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목적은 거룩입니다]
골 3:20~21
요즘 롯데 家 왕자의 난이 연일 신문을 달구고 있습니다. 수십 년 동안 부를 축적하고 모든 것을 가지고 잘 산 것 같지만, 가정의 수치가 드러나고 별 인생이 없다는 것을 다시금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녀들아 모든 일에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셨는데 그들은 이런 말씀을 어떻게 받아들일까요? 오늘은 부모 자식 관계의 거룩이란 무엇인지 생각해보겠습니다.
첫 번째 명령입니다. 부모에게 순종하라고 하십니다.
여기서 ‘순종하다’의 원어 ‘휘파쿠오’는 아내가 남편에게 하는 ‘휘포타소’의 언어보다 훨씬 강한 의미입니다. 그것은 부모에 대한 순종이 하나님에 대한 순종과 연결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모든 일에’라는 것은 무제한 순종적 태도를 잃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주께 기쁨을 일으킨다, 즉 주님이 다 아신다고 하십니다. 좋은 부모, 존경받을 만하신 부모도 있지만 힘든 부모, 이상한 부모, 경멸받을만한 부모 다 주께서는 아십니다. 그 수준에 따라 무조건 순종해야 하는데 어찌 행복할 수만 있겠습니까? ‘부모에게 순종하지 않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아들은 돌로 쳐죽이라’(신21:18~21)고 합니다. 돌로 쳐 죽인다는 것은 조금만 힘들어도 돌로 쳐 죽임을 당한 것처럼 다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조금 좋은 사람, 조금 싫은 사람 참지를 못해서 사건이 올 때마다 넘어집니다. 이 참지 못하는 것이 순종하지 않는 것인데, 어떻게 자녀에게 순종을 가르칠까요? 아버지가 눈 한번 치켜뜨고 큰소리칠 때 어머니가 기쁨과 사랑으로 잘 받아들이는 모습을 보이고, 어머니가 병약할 때 아버지가 사랑으로 인내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이 자녀들에게는 커다란 순종의 훈련이 되는 것입니다. 돈 많고 부부싸움 하지 않는 부부라고 꼭 좋은 부모는 아닙니다. 이런 상황에서 자란 아이들은 긴장관계를 본 일이 없어서 위기에 대처할 능력을 기르기가 매우 어렵습니다. 예수 안에서 순종을 배웠다면 우리는 이래도 감사하고 저래도 감사합니다. 어려서부터 순종의 훈련을 받은 자녀들은 부모에 대한 존경의 기준을 부모의 가치성에 두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온전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일이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큐티와 공동체가 순종의 언어를 쓸 수 있는 비결입니다.
두 번째 주시는 명령입니다. 아비들은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자녀에 대한 아비들의 기본적 태도는 자녀를 노하지 않게 하는 것입니다. 자녀들은 언제 격노합니까?
1. 부모의 권리를 남용할 때 부작용이 생깁니다. 제가 청소년캠프에 가서 보니 아이들이 화장하고 머리에 빨간 물을 들이고 노란 물을 들였는데 그래도 다 예쁩니다. ‘어때, 교회만 와’ 가 제 주제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유인데 잠시 맡은 것을 잊어버리고 욕심대로 권위를 휘두릅니다. 부모의 권위로 쓸데없는 것에 화내고 소리 지르면 아이들은 십리 길로 도망갑니다. 비본질적인 것은 최대한의 인내를 가지고 기다려야 합니다.
2. 부모가 사연이 많아 약자인 자녀들에게 해댈 때입니다. 자녀들이 어릴 때는 힘이 없어 순종하지만 커갈수록 부모의 이해가 안 되는 행동이 풀리지 않으면 상처로 자리매김하고 낙심하게 됩니다. 용기를 다 잃어버립니다. 자녀에 대한 가장 이기적인 사랑이 마마보이를 만듭니다. 이런 자녀들은 싫은 일을 나중으로 미룰 수 있는 능력이 없고 혼자 있을 수 있는 능력이 없고 자신의 속마음을 잘 드러내지 않으려 하고 그것을 아주 두려워한다는 것입니다. 어른들의 기대 어린 칭찬이 아니라 아이의 노력을 통해 얻은 것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칭찬을 해줘야 합니다.
3. 일관성이 없는 부모들 때문에 격노합니다. 의젓하고 공부도 잘하는 한 아이는 우울증으로 아픈 누나가 그 집안의 법이 되어 자신은 칭찬 한 번 못 받고 애정표현 한 번 받아본 적이 없었답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겠습니까? 우리는 어쩔 수 없어서도 일관성이 없고 내 기분대로 일부러도 일관성이 없어 자녀를 격노케 합니다.
4. 거짓말하고 약속을 안 지키고 권위주의적이고 무관심할 때 자녀들은 격노합니다. 미국에서 4대째 승승장구한 케네디 家도 명예를 중시하는 위선적이고 권위적인 부모로부터 이어진 죄가 백 년이 지나 드러나고 저주 가운데 있는 것을 보았습니다. 신출귀몰했던 범죄자 신창원은 부모가 자녀들에게 조금 더 관심과 사랑을 가진다면 범죄는 줄어들 것이라는 말을 남겼습니다.
이 땅이 다가 아닙니다. 가정의 목적은 행복이 아니라 거룩입니다. 왜 이런 부모 이런 자녀 이런 남편인가 하지만 그들이 내 거룩을 이루는 가장 좋은 매개체입니다. 자식은 배반당하기 위해서 키우는 것입니다. 그래도 우리는 사람에게 헌신해야 합니다. 힘든 광야 길을 걸을 때 눈물을 뿌리면서 구원을 위해 보여줄 것은 내 가족밖에 없습니다. 모든 것은 나로부터 출발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