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
창세기 3장 14-24절
“열 한 명의 자녀들 중에 누구를 제일 사랑합니까?” 라는 우문(愚問)에 존 웨슬리의 어머니는 “병에서 회복되기 전까지는 아픈 아이를, 집으로 돌아오기 전까지는 집을 나간 아이를 가장 사랑합니다.” 라고 현답(賢答)을 했습니다. 금지된 선악과를 먹은 인간에게 벌을 내리셔야 하는 하나님의 아픔이 바로 이런 마음일 것입니다.
뱀에게 저주의 벌을 내리십니다. 인간을 타락하게 만든 뱀에게 저주를 선포하십니다.(14) 선악과를 먹어 옳고 그름을 따지게 하는 것이 저주받을 죄입니다. ‘결코 죽지 않으리라’는 뱀의 말처럼 죽지는 않았지만 선악과를 먹은 인간은 하나님과 멀어졌습니다. 불신결혼을 하고 뇌물을 줘도 ‘죽지 않으리라’, 다 잘 될 거라고 하지만 그것으로 환경이 편해지고 돈이 생겨서 하나님을 떠날 수 있습니다. 무조건 잘 된다고 기복(祈福)을 부르짖는 뱀 목사, 뱀 상담가가 아니라 선악과를 먹으면 ‘정녕 죽으리라’ 말해줄 사람이 지도자로 세워져야 합니다.
인간에게는 대안을 먼저 주시고, 그 후에 벌을 주십니다. ‘여자의 후손’으로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우리의 대안으로 주셨습니다.(15) 이것이 바로 인류 구원을 위해 주신 원시 복음입니다. 뱀의 후손과 여자의 후손 사이에는 끊임없는 영적 싸움이 있지만 사단은 이미 저주의 심판을 받았고,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결박되었으며, 재림의 때에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그 때까지 원수 마귀와 치열한 싸움이 있지만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심으로 발꿈치의 모든 상처가 치유되었습니다. 부활의 주님을 바라보고 내 삶에서 십자가 지고 가는 것이 사단과의 전쟁에서 승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은 여자와 남자에게 축복의 벌을 주십니다. 여자에게는 잉태의 고통을 주십니다. 죄가 들어온 인간은 고통 없이는 생육 번성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영적으로나 육적으로나 생명을 낳기 위해 해산의 고통을 겪어야 합니다. 또 굶주린 자의 갈망처럼 남편 사모하는 벌을 주시고, 남편이 여자를 다스리는 벌을 주셨습니다.(16) 남편을 사모하는 것이 형벌이 되고, 그 사모하는 남편이 나를 예속하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인류 이래로 여자는 결혼 관계 속에서 남편 때문에 깨어집니다. 이것이 하나님이 만드신 원리이기에 순종해야 합니다. 힘든 결혼생활이라도 아이를 낳고, 남편을 사모하고 그 다스림에 복종할 때 형벌이 축복이 됩니다. 그 훈련을 통해 여자의 몸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에 어떤 이유로든 가정은 지킬만한 가치가 있는 것입니다.
남자에게는 노동을 형벌로 주십니다. 아담의 죄는 하나님의 명령보다 아내의 말을 들은 것입니다. 흙으로 지어진 아담이 죄를 지음으로써 땅도 저주를 받고, 수고하여야 소산을 얻게 됐습니다.(17-19) 남자에게는 일, 직장 문제가 가장 큰 고난입니다. 그 고난으로 깨어져서 하나님을 찾고, 다른 사람을 살리는 데 쓰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형벌이 축복으로 바뀌는 것입니다.
벌을 주신 목적은 영적 후손을 낳는 것입니다. 살 중의 살, 뼈 중의 뼈라고 불리던 여자가 ‘모든 산 자의 어미’ 하와라는 이름을 갖게 됐습니다.(20) 결혼과 가정의 고난을 통해 영적 자녀 낳는 것이 최고의 목표임을 알게 될 때 하나님께서 가죽 옷을 지어 입히십니다.(21) 나의 수치가 부끄러움이 되지 않고 영적 자손을 낳는 약재료가 되게 하십니다. 죄로 인해 벌을 받고도 자기 능력과 지식으로 생명나무에 도전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막으신 일입니다.(22-24) 유전공학, 생명복제가 영생의 길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만이 영생을 얻는 길입니다. 내가 선악과 먹은 죄를 인정하고 하나님이 주신 벌을 잘 받고자 할 때, 나를 통해서 우리 집안에 예수 그리스도가 오십니다. 저주의 벌이 축복의 벌로 바뀌어 영적 후손 낳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십니다.
“아담이 그 아내를 하와라 이름하였으니 그는 모든 산 자의 어미가 됨이더라 여호와 하나님이 아담과 그 아내를 위하여 가죽옷을 지어 입히시니라” 창3:2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