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창세기 4장 16-26절
하나님께서 자기 형상대로 인간을 지으시고, 죄를 지었음에도 출애굽으로 구원해주시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신다는 것이 성경의 이야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사서 마지막 에스더서에는 바벨론 포로기가 끝나고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은 사람들이 등장합니다. 그래서 에스더서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이름이 한 번도 나오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이 축복인데, 그 축복을 누리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세상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세상의 특징은 무엇입니까? 가인은 하나님의 양육에도 회개하지 않고, 가인의 표를 받아 살길이 생기니 여호와 앞을 떠납니다.(16) 하나님을 떠나 ‘방황의 땅’ 놋에 거하며 인생의 허무함으로 자식에게 집착하게 됩니다. 자식을 훈련시켜 부흥하게(에녹)해서 자기 성을 쌓고, 이랏(도시에서 생활하는 자), 므후야엘(도말하다), 므드사엘(강성한 자), 라멕(강한 자, 젊은 자)을 낳으며 하나님의 역사가 아닌 자기 역사를 쓰기 시작합니다.(17-18) 세상의 성공은 성적 문란으로 이어져 라멕은 아다(아름다움)와 씰라(악기 다루는 자) 두 아내를 얻습니다. 영적 자손 낳기 위한 동침을 쾌락을 위해 쓰며 화려한 불신앙의 문명을 만들어갑니다. 야발, 유발, 두발가인은 모두 풍부하다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부를 이루기 위해 치열한 노력이 시작되고, 그렇게 이룩한 문명의 이기를 다 모아서 칼의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라멕이 무자비한 살상을 저지르고도 가인은 7배의 보호를 받았지만 자신은 77배의 보호를 받는다고 자랑합니다.(19-24) 명예, 돈, 권력이 있기에 하나님 없이도 잘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누가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까요. 아담과 하와에게 아벨대신에 주신 다른 씨, 아벨의 후손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릅니다. 가인의 자손들이 성공하고 있어도 6대손에 이르도록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지 않았기에 아담은 가인에게 기대하지 않았습니다. 잘난 가인은 떠나고, 믿음 좋던 아벨은 죽었지만 다른 씨 셋을 통해 환경에서 일어나고 믿음의 계보를 이어갑니다.(25)
자기의 약함을 선포할 때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게 됩니다. 셋이 아들을 낳고 이름을 에노스라고 지었습니다.(26) 에노스는 ‘치료 불가능한 병든 상태의 한계 상황, 부패로 사라질 삶, 죽어야 하는’의 뜻입니다. 부유하고 강성한 가인의 아들들과는 반대로 인간의 전적인 무능과 전적인 부패를 나타내는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렇게 연약함을 고백했더니 비로소 사람들이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고 셋으로 인해 최초의 공예배가 시작됩니다. 셋을 통해 예수님이 오시게 되었습니다. 가인처럼 세상에서 잘 되는 역할이 아니라, 나의 연약함을 선포함으로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게 되는 것이 최고의 역할입니다. 하나님은 연약한 자를 택하사 자신을 나타내십니다. 흙으로 지은 남자를 뼈로 만든 여자의 머리가 되게 하시고, 가인의 후손 라멕보다 연약한 에노스를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세우셨습니다. 가인의 후손들처럼 잘 먹고 잘 살아서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일이 없는 것이 저주입니다. 인생의 때마다 치료 불가능한 한계 상황을 만나며 하나님의 이름을 부를 수밖에 없다는 것이 감사이고 감격입니다.
“셋도 아들을 낳고 그 이름을 에노스라 하였으며 그 때에 사람들이 비로소 여호와의 이름을 불렀더라” - 창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