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념하시는 하나님
창세기 8장 1-12절
아이들에게 지옥이 어떤 것이냐고 물었더니 ‘사방에 엄마가 있는 것이 지옥’이라고 합니다. 엄마의 잔소리가 싫어서 집을 나갔다는 청년도 있습니다. 홍수 심판 당시 노아가 얼마나 잔소리장이로 보였을까 생각해봅니다. 하나님도 우리를 사랑하시기에 끊임없이 경고하셨습니다. 그래도 듣지 않으니 결국 심판을 하시지만 하나님의 마음이 아프십니다. 심판 중에도 우리를 권념하시며 나를 기억하시고 구원하십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방주 안의 짐승들을 권념하십니다(1). 권념하시는 하나님은 비가 그치고, 물이 물러가고, 감하고, 방주가 머물고, 물이 ‘점점’ 감하게 하십니다(2-5). 방주로 들어가서 구원받았다고 다 된 것이 아니라 ‘점점’ 이루어가는 구원이 있습니다. 물이 점점 감하기까지 150일을 기다리고 인내하며(3) 내 힘으로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러면 생각지도 못한 바람을 사용하셔서 물이 마르고(1) 고통의 근원이 그칩니다. 그치지 않을 것 같던 비가 하나님께서 막으시니 바로 그칩니다(2). 내 속의 고통이 그치기 위해서 내 육신의 소욕이 그쳐야 합니다. 나의 생색과 자존심을 내려놓고 평강을 누리면 아무리 비가 쏟아져도 맞지 않습니다. 어떤 환경에서도 고통이 고통이 되지 않는 안식을 누리게 됩니다. 아라랏산은 ‘후손의 산’이라는 뜻이고, ‘머물렀다’는 ‘휴식’의 뜻입니다(4). 영적 후손을 위해 전도하면서 살았더니 남편이 떠나기 전에도, 구원받고 떠난 후에도 저에게 진정한 안식이 있었습니다. 환경이 편해져서가 아니라 세상과 구별된 가치관을 갖는 것이 안식이고, 그러므로 안식은 십자가 지는 삶입니다. 내가 십자가에서 안식을 누리고 있으면 내 정체성이 보입니다. 천하의 높은 산이 덮여서 다 없어진 줄 알았는데 물이 감하여 봉우리가 보입니다(5). 천하의 김양재가 시집살이하면서 죽은 줄 알았는데, 구원을 위해 순종하고 있었더니 봉우리가 보였습니다. 내가 해야 할 일이 보이고, 사건을 해석하는 통찰력이 생겼습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함부로 살아서는 안 된다는 정체성을 발견했습니다.
권념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알았다면 내가 할 일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수의 때는 미리 알려주셨는데 믿음의 훈련을 위해 회복의 때는 숨기십니다. 그러나 새를 날려서 정탐하는 방법으로 물이 감한 여부를 알 수 있습니다(8). 특별한 계시가 없어도, 평범한 방법으로도 회복의 때를 알게 하셨습니다. 노아가 40일 지나서 창을 열고, 까마귀를 내어놓고, 비둘기를 내어놓고 기다리고, 다시 7일을 초조하게 기다리고, 또 7일을 희망 중에 기다립니다(6-12). 비가 그쳤다고 금세 세상으로 나가면 위험하기 때문에 때를 분별하며 기다려야 합니다. 부정한 짐승인 까마귀는 썩은 고기와 시체를 먹느라고 돌아오지 않았습니다(7). 방주 안에서 훈련을 받고도 자기 욕심과 야망 때문에 세상으로 떠나는 사람이 있습니다. 비둘기는 세상에 접촉할 곳이 없어 방주로 돌아왔습니다. 다시 내어놓았더니 소망이 없는 것 같은 ‘저녁때에’ 감람나무의 새 잎사귀, 물이 감했다는 소식을 들고 왔습니다(9-11). 사명을 감당하기 위해서 까마귀처럼 세상이 좋아서 떠날 사람인지, 비둘기처럼 구원의 기쁜 소식을 전할 사람인지 사람을 분별해야 합니다. 우리들 모두 비둘기가 되어서, 복음의 기쁜 소식을 들고 마른 땅을 찾아다니며 각자 사명의 땅에 정착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하나님이 노아와 그와 함께 방주에 있는 모든 들짐승과 육축을 권념하사 바람으로 땅위에 불게 하시매 물이 감하였고” - 창세기 8: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