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원의 사명>
롬 9:1~13
장애아들을 내버렸다가 검거된 30대 부모가 있었습니다. 잘난 큰아들을 잘 키우기 위해서 이 아픈 아들을 버렸다고 하는데, 이것이 영광된 선택일까요? 누구에게나 있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 부부가 회복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을 구원시켜야 하는 사명이 우리에게 있습니다. 오늘은 구원의 사명에 대해 알아보겠습니다.
첫째, 가족의 구원, 골육 친척의 구원을 원해야 합니다.
바울이 20여 년 전도여행을 다니면서 이방인들은 다 믿고 돌아와도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안 믿었습니다. 나로 인해서 많은 믿음의 열매가 나타나는데 내 식구들은 돌아올 기미조차 보이지 않으니 얼마나 자괴감이 들었겠습니까? 바울의 근심은 자기근심이 아닙니다. 내 안에 주님과의 연합이 충만할수록 구원받지 못한 식구 때문에 그치지 않는 근심과 고통이 있어야 합니다. 바울이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질지라도 원한다고 한 것은, 끊을 수 없는 그리스도의 사랑과 승리에 대한 확신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사랑의 확신은 사명으로 연결되어야 합니다. 그 사명을 위해 주님이 나를 구원해 주시고 모든 일에 넉넉히 이기게 하셨습니다. 자기 목숨이라도 내놓고자 했던 바울처럼 절박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구원을 구하는 것이 사랑입니다.
둘째, 구원의 사명은 구원이 하나님의 절대적인 택하심이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양자됨의 축복을 받은 민족이지만 그들은 구원을 몰랐습니다. 그렇다고 하나님의 말씀이 폐해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유효합니다. 하나님은 반드시 그들에게 주셨던 예배를 회복시키시고 언약을 이루실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시대적 환경이나 인간의 불순종으로 폐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내 기도제목이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폐해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스라엘의 문제는 무조건 자신들이 특별하다고 믿는 데 있습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택하셨다는 것은 특권과 함께 사명이 주어진 선택입니다. 아브라함의 씨라고 다 영적자녀가 아니라 ‘오직 이삭으로 난 자’, 기다림으로 훈련 끝에 낳은 자녀가 씨로 여기심을 받는다고 하십니다. 구원받지 않은 자녀는 나하고 상관이 없다고 하시는데 어떻게 그치지 않는 고통이 없을 수가 있겠습니까?
셋째, 구원의 사명에는 약속의 말씀이 있습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이 원하시지 않는 방법으로 첩 하갈에게서 아들을 낳았습니다. 그런데 이 잘난 이스마엘이 믿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드디어 아브라함의 마음이 곤고해지니 하나님은 사라에게 명년에 아들이 있을 것인데 이 사람이 믿음의 씨라고, 때도 가르쳐주시고 이름도 이삭이라고까지 가르쳐주십니다. 여러분은 약속의 자녀를 위한 말씀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큐티하는 것이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날마다 여전한 방식으로 생활예배 잘 드리는 것이 약속의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구원의 사명은 약속의 말씀으로 기다리는 것입니다.
넷째, 구원의 사명은 고정관념을 넘어서야 합니다.
이삭에게는 쌍둥이 아들이 나왔습니다. 둘 중에 왜 에서가 아닌 야곱을 택하셨을까요? 야곱에게 행위로 택할 만한 것이 있었습니까?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이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다고 하면서도 끊임없이 근거를 찾으려는 고정관념이 있습니다. 우리 생각에는 맏아들이 구원받을 것 같지만, 정작 구원받은 아들은 회개하고 돌아온 탕자, 문제 많은 둘째 아들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을 믿는 것은 내 자녀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자녀가 공부도 잘하고 성실하다면 너무나 감사한 일이지만, 반면에 공부하려고 해도 안 되는 자식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게 믿음입니다. 세상에서 실패하더라도 구원받은 인생은 무조건 성공한 인생이라고 어려서부터 가르치고 눈물로 기도하는 것이 부모가 할 수 있는 최고의 교육입니다.
다섯째, 구원의 사명은 모든 것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이 에서가 아닌 야곱에게 있었다는 것은 에서처럼 성실한 사람도 구원받지 못할 수 있고 야곱처럼 거짓말하고 문제 많은 사람도 구원받을 수 있다는 은혜의 본보기입니다. 하나님이 정말 원하시는 것은 나 자신의 구원으로 시작해서 형제의 구원 때문에 고통하는 것입니다. 나만 구원받아 행복할 수가 없습니다. 구원받아서 너무 감사하지만, 거기에는 반드시 고통이 수반됩니다. 그 그치지 않는 고통이 바로 모든 것을 넘어서는 사랑입니다. 한 영혼이라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열망이 우리의 열망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