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세기 2장 4-17절
예배 도중 부정맥으로 쓰러졌던 오준이가 8개월 반 만에 퇴원을 한다고 합니다. 아직 의식이 돌아오지 않았지만 생명력을 잃어가던 장기가 회복됐다고, 그래서 집으로 돌아가 그동안 부족했던 기도와 찬양을 마음껏 드릴 수 있다고 아버지 권 집사님이 기도제목을 올렸습니다.
사람이 생령이 된다는 것은 구속사의 주인공이라는 뜻입니다. 천지를 창조하신 장엄한 하나님 ‘엘로힘’에서 ‘여호와’ 하나님으로, 인간과 언약을 맺으십니다. 창조된 ‘대략’은 ‘자손, 계보, 기록’의 의미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통해 이루어 가실 구속사를 나타냅니다.(4) 창세기 3장에서 인간이 타락할 것을 아시고 먼저 구속(救贖)을 말씀하시는, 인간 타락의 서론이 2장의 내용입니다. 천지와 식물을 만드셨어도 경작할 사람이 없으니 초목도 채소도 없습니다. 그럼에도 안개로 습기를 유지해서 내가 경작하도록 준비해놓으십니다.(5-6) 하나님이 주신 것을 경작하지 않고 누리지 못하는 인간임에도 나를 위해 준비하시고 기다리십니다. 가장 고귀한 인간을 가장 흔한 흙으로 만드셨습니다. 돈, 권세, 명예를 자랑해도 결국 보잘 것 없는 흙으로 만들어진 존재가 인간입니다. 별 인생이 없는 우리가 별 인생이 되기 위해서 하나님의 생명, 생기가 들어와야 합니다.(7) 물고기는 물, 식물은 땅에 살아야 하듯이 인간은 하나님의 생명으로 하나님 품에서만 살 수 있습니다. 오준이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했어도 하나님의 품인 교회에서 쓰러졌기에 생령이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오준이를 통해 가족 모두가 말씀을 사모하며 우리에게도 은혜를 끼치고 있습니다. 흙덩이에 불과한 육체가 아닌 생령이 되어서 구속사의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에덴동산을 경작하며 지키라고 생령이 되게 하십니다.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역할을 감당하라고 내가 있어야 할 자리, 거기에 두십니다.(8) 최고의 환경인 에덴에 두신 것은 거기에서 군림하며 놀고먹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에덴과 비교도 안 되는 더 큰 하나님 나라를 누리기 위해 그 환경을 다스리며 지키라는 것입니다.(15) 그러지 못하고 비손의 풍성, 기혼의 충만, 힛데겔의 자유, 유브라데의 달콤함(10-14)에 안주하려 하니까 죄가 범해집니다. 환경만 갖춰지면 뭐든 잘할 것 같아도 최고의 완벽한 환경에서 죄를 범한 것이 인간입니다. 환경이 문제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두신 내 자리, 가정과 직장에서 다스리고 지키라는 최초의 명령에 순종해야 합니다. 좋은 환경이 아니라 삶에서 십자가지는 순종을 보여주는 것이 자녀에게 물려줄 최고의 유산입니다.
생령이 된 사람은 반드시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야 합니다. 에덴동산 가운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두시고(9), 모든 것은 임의로 먹되 선악 나무의 실과는 먹지 말라고 명하십니다. 그 명령을 듣지 않으면 ‘정녕 죽으리라’고 하십니다.(16-17) 동산 구석이 아니라 누구나 볼 수 있는 중앙에 생명나무와 선악의 나무를 두신 것은 우리를 인격적으로 대하시고 자유의지를 주신 것입니다. 선과 악은 행위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명령을 듣는가 안 듣는가, 순종과 불순종의 문제입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면 선이고 불순종하면 악입니다. 배우자가 외도를 하고 문제를 일으켜도 행위의 옳고 그름을 떠나 각자 하나님의 명령을 들어야 합니다. 사건마다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의 삶으로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 구속사를 이루는 방법입니다. 말씀에 순종하지 않으면서 행위만 따지기 때문에 원망과 미움과 상처에 걸려 ‘정녕 죽으리라’의 삶을 사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하나님을 보여주는 존재로 나를 지으시고 생령이 되게 하셨습니다. 그런 어마어마한 사명을 이루기 위해 모든 사건과 환경을 허락하십니다. 선악이 아닌 생명의 문제로, 내 환경에서 다른 사람을 살리고자 할 때 나의 상처가 빛난 면류관이 됩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이루는 구속사의 주인공으로 나를 높여주십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 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된지라” 창2:7