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 그리스도는 누구신가]
골 1:15-20
이번 목회자 세미나에 참여하신 목사님들께 참석 동기에 대해 설문조사를 했는데 대부분 동료 목회자, 우리들교회 성도, 1회 때 참석했던 목사님 소개로 오게 되셨다는 분들이 많았습니다. 세미나에 참석하여 은혜를 받으신 목사님들은 소개해 주신 분들에게 감사한 마음이 들 것입니다. 신앙생활 하면서 절망적인 상황에서 내가 믿는 예수님을 잘 전해 준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이 믿는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집니다. ‘날마다 큐티하는 여자’ 책을 보면서도 목사님은 어떤 분일까 궁금해서 오신 분도 있습니다.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중재자가 예수 그리스도이고 하나님을 잘 알도록 소개해 주신 분이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늘은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겠습니다.
첫째,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십니다.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것은 모방이라기보다 원형 그 자체를 말합니다. ‘먼저 나신 이’라는 것은 최초로 피조 되었다는 시간적 순서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피조물이 존재하게 된 것은 그리스도로 말미암는다는 의미입니다. 컴퓨터 바탕 화면에 내가 원하는 아이콘을 클릭하면 보고 싶어 하는 것의 실체가 드러납니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아이콘이고 우리는 그리스도의 아이콘이 되어서 예수님을 보여야 합니다. 도저히 내 힘으로 할 수 없는데 주님께서 하라고 하시니까 하는 것이 주님의 아이콘 주님의 형상으로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여주는 삶이란 흠 없고 완전하여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넘어진 나눔을 통해 죄를 오픈하는 것이 곧 하나님의 아이콘으로 더블클릭하는 것입니다.
둘째, 주님은 만물을 붙드시는 창조주이십니다.
16절에 창조의 범위, 방식 그리고 목적을 언급하며 ‘창조하다’가 두 번 사용 되었는데, 단번에 완벽하게 창조하셨다는 부정 과거형과 피조물 가운데 창조가 계속되고 있다는 미래완료형으로 쓰였습니다. 이미 구원이 이루어졌지만 아직 이루어지지 않은 부분 때문에 성화 되어 간다는 것과 똑같은 말입니다. 17절에 만물이 그리스도 안에 함께 섰다고 했는데 만물을 이미 붙들고 계신 그리스도께서 지금도 만물을 계속 붙들고 계시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사람의 마음, 건강 그리고 돈을 붙들 수 없지만 장자 되신 주님의 말씀을 덧입으면 능력의 말씀으로 만물을 붙들 수 있습니다. 능력의 말씀으로 죄를 정결케 하는데 주님의 죄 사함의 권세는 가장 능력 있는 사역입니다. 자기 죄를 보며 먼저 잘못을 시인하면 남들이 나를 무시하는 것이 아니라 나를 높은 곳에 계신 위엄의 우편에 앉히신다고 했습니다.
셋째, 주님은 천사보다 우월하신 분이십니다.
그 당시에는 천사 숭배가 굉장했는데 겉으로 보이는 대단한 것들에 대해서 외모로 보는 것을 내려놓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창조주 예수님은 비천한 목수의 아들로 오셨기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보다는 천사를 더 좋아합니다. 하지만 ‘예수님 믿더니 달라졌구나’ 하는 것이 최고의 칭찬이지 ‘천사 같다’는 말은 결코 칭찬이 아닙니다. 권세 있고 교양과 지식을 갖추고 도덕적으로도 선한 능력자 천사를 더욱 의지하는 것은 예수님만이 가장 아름다운 이름이라는 것을 모르기 때문입니다. 내가 예수 믿으면 어떤 경우에도 부리는 천사들을 다 허락해 주실 줄 믿습니다.
넷째, 교회의 머리 되시는 주님이십니다.
교회의 머리는 주님,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돈과 권력 도덕 철학이 아닙니다. 각 지체인 성도는 그리스도를 통해 연합되고 거룩하게 유지됩니다. 이를 위해 높고 높은 보좌에서 낮고 낮은 몸으로 오셔서 피 흘려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죄인 사이의 막힌 담을 허무셨습니다. 부활을 소망하는 모든 성도의 대표가 되셨고 성도와 하나님 사이에서 중보하시며 하나님께 나아가도록 길을 여셨습니다. 무엇인가 가득 차 있을 때 우리는 바랄 것이 없는데 내가 죽어지고 썩어지고 부활을 하면 가득함과 충만함이 있습니다. 우리들교회 모든 성도들이 기도와 목장 나눔으로 사역자들은 섬김으로 각 지체가 유기적으로 연합하며 가장 머리 되시는 분이 주님이라고 고백하며 갑니다. 좋은 지체 나쁜 지체가 없고 서로 아픈 곳을 도와야 합니다. 우리가 스스로 할 수 없는 부분이 있음을 깨닫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이 교회의 사명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