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실한 일꾼]
골4:7-9
바울은 골로새서를 통해 소명 받은 우리와 너희가 복음의 일꾼, 교회의 일꾼이 되어, 위엣 것을 찾고,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며, 새 사람의 옷을 입으라 합니다. 이것을 가정에서 적용하기 위해 거룩을 위한 복종과 사랑과 순종의 언어를 쓰며 이 모든 것의 결론은 전도고, 그 중심에 사람이 있음을 말합니다. 골로새서 말미의 바울의 여러 동역자들도 내세울 것 없지만 은혜로 쓰임 받는 하나님의 신실한 일꾼입니다. 이런 일꾼들이 왕 노릇 하는 공동체는 저절로 전도하고 차별 없는 건강한 교회의 모델이 됩니다. 오늘은 신실한 일꾼에 대해 구체적으로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신실한 일꾼은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입니다.
하나님도 사정이 있으시고, 바울도 사정이 있습니다. 스승이기에 할 말을 다하지 못할 때, 두기고는 성령이 주시는 겸손으로 바울의 힘든 사정을 전함으로 오히려 골로새 교인들이 위로를 받습니다. 선교의 어려움을 불평하거나 ‘우리 집안은 왜이래, 우리 교회는 왜 그래!’하는 것은 서로가 신실하지 못하고 서로에게 바울과 두기고가 되어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두기고는 ‘행운’이라는 뜻입니다. 두기고는 신약에 총 5번 나오는데 어디를 봐도 유명한 설교가도 아니고 기적을 행하지도 못했습니다. 오히려 로마에 살던 아시아인으로 그에 준하는 천한 신분이었을 것이나 자신을 인격적으로 대해주는 주님과 바울사도로 인해 바울의 마지막을 함께 하였기에 행운을 누렸을 거라 생각합니다. 이런 그를 바울 사도가 3가지로 부르는데, 첫째로 사랑 받는 형제입니다. 모든 것을 주어도 아까울 것 없는 친밀한 사이로 자기희생적 사랑입니다. 두 번째는 신실한 일꾼입니다. 어떤 일을 맡겨도 자기 책임을 감당하며 사역 면에서도 바울의 기대와 의도에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세 번째는 주 안에서 함께 된 종입니다. 함께 사역하고, 함께 종이 되고, 함께 갇혀 고난 받는 것, 즉 ‘함께’가 사정을 알아주는 비결입니다. ‘함께’가 잘 안 되는 우리나라지만 그리스도 외에는 천하에 구원 얻을 다른 이름을 주시지 않았기에 기독교는 바뀌지 않아야 될 것입니다. 여러분은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입니까, 늘 사정이 생기는 사람입니까? ‘함께’가 잘 되십니까?, 홀로가 좋습니까? 나눠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신실한 일꾼은 위로할 수 있는 사람입니다.
대단한 은사가 없는 두기고는 사랑과 신실함으로 바울의 서신을 전하는 작은 일에 충성하여 당시 골로새 교회에 위로를 전했고, 지금 우리가 골로새서를 통해 은혜를 받습니다. 우리들끼리만 큐티했다면 아무도 몰랐을 것이지만 골로새에 편지를 전한 두기고처럼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를 비롯한 22권의 책과 주보, 큐티인, 인터넷을 통한 목장나눔, 설교 전파의 헌신이 훗날 별처럼 빛나게 될 것을 믿습니다. 전해짐은 전적으로 성령님의 권한인데 바울은 옥에 매여 있음에도 자기를 부요한 자라고 여겼고, 오히려 지도자를 잃은 골로새 교인들을 위로합니다. 마지막까지 자신의 고통보다 다른 이들의 아픔을 아시고, 양육하며 돌보아주신 주님의 본을 따르며, 어떤 매임에서도 그리스도의 비밀을 전할 때 진정한 위로자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려움을 당할 때 내 편에 서서 나의 사정을 얘기해주는 두기고가 있습니까? 나의 힘든 이야기가 내 사정을 듣는 사람에게 위로가 될 수 있겠습니까?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신실한 일꾼은 사랑을 받는 형제입니다.
오네시모는 ‘유익한’ 또는 ‘이익’이라는 뜻입니다. 빌레몬의 노예로 욕먹지 않을 만큼만 일하면 됐었지만, 빌레몬의 물건을 훔쳐 로마로 도주했다가 당시 옥중에서 바울을 만나 회심하고 주인에게 돌아갔습니다. 바울은 회심한 오네시모를 ‘갇힌 중에 낳은 아들’, ‘내 심복’, ‘사랑받는 형제’로 부르며 그를 따뜻하게 맞아줄 것을 부탁합니다. 도망친 종 오네시모와 로마의 아시아인이었던 두기고가 주님의 사랑으로 변할 수 없던 사람에서 바울의 사랑받는 형제로 자리매김하듯 땅 끝에서 말씀으로 살아난 사람들은 주님의 신실한 일꾼이 됩니다. 다가오는 명절, 힘든 가운데 주님을 만나 신실한 일꾼이 되어 식구들과 이웃에게 주님을 전하는 여러분 되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