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베푸신 은혜]
골 1:13~14
지난 시간에 바울 사도는 성도의 기업의 부분을 얻기에 합당하게 하신 아버지께 감사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에 금세 흑암이 나옵니다. 끊임없이 기도하며 가야 하는 이유는 이 땅이 흑암이기 때문입니다. 이 흑암이 너무 무서우니 우리를 건져내시려고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어주셨습니다. 오늘 그 하나님이 베푸신 은혜를 생각해보겠습니다.
첫째,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셨습니다.
바울은 이 세상을 흑암이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흑암에서 태어나서 흑암 속에서 살다가, 내가 흑암에 있다는 것조차 모르는 것이 인생입니다. 그러므로 이 세상이 흑암이라는 것을 알려주어서 건져내야 합니다. 이 세상은 흑암이니까 넘어지고 다쳐야 정상인데 흑암도 권세가 있어서 흑암에 익숙하고 훈련이 잘된 사람은 안 넘어집니다. 하나님 없이 이 땅에서 한 번도 넘어져 보지 않아서 내가 원하는 것을 다 이루었다면 그것이 문제입니다. 어둠에서 잘 사니까 절대로 빛을 안 찾는 것입니다. 그래서 넘어지는 것이 좋은 것입니다. 성도는 이 세상에서 구별된 자입니다. 우리가 사방으로 욱여쌈을 당하고 거꾸러뜨림을 당하여도, 쌓이지 아니하며 낙심하지 아니하며 버린바 되지 아니하며 망하지 않는 것이 건져내시는 것입니다.
둘째,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다고 합니다.
옮기셨다는 말은 고대 사회에서 정복자들이 전쟁에서 이기면 한 나라의 국민 전체를 새로운 땅으로 이주시킬 때 쓰던 단어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그렇게 전체적으로 번쩍 안아서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습니다. 아들의 나라는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나라를 보이게 해주시는 성자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우리는 지금 이미 성자 하나님의 디자인된 그리스도의 나라,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졌습니다. 점처럼 초라해 보일지라도 감추어진 하나님의 경륜을 드러낼 것입니다. 주님은 이 땅에서 33년 동안 고난 받고 가신 것이 굉장히 잠깐 낮아지신 사건입니다. 곧 부활하셨습니다. 흑암의 권세가 아무리 기승을 부려도 그 시간은 잠깐입니다. 성도는 자신의 인생이 하나님의 사랑하시는 아들 안에 있다는 것을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내 고난, 내 시련, 내 인생이 주의 손안에 있다고 고백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고난 중에 있을지라도 어둠 속에 있는 인생이 아니라 빛의 자녀로 사는 것입니다. 아무리 겉모습으로 죄를 짓지 않고 사람들에게 좋게 했더라도, 또 반대로 겉모습은 아직 되었다 함이 없는 것 같을지라도 그 기준은 사람들의 평가나 말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확실한 사람이 집안에 한 사람만 있어도 온 집안이 살아납니다. 흑암의 권세가 무섭지만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의 권세는 더 위대한 줄 믿습니다.
셋째, 아들 안에서 죄사함을 얻게 하셨습니다.
가장 중요한 베푸신 은혜입니다. 죄라는 것은 표적에서 빗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부족해도 넘치는 것도 죄입니다. 우리 인간의 특징은 100% 죄인이기 때문에 누구나 다 치우친다는 것입니다. 자연인으로서 어떤 사람도 올바로 설 수 있는 사람도 없고 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어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는데 그 방식은 구속, 곧 죄사함으로 인해서 우리를 옮기셨다는 말입니다. ‘죄 사함을 얻었다’라는 이 동사는 직설법 현재 동사로 역사적으로는 그리스도의 구속사건이 과거에 단회적으로 이루어졌지만, 그것이 적용되는 시점은 성도가 회심하여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받아들이는 현재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날마다 내 죄보기를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시작이요 과정이요 마지막이라는 것입니다. 한 자매는 중학교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방황하다 엄마에게 이끌려 교회에 나왔습니다. 흑암에서 나와 공부도 하고 방황을 멈추나 했는데 다시 돌아가 고3 때 임신까지 했습니다. 낳기로 하고 시댁을 어렵게 설득해서 결혼했지만 어린아이가 아기를 키우려니 인생이 얼마나 힘들었겠습니까. 그러니 이 자매에게 교회가 전부가 되었어도 아직 못 끊는 것이 담배라고 합니다. 그럼에도 이 자매로 인해 온 가족이 예배를 일순위로 놓고 가는 것이 최고의 기도응답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개개인으로는 안 되는 일이 많은 것 같아도 그것 때문에 너무나 교회를 사모하고 말씀을 사모하고 예배 없이는 살 수 없으니 교회적으로는 참으로 많은 사람을 위로케 하시고 치유케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잘나서 쓰시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렇게 불쌍해서 돌보시는 것 같습니다. 낙망하지 마시고 우리는 예수님이 나를 위해 죽어주신 대단한 신분이라는 것을 잊지 않고 그 하나님이 그런 나를 위해 은혜를 베푸셨다는 것을 잊지 않으시길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