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장 9-22절
한 주 동안 신문에 실린 기사만 봐도 가족 간의 살인과 성폭행, 폭력 사건이 잔뜩 실려 있습니다. 패괴와 강포가 충만한 세상, 악하고 음란한 이 세상에서 노아는 어떻게 말씀을 준행하는 삶을 살았을까요?
노아는 심판의 때를 은혜의 때로 바꾸었습니다. 하나님은 온 땅에 패괴와 강포가 가득한 것을 보시고 멸하기로 작정하십니다.(11-13) 패괴라는 표현이 여러 번 반복될 정도로 썩어버린 세상에서, 노아는 하나님과 동행하며 그의 사적(톨레도트-구속사)을 이어갔습니다(9-10). 극심한 생활고와 500세가 되도록 자식을 낳지 못하는 고난이 있었기에 하나님만 바라보는 의인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패괴한 시대에 고난을 겪는 노아에게 말씀을 이르십니다(13). 되는 일이 없는 가운데 하나님이 이르시는 말씀을 듣는 자가 심판을 은혜로 바꾸며 공동체를 살릴 수 있습니다.
말씀을 준행하기 위해 성전인 내 몸을 잘 이뤄가야 합니다. 심판의 때에 구원받기 위해서 먼저 ‘너를 위하여’ 방주를 지으라고 하십니다. 내가 구원을 받아야 다른 사람도 구원의 방주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잣나무처럼 견고한 하나님의 말씀을 토대로, 예수 그리스도 십자가 보혈의 역청을 안팎에 칠하며(14), 어떤 사건이 와도 침몰하지 않는 성전을 지어가야 합니다. 방주에는 노 젓는 시설이 없습니다. 내 뜻이 아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지시하신 구체적인 식양과 치수를 잘 지켜서(15) 세밀하게 인도함을 받는 것이 구원의 방주에서 누리는 안식입니다. 하나님은 어둡고 습한 방주 안에 창을 내서 빛을 주십니다(16). 넓은 방주에 작은 창 하나만 내는 것이 갑갑한 것 같지만, 그것이 죄와 죽음의 현장을 못 보게 지켜주시는 하나님의 보호입니다. 예배와 양육훈련에 참석하는 것이 갑갑하게 느껴져도, 매일 말씀을 듣는 구조에 속해 있는 것이 빛을 주시고 보호해주시는 환경입니다. 방주 밖의 세상은 홍수로 멸절을 당하는 죽음의 현장입니다(17). 방주 안에만 구원이 있기에 하나님의 언약을 붙들고 잘 머물러 있어야 합니다. 나를 구원하시고 언약을 세우신 하나님은 내 가족들도 구원하신다고 약속해주십니다(18). 내가 말씀을 붙잡고 구원의 공동체에 속해 있으면 내 옆의 사람들, 모든 생물까지도 구원해주십니다(19-20). 나와 가족, 방주 안의 동물들을 위해 식물을 저축함으로 먹을 것이 있게 하십니다(21). 어려울 때를 생각해서 물질을 저축하고, 영적으로 말씀과 기도, 선교, 구제, 봉사를 저축하는 것이 성전을 잘 지어가는 방법입니다.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기에 심판의 때에 위로를 주는 노아가 되었습니다(22).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120년 동안 방주를 지었는데 사람들은 방주로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방주를 짓는 노아의 역할이 심판을 보여주는 것 같지만, 그것은 방주로 들어와 구원받으라는 구원의 외침이었습니다. 하나님이 멸하기로 작정하신 것은 나의 패괴와 강포 때문입니다. 나의 죄악으로 인해 심판의 사건이 온 것을 인정하고 구원의 방주에 들어가야 합니다. 구원의 방주에서 하나님이 명하신대로 준행하는 삶을 살 때, 끔찍한 심판의 사건이 아름다운 구원의 사건으로 바뀝니다. 어떤 패괴와 강포를 저질렀어도, 오늘 말씀을 듣고 방주에 들어가면 비난 받는 사람이 아니라 택함 받는 사람으로 살아날 수 있습니다.
“노아가 그와 같이 하되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 창6: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