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분별]
창 48:8~22
야곱은 그렇게 힘든 훈련을 통해 주님의 사랑을 알게 되었으면서도 요셉을 유다의 자리에 놓고 싶어 합니다. 그러나 아무리 요셉의 행위가 훌륭해도 믿음까지 줄 수 있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역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분별한다는 것은 지식으로 판단하는 것이 아닙니다. 마지막까지 사랑하고 축복할 때, 상대방이 받아들이는 태도에 따라 저절로 분별되는 것입니다. 오늘은 야곱의 마지막 분별에 대해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마지막까지 사랑합니다.
험악한 세월을 살아온 야곱은 이제 육신은 쇠했으나 영안이 아주 밝아져 있었습니다. 축복해주고자 하는 이스라엘 앞으로 요셉이 두 아들을 데리고 나아갑니다. 그리고 아버지가 축복하기 쉽도록 장손 므낫세를 앉혔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므낫세를 축복하지 않고 팔을 엇바꾸어 에브라임을 축복했습니다. 그가 이렇게 한 것은 영적인 행동입니다. 마지막까지 요셉에 대한 특별한 사랑을 내려놓지 못했지만, 야곱으로서는 최선을 다해 구원의 사랑을 표현한 것입니다. 믿지 않더라도 최선을 다해서 사랑해야 합니다. 자녀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은 그의 몫입니다. 또 부모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도 그의 몫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마지막까지 사랑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합니다.
둘째, 마지막까지 축복합니다.
축복의 내용은,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 나를 기르신 하나님, 나를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입니다. ‘건지시다’란 ‘고엘’, 즉 ‘기업’이라는 뜻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기업을 위해서 건져주셨다는 것입니다. 나를 건지신 하나님이 우리 집안을 건져주시고 이스라엘 민족을 건져주시고 온 세계를 건져줄 것이라는 굉장한 뜻이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자녀에게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은 이야기만 하라는 것이 아닙니다. 함께 하시고 동행하시고 환난에서 건지신 하나님을 알도록 말씀으로 표정으로 언어로 축복해주시기 바랍니다. 자녀들과 큐티하고 서로 말씀을 나누면 그것이 축복이라고 생각됩니다.
셋째, 마지막까지 분별합니다.
야곱은 죽기 직전까지 어떻게 분별합니까?
①총리 요셉의 한계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가 에브라임의 머리에 오른손을 얹은 걸 보고 요셉이 기뻐하지 아니했다고 합니다. ‘기뻐하지 않다’에는 ‘악하다, 근심하다, 사납다’라는 뜻이 있습니다. 요셉이 아버지의 축복이 자기 생각과 다른 것을 보고 근심하면서 악하고 사나워져서 너무 못마땅해 합니다. 야곱이 눈이 어두워서 이런 축복을 했다고 생각합니다. 요셉의 교양과 도덕과 지적 능력에 한계가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대리자이며 믿음의 조상인 아버지 야곱을 자신이 넘어선다고 착각합니다. 총리까지 되니 옳고 그름으로 판단하기 시작합니다. 요셉 자신도 장자가 아니면서 맏아들이 축복받아야 한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게다가 열 명의 형들의 아들은 생각조차 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형들을 살리고 용서했다고 자기중심적으로 생각이 바뀐 것입니다. 무섭게 자기감정을 조절하면서 강한 명령조로 아버지께 돌이키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안수를 너무 쉽게 여긴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구원을 위해 요셉이 바로의 꿈을 해몽할 수 있게 하셨지만, 지금은 요셉에게 앞날을 알려주지 않으십니다. 십자가를 길로 놓은 꿈은 해몽할 수 있었어도 이제 자기 유익의 길로 가고자 하니 자녀들의 앞날을 모르는 것입니다. 므낫세는 불평하지 않고 하나님의 섭리를 인정하고 받아들이는데 아버지 요셉이 인정하지 못합니다. 그래서 문제아는 없고 문제 부모만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약한 자를 통해 일하십니다.
②야곱이 드디어 ‘믿음’이냐 ‘성품’이냐를 분별합니다.
야곱은 선택론을 이해하지 못하고 기뻐하지 아니하는 요셉에게 “나도 안다. 내 아들아 나도 안다.”라고 말합니다. 이것은 “네가 얼마나 훌륭한지 알지만, 하나님은 항상 의외의 사람을 쓰신단다. 하나님께서 ‘아니다.’ 하시면 ‘네’ 해야 하는데 나는 당하고 난 후에야 알곤 했지. 인생이란 내 맘대로 되는 것이 아니란다. 이제는 당하지 않고도 알게 된 것이 있지.”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우리 인생은 야곱과 이스라엘 사이를 왔다 갔다가 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나를 이기실 것을 바라보면서 가는 것입니다. 다 온 것 같아도 아직 더 가야 하는 조금이 있습니다. 완전히 무너지고 이스라엘이 되는 마지막에야 그 사랑하는 요셉을 정확하게 분별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지막 분별은 구원의 분별입니다. 구원의 분별은 믿음의 분별입니다.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는 것입니다. 오직 하나님의 선택은 ‘차별하지 않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믿음을 여러분에게 주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