡하며 화려한 장례를 치릅니다. 우리의 권세는 오직 하나님 나라를 위해 예비된 것입니다. 야곱의 장례를 위해 하나님께서 요셉에게 권세를 허락하시고 보여지는 역할로 쓰임 받았습니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장례식이 어떤 모습이길 원하는지 적용해보십시오. 내핍과 절약으로 7년의 기근을 다스렸고, 하나님 백성은 천국소망이 있으니 이렇게 화려한 장례식은 필요가 없을 텐데 왜 갑자기 사치스러울 정도의 화려한 장례식을 했을까요?
둘째, 화려한 장례식은 전도의 기회가 되기 때문입니다.
요셉이 가나안 땅에 묻어달라는 아버지의 유언을 ‘내가 너희에게 은혜를 입었으면’으로 시작하면서 지혜롭고 공손한 태도로 바로에게 부탁합니다. 그 당시에 가나안에 가서 장사하려면 엄청난 시간과 비용이 들 뿐 아니라 총리 요셉이 자리를 비우게 되기에 국정이 멈추게 됩니다. 그런데도 바로가 ‘올라가서 장사하라.’며 허락한 것은 요셉이 바로에게 신뢰와 지위를 얻었기 때문입니다. 내게 주신 지위로 하나님을 나타내는 것이 전도입니다. 세상과 바로는 요셉이 더 초라한 곳으로 가는 것 같으니 ‘왜 가지?’ 생각합니다. 세상은 맘몬(돈)신을 섬기니 가나안으로 가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그러나 가나안은 천국의 예표이기에 야곱이 애굽에서 17년을 화려하게 살았얻 여기 묻힐 생각이 없다는 뜻을 나타낸 것입니다. 안 믿는 사람이 죽었다 깨어도 못할 일을 요셉은 부탁까지 하는 겁니다. 이때를 위해 7년 기근을 구한 요셉에 대한 바로의 신뢰가 있었고, 야곱은 바로를 축복했던 겁니다. 이것이 바로 전도입니다. 사업과 결혼을 할 때, 이름을 지을 때 안 믿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하지? 무슨 뜻일까?’하고 묻게 하는 적용을 하셔서, 그 질문에 대답하며 하나님을 전하는 전도의 기회로 삼으시길 바랍니다. 전도하기 위해 세상 권세가 쓰였던 적이 있습니까? 전도하기 위해 준비된 인생인지 적용해 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신자와 불신자의 애통이 있습니다.
바로의 모든 신하와 바로 궁의 원로, 애굽의 모든 원로가 요셉과 형제들의 가나안 행에 함께하며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몸으로 배우고 있습니다. 야곱의 죽음이 온 애굽의 애도를 받는 것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내려온 개인 구원이 열두 지파를 통해 선민으로 이어지며, 신자와 불신자 가운데 하나님 나라가 전해지는 큰 의미가 있습니다. 신자와 불신자가 다 모이기 위해 요셉은 애굽의 장례방식을 따랐습니다. 세상에서 복음을 전하기 위해 안 믿는 사람들을 참여시켜야 할 때가 있습니다. 신자도, 불신자도 장례 행진에 참여해서 가나안의 의미를 배우고 천국 가는 행전을 봅니다. 요단 강을 건너 광야 길을 돌아간 것은 가나안으로 가는 길을 기억하고 꼭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애굽사람들이 크게 애통한 것은 요셉이 그들에게 유익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무리 믿음이 있어도 불신자들에게 유익을 주지 않으면 그들이 애통하지 않습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은혜를 끼친 것은 요셉이지만 그 특권을 야곱이 받는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닙니다. 모두가 참여해서 애통할 수 있는 장례식을 위해 믿는 여러분이 불신자에게 유익이 된 적이 있습니까? 또한, 지금부터라도 전도하며 이타적인 삶을 살기로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화려한 장례식은 믿음의 자손들만 할 수 있습니다.
요단 강 건너편 아닷 타작 마당까지는 신자와 불신자 함께 왔지만, 막벨라 굴에 묻고 장사한 것은 지질해 보여도 야곱의 아들이었습니다. 가나안은 언약의 땅이자 믿는 내가 가야할 땅이며 소유해야 할 땅이고 영적 매장지입니다. 삶으로 값을 치르고 샀기에 믿음의 아버지가 명령한 길을 가야 합니다. 그러나 돈이 없다고, 다른 급한 일이 있다고... 심지어 총리로서 자리를 비울 수 없다면 가지 못하는 곳이 막벨라 굴입니다.
세례 요한이나 스데반, 십자가에서 우리를 위해 죽으신 예수님이 계시기에 장례식 자체로 상급을 따지면 안 됩니다. 화려한 장례식의 본질은 이 땅에서 아무리 험악한 세월을 살아도 천국에서 나를 영접해주실 주님이 계시다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아직도 막벨라 굴에 오지 않는 식구들이 있습니까? 그들을 전도축제에 초청하기 위해 감수해야 할 것이 시간인지, 감정인지, 재물인지...무엇인지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여러분의 모든 어려움을 물리치고 모든 식구를 막벨라 굴로 인도하는 전도축제가 되길 기도합니다.
공동체 고백입니다.
의사이며 교수로 너무 바쁘지만, 시간을 쪼개 우리들교회에서 초원지기와 목자로 섬기시는 분의 목장 나눔입니다. 이 목자님은 암에 걸린 목원 집사님을 2년 4개월동안 섬기셨습니다. 이 김 집사님은 똑똑하고, 종교 다원론자라 다른 사람 말은 절대로 듣지 않았지만, 세상 권세를 가진 목자님이 예수님을 믿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는다고 했답니다. 목장에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서 목장이 천국이라는 말로 다른 목원들에게 권면도 했답니다. 목자님은 김 집사님에게 예수님을 믿게 하려 노력했지만 잘되지 않았어도 한결같이 섬겨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김 집사님과 병원에서 목장 예배를 드렸는데, 혼수상태에서 깨어나 목자님을 보더니 “여기가 천국인가요?”라고 물었고, 목자님과 헤어질 때는 “몸이 불편해서 멀리 못 나가요.”라는 농담으로 마지막 대화를 나누었답니다. 제게 예수님을 만난 것을 어떻게 알 수 있냐고 강한 어조로 물어보셨습니다. 그만큼 김 집사님에게 주님에 대한 강렬한 갈증과 갈망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택자로 불러주셨다고 생각합니다. 김 집사님이 목자님과 권찰님의 무한한 헌신과 목장 식구들의 사랑을 기억하시고 가셨으리라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