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
정정환 목사
누가복음 19:1-10
오늘 본문에는 부모가 지어준 이름대로 살지 않고, 이름값 못하는 한 사람인 삭개오가 나옵니다.이 삭개오가 돌무화과나무에서 예수님을 보게 되고, 예수님이 그의 이름을 부르시는 순간부터 그는 숙명적인 변화의 길로 접어듭니다.그렇다면 이 시간 내 이름을 불러주시는 예수님을 우리는 어떻게 만나게 되고, 그 예수님을 만날 때 내 삶은 어떻게 달라지는지 살펴보겠습니다.
■ 첫째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을 만나려면 올라가야할 나무가 있습니다
오늘 본문의 이 사건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시기 전, 여리고에서 일어났습니다. 삭개오의 직업은 세리였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이 창녀와 이방인과 함께 가장 혐오하고 경멸했던 존재가 세리였습니다.‘삭개오’라는 이름의 뜻은 정의롭다, 순전하다입니다.그런데 정작 자신은 전혀 정의롭지도 순전하지도 않은 생활을 했기에 자기 이름에서 오는 괴리감이 무척 컸을겁니다. 또 삭개오에게는 늘 키가 작은 것이 신체적인 콤플렉스였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사모하게 될 때, 그와 동시에 이를 가로막는 장애요인도 늘 이렇게 존재합니다. 삭개오에게는 작은 키와 수많은 사람들, 자신의 나이와 사회적인 체면이었습니다. 담임목사님께서 몇 년전 이 본문을 수요예배때 설교하시면서, 삭개오가 장애요인을 극복하기 위해 선택한 것은 자신을 드러내는 오픈이라고 설명을 하셨습니다.사람들은 대부분 상처나 아픔, 죄를 고백하는 걸 수치스러워 합니다. 하지만 이것을 주님과 공동체 앞에서 드러냄으로써 우리는 주님을 보게 되고, 또 주님이 나를 쳐다봐주시는 계기가 됩니다.아직까지 내가 체면 때문에 감추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 앞에 장애요인이 있지만 나무위로 올라가야할 적용은 무엇입니까?
■ 둘째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은 내 집에 유하시는 분입니다.
예수님은 가시던 길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의 시선이 닿은 곳은 돈 많은 부자, 세리들의 우두머리가 아닌 영적으로 완전히 부도 난 죄인 삭개오였습니다. 우리는 사람을 볼 때 그의 외모와 배경, 겉사람을 보지만 예수님은 겉사람이 아닌 삭개오의 속사람을 보십니다.그런데 예수님은 이제 한 걸음 더 나아가 ‘오늘 너의 집에 유하겠다’고 하십니다. 어느 누구도 상종하지 않던 삭개오에게 이름을 불러주시고, 삭개오의 집에 먼저 가시겠다고 하신건 예수님이 그를 예수님 목장에, 생명의 공동체로 초대하신 겁니다.인생은 누구를 만나느냐에 따라 달라지는데 예수님을 만나면 인생의 방황이 끝이 나고, 말씀 충만한 공동체를 만나면 신앙의 방황이 끝이 나는 것입니다. 공동체 안에서 서로가 인격적인 관계를 맺게 되면 무슨 중독도 끊어진다는 겁니다. 우리가 목장에서 서로의 이름을 불러주고, 각자의 집을 오픈해서 함께 밥을 먹고, 삶을 나누며 기도할 때, 그림자처럼 달라붙었던 저주스런 과거의 사연에서부터 해방되는 겁니다. 그래서 우리들교회에서 목장 모임은 내가 살아나고, 가정이 살아나고, 나라가 살아나는 길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내가 애정을 갖고 이름을 불러주어야 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공동체에서 특별히 관심을 갖고 이야기를 들어주어야 할 식구는 누구입니까?
■ 셋째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으로 인해 진정한 회개를 하게 됩니다.
기뻐하는 삭개오와는 대조적으로 수군거리면서 불평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그들은 예수님을 보면서도 회개가 안되고, 인본주의적인 가치관과 자신의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질 못합니다.하지만 삭개오는 자신이 천박한 일을 하는 비천한 죄인이라는 걸 인정하기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이제 진정한 회개의 자리까지 나아갑니다. 그리고 우상이던 돈을 율법에서 정해놓은 액수의 무려 20배로 보상해서 가난한 사람에게 주겠다고 합니다.회개는 구체적으로 손, 발이 가는, 때로는 피흘리기까지 하는 십자가 적용을 수반합니다. 이러한 회개로 인한 가장 큰 축복은 가치관의 변화입니다. 돈, 명예, 인정, 쾌락이라는 절대적 가치기준이 상대적인 의미가 되는 겁니다. 그래서 담임목사님께서 늘 말씀하시는 ‘있으면 먹고 없으면 굶고 죽으면 천국 가는 가치관’을 갖게 됩니다. 뭘 더 가져야만 누리게 되는 것이 아니라 비록 없더라도 회개를 통해 가치관이 바뀌면 얼마든지 누리고 자족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우게 되는 것입니다. 내가 회개했다고 하면서도 여전히 내려놓지도 포기하지도 못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나는 지금 무엇 때문에 불평하고 있습니까?
■ 넷째로, 내 이름을 부르시는 예수님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러 오십니다.
삭개오가 진정으로 회개했음을 확인하신 예수님은 삭개오 뿐아니라 가족 모두에게 구원을 보장하셨습니다. 사도행전을 보면 바울 앞에서 죽으려고 했던 빌립보 간수장은 자신의 회개로 가정 식구 모두가 세례를 받았습니다. 이처럼 나 한 사람의 회개가 가족 구원의 시작이 됩니다. 그런데 덤으로 예수님은 삭개오에게 아브라함의 자손이라고 하십니다.예수님이 말씀하신 아브라함 자손의 기준은 자신이 얼마나 비천한 죄인인지를 고백하고, 스스로 겸비함으로 주님을 의지하는 자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마지막 사역은 이렇게 민족의 반역자 삭개오와 귀신들린 여인, 소경 바디매오 같은 잃어버린 영혼을 찾으시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을 영접함으로 얻게 되는 최고의 축복은 하나님만이 상급이 되어서 어떤 상황에서도 평강과 안식을 누리는 것입니다. 내게 허락하신 자리를 여전한 방식으로 지키면서, 십자가를 삶의 길로 놓고, 영혼 구원의 사명으로 살아가는 겁니다. 돈과 명예, 사람들의 인정과 세상 성공을 찾아다니던 인생이 잃어버린 한 영혼을 찾아 구원하는 사명자의 삶으로 바뀌게 되는 것입니다. 잃어버린바 된 내가 찾아야 할 삭개오는 누구입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