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법이 죄인가>
롬 7:7~16
나를 살리는 회개를 해도 율법은 필요합니다. 천국 가는 그 날까지 성화를 이루어가야 하기 때문입니다. 내 속에서 죄라고 알려주는 율법은 죄일까요, 아닐까요? 오늘 바울 사도를 통해서 말씀을 듣고자 합니다.
첫째, 율법은 죄를 알게 해줍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우리가 죄와 율법에 대해 죽었습니다. 그것이 그리스도인에게 자유를 가져다주었습니다. 그렇다면 율법 자체는 죄일까요? ‘그럴 수 없느니라.’가 바울의 단언입니다. 탐심은 내적 악행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십계명의 첫 번째 계명부터 아홉 번째 계명까지 외적인 죄를 언급한다면 마지막 열 번째 계명, ‘탐내지 말라’는 내면의 죄를 말합니다. 비중이 약해서 맨 마지막에 얘기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섬기고 안식일을 어기고 부모를 공경하지 않고 살인하고 도적질하고 간음하는 모든 죄가 탐심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외적인 행동과 언어로는 나타나지 않았을지라도 내 속에 있는 탐심이 죄라는 것을 율법이 알려줍니다. 한 경비원이 택배 문제로 의견충돌 끝에 입주자 대표를 죽인 사건이 있었습니다. 육신은 죄의 도구이고 그 결과는 죽음입니다. 죄는 율법을 통해 드러납니다. 간음은 음란이 드러난 것이고, 살인은 미움이 드러난 것입니다. 우리 모두 내 죄를 못 보면 누구든지 행동으로 나갑니다. 여러분은 드러나지 않은 탐심을 율법으로 알게 된 것이 있습니까?
둘째, 율법은 죄는 살리고 나는 죽입니다.
율법은 죄를 알려준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죄가 율법을 거점으로 삼아서 탐심을 이루었다고 합니다. 율법이 하지 말라고 하니까 더 호기심이 생겨서 죄를 짓게 되었다는 말입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잘못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율법은 단지 거점이 됐을 뿐 내 속에는 이미 죄성이 있습니다. 내 속에 악하고 음란한 죄성이 달궈진 화덕 같아, 율법이 와서 휘저어 놓을 때 그것을 하고자 하는 마음이 올라오는 것입니다. 바울은 법을 몰라서 죄의식이 없었을 때는 내 뜻대로 살았지만, 계명이 이르매 죄가 살아나고 내가 죽었다고 합니다. 아무리 율법을 읽고 알아도 계명으로 '나에게' 이르러야 내가 죽을 수 있습니다. 성경지식이 아닌 나에게 일러주신 하나님의 말씀이 있어야 죄가 무엇인지 알고 내 죄를 깨닫고, 죄는 살아나고 나는 죽는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영적 문둥병으로 죄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 회개하지 못하고 죽어갈 우리에게 예수님이 오셔서 감각이 살아났습니다. 이것이 죄가 살아나는 것입니다. 미국의 존경받던 초대대통령 조지 워싱턴은 노예에게서 치아 9개를 뽑아 자신에게 이식했다고 합니다. 한 인간이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세상 풍속문화를 넘어서는 일이 이렇게 어렵습니다. 노예가 법적으로는 주인의 소유물이라고 해도, 그가 나와 동등한 인격체라는 것을 안다면 함부로 할 수는 없었을 것입니다. 계명이 나에게 이르러야 도덕과 윤리를 넘어서는 죄를 알게 되고 내 죄 때문에 애통하게 됩니다.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나 정도면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셋째, 그러나 율법은 선한 것입니다.
율법을 보면서 나 자신의 죄를 알게 되고 절망을 해가니, 율법은 거룩하고 의롭고 선한 것입니다. 예배와 설교에 은혜를 받고 말씀대로 살기를 기도하고 결단해도 내 삶의 현장에 가면 미워하는 그것, 게으름과 거짓말과 중독으로 사는 나를 보게 됩니다. 그뿐 아니라 놀라운 영적 파워, 지식과 능력, 감정에 충실하라고 외치는 문화적인 메시지에 모두 넘어갑니다. 일부러 배신하고 상처 주려고 한 것이 아니지만 내 감정대로 행하다 보면 원치 아니하는 외도와 이혼을 하고 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 위에 ‘하나님이 짝지어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마19:6), 이 말씀이 있습니다. 내 뜻과 감정을 따라 행했다가 실패를 맛보고 나면 말씀의 선한 것을 시인하게 됩니다. 실패를 통해 세상의 어떤 가치보다 말씀이 우선이라는 것을 인정하게 됩니다. 선한 율법으로 내 속의 죄와 더러움을 보게 되니까, 나도 싫은 나 자신에 대해 죽을 것 같은 절망감을 느낍니다. 자기 죄로 멸망하는 것이나 자기 죄를 똑바로 직시하는 것은 힘들기가 똑같은 고통이지만, 그것을 인정하는 것만이 살길입니다. 인간의 전적타락과 전적인 하나님의 주권을 믿는다면, 이 땅에서 겸손할 수밖에 없는 환경이 축복입니다. 율법을 통해 내 죄가 살아나는 은혜를 경험하고 내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죄인이기에 하나님만을 사모하는,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만을 의지하고 전심으로 사랑하는 것, 이것이 바로 율법의 정신입니다. 그래서 율법의 완성은 사랑입니다. 여러분, 지금 환경 때문에 힘이 드십니까? 감추어진 내 누더기 같은 모습이 드러나는 것에 대해 인정하고, 오직 주님만이 내 사건에서 율법이 복음이 되고 계명이 되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