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와 너희]
골로새서 1:3~8
우리들 교회 개척 후 10년이 지난 지금, ‘공동체의 소명을 이루는 우리와 너희’는 어떤 모습인지 생각해 보겠습니다.
첫째. 기도와 감사가 있는 우리와 너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를 위하여 기도할 때마다 감사한다고 합니다. 우리는 죄 얘기를 할 때는 ‘우리’라고 하고, 기도로 칭찬받을 때는 ‘내가’ 기도했다고 합니다. 기도응답이 안 된 지체에게도 ‘우리 교회’가 기도 안 해서 그렇다며 슬쩍 넘깁니다. 그러나 죄를 언급할 때는 ‘우리’보다는 ‘나’로 적용하고, 타인을 위한 기도에는 ‘나’보다는 ‘우리’로 적용합시다. 함께 기도하면 서로에게 감사할 수 있고, 함께 기도할 우리를 위해 목장에 나가야 합니다. 요즘 큐티하는 사사기 본문을 보면 입다는 잡류 친구가 있었고, 기드온은 삼백 명 정예부대가 있었는데, 나실인 삼손에게는 친구가 없습니다. 삼손은 여호와의 사자들과만 노니까 혼자 무엇이든 합니다. 헨리 나우웬의 말처럼 자신이 칭찬받으면 ‘하나님께서 나를 버리셨나?’ 생각해야 하는데 모두가 칭찬하니 공동체에 들어가지 않고, 공동체가 없어서 삼손이 무너졌습니다. 소명을 다하는 삶은 기도해줄 지체가 있는 삶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기도해 줄 우리와 너희가 있습니까? 내가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이고, 나와 친구하고 싶은 사람은 누구입니까? 그것이 뜻대로 잘 되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인들이 자신이 갇혀 있는 감옥에 면회 오고, 사식 넣어줘서 고맙다는 것이 아니라, 두 번의 지진으로 인한 경제적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골로새 교회의 믿음과 성도에 대한 사랑을 듣고 감사하다고 합니다. 진정한 지체는 나에게 잘해주는 사람이 아니라 타인에 대해 관심이 있는 사람입니다. 감옥에서도 기도할 수 있음이 감사하고, 기도할 때마다 너희가 있어 감사합니다. 여러분은 내 자식, 내 식구가 잘 되어서 감사합니까? 성도에 대한 사랑 때문에 감사합니까? 감사해야 할 사람은 누구인지, 우리들교회 홈페이지의 선교소식을 읽는 적용을 하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면 궁금하고, 궁금하면 소식이 들리게 됩니다. 내 가정, 내 교회를 넘어 나라와 민족, 세계를 위한 기도가 사람에 대한 관심이고 결국 그것은 내 가족에게로 돌아옵니다. 누군가를 위해 기도하려면 듣고자 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무슨 소식이 들리는 자리에 가고 싶습니까? 무엇을 들으려는 마음이 필요한지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둘째, 말씀을 같이 보고 듣는 우리와 너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하늘에 쌓아둔’이란 미래를 위해 이 땅에서 계속 준비하는 것입니다. 구속사의 말씀을 함께 듣는 것이 우리와 너희가 되는 비결입니다. 복음은 기쁜 소식, 승전고입니다. 기쁜 소식 듣고 소망이 생기는 것은 당연합니다. 소망의 반대는 헛된 소망입니다. 헛된 소망은 결코 채워지지 않습니다. 암에 걸려도 영생의 소망으로 기쁘기에 그것이 바로 하늘에 쌓아 둔 소망이라고 생각합니다. 믿음은 위대한 일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말씀을 잘 듣는 사람은 다른 사람의 말도 잘 들어줍니다. 최고의 편한 관계는 서로 잘 들어주는 관계입니다. 여러분은 구속사의 말씀을 같이 보고 듣는다고 생각하시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셋째, 은혜를 깨닫는 우리와 너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내가 ‘이 복음’에 간 것이 아니라 ‘이 복음’이 내게 이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너는 내 것이라’며 오신 겁니다. 복음이 아무리 이르러도, 듣는 건 내가 해야 합니다. 들어야 은혜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은혜를 알면 사람에 대한 가치관이 달라집니다. 남편이 승진해야, 아이의 성적이 올라야, 물질이 생겨야 감사합니까? 아니면 나와 내 가족의 사건으로 온 천하에 복음이 전해질 것 때문에 기쁘고 감사한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
넷째, 서로 무엇이든 고할 수 있는 우리와 너희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에바브라는 바울에게 배우고 골로새 교회를 세웠습니다. 우리도 늘 말씀을 양육 받고, 다른 누군가를 양육해야 합니다. 그러면 그리스도의 신실한 일꾼이라 칭해주십니다. 골로새에 홀로 떨어져 가르치기만 하면 교만해질 수도 있고, 공허해질 수도 있기에 사역한 얘기를 고할 우리가 있어야 합니다. ‘우리’도 소유격인데 ‘들’을 더 붙여 ‘우리들 교회’로 이름 지은 것은 ‘우리와 너희’를 강조한 이 말씀에서 유래되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힘들기에 지체의 위로를 받아야 합니다. 그런 지체를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목장에 가는 것입니다. 순종하며, 듣고, 알리고, 고하는 모두가 사역입니다. 꼭 바울 같은 지체여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알리고 나눌 지체가 있는지 적용해보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