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 복]
마5:3-10
우리는 참 복을 좋아하는데 예수님을 믿어도 그 복의 내용은 거의 돈으로 귀결되는 것 같습니다. 나를 살리는 회개 후에 성화를 넘어 영화를 이루어가기 위해서는 무엇보다도 이 복의 개념이 거듭나야 합니다. 그래서 오늘 주님이 말씀하시는 팔복의 개념을 살펴보려고 합니다.
첫째로, 심령이 가난한 자입니다.
본문에 쓰인 가난하다는 원어로 '웅크리다'에서 유래된 말입니다. 스스로 할 수 있는 게 없어서 구걸에 의존해야 하는 사람, 괴롭힘과 고난을 당하고 더는 기댈 곳이 없는 사람, 겸손하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저절로 겸손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 바로 주님이 말씀하시는 가난한 자입니다. 그래서 내 힘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으니 이제 손들고 돌아오라고 가난하고 애통한 환경으로 나를 몰아가시는 것이 복입니다.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가난의 내용이 무엇인가요? 물질과 애정과 건강의 가난이 결국 영적인 가난으로 이어져서 천국을 사모하게 되었습니까? 누가복음 15장 탕자의 비유 중 아홉 단계 중에서 어느 단계에서 아직도 가난한 것을 못 보고 있습니까?
심령이 가난한 자는 두 번째, 애통 하는 자입니다.
애통함은 가까운 가족이 죽었을 때의 극한 슬픔입니다. 내가 구걸할 수밖에 없는 자이고 내가 어쩔 수 없는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을 때 애통함이 나오고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무엇 때문에 애통합니까? 절박한 어려움과 고통 속에서 하나님도 필요 없다고 버둥거리고 있습니까? 믿음이 성숙할수록 나의 가난함을 보고 그것 때문에 애통해서 세상이 줄 수 없는 위로와 천국의 복을 누릴 수 있습니까?
가난하고 애통한 자는 세 번째, 온유한 자로 나갑니다.
온유는 짐승을 길들일 때 쓰는 말로 내가 짐승만도 못하다는 것을 날마다 인정하고 그래서 하나님께 길들여지고 하나님의 뜻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이 온유한 사람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온유는 성품이 아닙니다. 십자가를 경험한 온유는 내게 많은 재주와 은사와 능력과 지위와 권세가 있을지라도 예수님의 능력만 나오도록 억울한 소리를 들어도 나서서 해결하지 않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착한 사람이라는 말을 들으면서 내가 온유하다고 착각하지 않습니까? 성품이 아닌 십자가로 처리된 온유, 하나님 때문에 인내하고 순종하는 이 온유가 있나요? 성품인가요? 믿음인가요?
이렇게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한 자는 네 번째,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고 했습니다.
의인은 하나님의 뜻이 내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의의 개념을 모르기 때문에 우리는 행복, 돈, 애정, 남편, 아내, 자녀의 성적에 주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내가 하나님의 뜻에 주리고 목말라 할 때 하나님은 반드시 채워주십니다. 그러기 위해 하나님의 의를 더욱 사모하도록 나를 가난하고 애통하게 만드는 사람과 환경이 축복입니다. 현재의 고난은 너무나 잠깐이기 때문입니다. 내가 끊임없이 주리고 목말라 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좋은 집, 좋은 차, 사람의 관심과 인정받는 것에 목말라 합니까? 주리고 목마른 환경을 통해 이 영적인 배부름을 알게 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까?
가난하고 애통하고 온유하고 의에 주리는 자는 다섯 번째, 긍휼히 여기는 복을 주십니다.
긍휼은 창자가 끊어지듯이 아파하는 것을 말합니다. 마음으로 불쌍해하고 염려하는 것이 ‘긍휼’이 아니라, 찾아가서 상처를 만져주고 안아주고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실천까지 가는 것이 긍휼입니다. 비록 가족이라도 인연을 끊고 싶은 연약한 식구가 있습니까? 이것을 통해서 나를 회개한다는 것까지 가야 하는데 연민을 느끼지만 찾아가거나 만나기는 싫어서 돈만 부치는 얄팍한 긍휼을 보이지는 않나요? 죽으시는 순종으로 내게 베푸신 주의 긍휼을 생각하며 몸으로 실천하는 긍휼을 보여주어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여섯 번째, 마음이 청결하다고 합니다.
마음이 청결하다는 것은 욕심 없는 빈 마음이나 행위의 청결만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자기 죄를 고백하며 흘리는 눈물이 우리의 마음을 청결케 합니다. 내가 날마다 세상과 하나님 사이에서 갈등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인정하고 나의 연약함과 죄 때문에 너무나 아플지라도 하나님을 의지할 수밖에 없는 자가 청결한 자입니다. 하나님이 내게는 안 보인다고 불평하십니까? 내 죄를 회개하는 눈물로 마음이 청결케 되어 주변의 모든 환경과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보고 있습니까?
이렇게 되는 사람은 일곱 번째, 화평하게 하는 자가 됩니다.
천국에 속한 사람은 화평케 하는 자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나를 위해 죽어주심으로 하나님과 나 사이에 화목제물이 되어주셨다면 우리도 이제 남을 위해서 화목제물이 될 수 있습니다. 가정과 직장 내의 갈등에서 하나님을 믿는 사람으로서 인내와 섬김을 보이며 화평을 이룹니까? 인간적인 의리나 이해타산 때문에 간에 붙었다가 쓸개에 붙었다 하는 비겁한 화평은 아닌가요?
마지막으로는 여덟 번째,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의 복이 있다고 합니다.
주님의 말씀을 듣고 팔복대로 사는 사람에게 기다리고 있는 것은 핍박입니다. 그런데 그런 핍박 속에서 하나님은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내가 믿음 때문에 핍박당할 때, 즐거워하는 것, 이게 천국이고 부활입니다. 주님으로 인해 핍박받지만, 환경을 초월하시는 주님 때문에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이 하나님의 백성 즉 주님의 제자가 갈 길입니다. 크리스챤으로서 뇌물을 거절하고 술자리를 거절해서 따돌림의 핍박을 받은 적이 있습니까? 믿음 때문에 참고 양보했다가 미련하다는 악한 말을 들었습니까? 참고 인내하는 수준이 아니라 하나님이 내 믿음을 높게 보셨구나 하며 적극적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왕따를 당했을 때 적극적으로 기뻐할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목표는 하나님 나라입니다. 그곳에 갈 수만 있다면 어떤 일을 당해도 우리는 천국을 놓지 말아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